왕따
어른들은 알까요, 우리도 ‘평범한 꿈’ 꾼다는 것을

불안… 위기에 몰린 미래세대 가정 폭력·학교 따돌림 벗어나도 가출로 인한 또 다른 위기 생겨 소년원 출원자·미혼모 청소년 등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돼야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비단 노래 가사만이 아니다. 사회에서 낙인찍히고 배제된 소년원 출원자, 미혼모 청소년,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 수감자 자녀들. 이들을 위기로 내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어른들의 잘못일지 모른다. 기성세대는 무엇을 놓친 걸까. 위기에 놓인 미래세대에게 직접 물어봤다. “소년원은 또 다른 ‘무법천지’죠.” 정현성(가명·17)군은 6년 전 가출 후 세 번이나 소년원에 갔다 왔다. 양아버지의 잦은 폭행을 피해 가출한 것이 방황의 시작이었다. 양아버지는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건 예사고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야구 방망이로 구타했다. “쇄골이 골절되기도 하고 몸에 멍이 없어질 날이 없었죠. 경찰에 여러 번 신고도 해봤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죠.”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잔소리에서 벗어난 건 좋았지만, 길거리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또래 아이들과 끊임없이 도둑질을 저질렀다.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혀 2010년 소년원에 처음으로 수감됐다. 하지만 소년원에서 갈수록 폭력성만 커졌다. 고참 문화 때문이었다. “한방을 쓰는 열다섯 명가량 사이에는 철저히 상하 계급이 나뉘었죠. 심지어 옷깃으로 신분을 표시했어요. 대장은 감시와 CCTV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서 이유 없이 가혹한 폭행을 하거나 시키죠. 그러면 당한 애들이 새로 들어온 애한테 복수를 하면서 폭력이 계속 되풀이됐죠.” 그는 소년원 내에서 말썽을 피워 3개월 동안 이송됐던 한길정보산업학교(제주소년원)에서 “진짜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엄마의 편지도 거기서

자원봉사로 왕따 이겨낸 소모라양

“중학교 입학 후 매일 울었는데…” 나눔은 ‘팔자’도 바꾼다 아무도 아는 체 안 하고 밥도 늘 혼자 먹었는데 복지관 학습지도 봉사 후 자존감 생겨 성격 밝아져 먼저 다가가고 배려하니 친구들이 알아주더라 ‘왕따’. 집단 따돌림을 일컫는 이 용어가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해질 것을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왕따 문제는 전문가들도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혀를 내두른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피해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상에 소개되고 있으며, 가해학생의 처리, 학교와 교육청의 배상 문제 등 후폭풍도 거세다. 방승호 강서 위(Wee)센터장은 “나눔이 가장 기본적이자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조언한다. 방승호 센터장은 “나눔은 ‘팔자가 바뀌는 것’으로, 나눔을 통해 마음이 열리고, 자존감이 생긴다”며 “왕따의 상처를 나눔과 봉사로 이겨낸 사례가 적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신목종합사회복지관. 이곳에서 4년째 정기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소모라(18·사진)양은 나눔으로 팔자가 바뀐 ‘산 증인’이다. 소모라양은 중학교 1학년 내내 왕따와 이간질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오자마자 교내 학급회장에 뽑혔던 게 원인이었죠.” 이전까지 회장을 도맡았던 아이를 중심으로, 모라양에 대한 ‘텃세’가 시작됐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당찼던 모라의 행동은 오히려 아이들을 자극했다. “저에 대해 ‘성격파탄자다’ ‘뒤에서 친구들 욕하는 애다’라는 온갖 나쁜 말이 돌았고, 친구들이 절 멀리하는 게 느껴졌어요.” 모라양이 중학교 들어가자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을 정도로 왕따는 심해졌다. 사생대회나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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