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비전 64년… 3명의 시대적 증인 이야기를 듣다 최초의 월드비전 결연 수혜자였어요 미국서 공부할 때 1000달러때문에 도중 하차할 뻔 그때 월드비전이 보내준 1000달러 수표, 평생 빚으로 전쟁의 포성이 울려퍼지던 1950년, 월드비전의 창립자 고(故) 밥 피어스(Bob Pierce) 목사는 종군기자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가혹한 시대, 밥 피어스 목사는 “고독과 절망 속에서 도움을 찾아 창백한 손을 뻗는 전쟁 고아들을 돕겠다”고 결심했다. 월드비전 탄생의 역사적 순간이다. 그 후 64년. 한국은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공여국(供與國)으로 성장했다. 월드비전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후원자도 53만 명을 넘어섰다. 더나은미래는 3명의 시대적 증인을 통해, 월드비전을 통한 나눔의 선순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절박한 삶의 순간마다 함께 해준 월드비전 “1950년대 동두천은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죠. 집들은 미군 부대에서 버린 폐 나무 박스를 부숴서 얼추 형태만 만든 것이었고, 교실이 없어 수십 명이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오성삼(68) 인천송도고 교장이 입을 열었다.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장과 전국교육대학원장협의회장을 역임한 오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친을 잃은 뒤 안흥보육원에서 생활했다. “제가 최초의 월드비전 결연 수혜자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구스타프 부부라는 분들로부터 노트나 연필 등의 선물과 편지를 받곤 했습니다. 미국 유학 때 상봉을 했는데,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저처럼 그 분들도 제 편지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두셨더군요.” 오 교장은 ‘피어스 장학금’을 받아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영양부족으로 늑막염을 앓았을 때는 월드비전 아동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