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좋은 회사 응원하려 대중과의 다리 놨죠”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 신혜성 대표 인터뷰 ‘100인의 배심원단’·’댓글’ 등차별화된 소통 앞세워 급성장 “평생을 기술 개발에 몸 바친 중소기업 사장님이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죠. 담보가 없었거든요. 종업원 100명을 해고시켜 원가를 절감한 기업은 ‘좋은 회사’ 소리를 들었고요. ‘뭔가 잘못됐다’ 싶었습니다.” 신혜성(36·사진) 와디즈 대표의 말이다. 대표는 증권·은행에서 9년 동안 기업금융 업무를 담당했다. 직접 방문한 회사만 500곳이 넘는다. 그런데 기업을 알면 알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신 대표는 “증권에선 주가가 오를 수 있는 곳, 은행에선 돈을 안 떼이는 곳이 좋은 회사였다”며 “더 다양한 관점에서 기업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급기야 창업으로까지 이어졌다. 2012년 5월 탄생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다. 가치 있는 회사들을 지원하겠다는 비전을 갖고서였다. 지난 3월까지 약 300건의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모금 성공률이 70%나 된다.(와디즈는 프로젝트별로 5~7%의 펀딩 수수료를 받는다) 지난달 29일, 신혜성 대표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좋은 기업과 크라우드 펀딩 생태계를 직접 들어봤다. ―설립 초기, 국내 크라우드 펀딩 분야는 ‘불모지’에 가까웠을 텐데. “2012년 초반, 스타트업 모임에 강연을 갔는데, 한 청년 기업가가 ‘사기꾼이 판을 치겠다’며 비아냥거리더라. 지인들에게 ‘돈 되겠냐’는 무시와 질타도 많이 들었다. 당시 몇몇 펀딩 플랫폼이 운영되긴 했지만, 해외에 있는 모델을 그대로 들여온 방식에 불과했고 잘 굴러가지도 않았다. 인식도, 시스템도 미비했던 거다. 성급히 사업적으로 접근해선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크라우드산업연구소’를 먼저 차렸다. ‘나부터 정확하게 이해해야 시장에 알려줄 수 있겠다’는

모금 성공 포인트

“모금 실적이 0원인 프로젝트도 있다.” 황인범 와디즈 홍보매니저의 말이다. 반면 ‘누워서 읽는 법학 출판 프로젝트’(누적 모금액 1위, 4877만원)처럼 대박이 나기도 한다. 모금 성공률이 70%에 이르지만 엄연히 성패가 갈린다는 것.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크라우드 펀딩의 5가지 성공 포인트를 정리했다. 1. 기부 아닌 투자… 리워드(Reward·보상)가 매력적이어야 지난 1월 말부터 40일간 진행됐던 ‘동구밭의 옥상텃밭 만들기’ 프로젝트.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도시 텃밭을 만드는 이 모금에 참여하면, 텃밭에서 수확하는 채소 세트와 부모·아동이 함께 도시 텃밭에 참여해 볼 수 있는 체험 상품이 제공됐다. 장애·비장애의 ‘어울림’이라는 미션이 잘 담겨 있는 데다, 학부모의 교육 니즈까지 만족시킨 덕분에 개설 열흘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지난 2013년 6월부터 두 달간 진행됐던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와 함께하는 힐링 콘서트’ 프로젝트. 이 펀딩의 모금 보상품은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이희아씨가 공연 도중 대신 읽어주는 이벤트 참여권이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이른 시간에 목표 금액에 도달했다. 와디즈 관계자는 “공연 관련 프로젝트를 하면 대부분 티켓을 파는데, 이는 온라인 티켓 판매처와 다를 게 없다”며 “프로젝트 취지와 맞고, 특별함을 더하는 리워드가 모금 성과를 좌우한다”고 조언했다. 2. 스토리의 힘… 공감과 신뢰를 만든다 “10년 가까이 서너 시간만 자며 악착스럽게 세워왔던 회사가 한순간 송두리째 재로 변했습니다. 회사 바로 옆 한강 둔치에서 며칠을 보냈죠. 이때 진정한 소주 맛을 알았습니다. 병나발의 맛을….” 지난해 7월 진행됐던 ‘양심 있는 식품이 일상이 되는

시장성 낮은 제품, 참여·기부와 만나 혁신 상품으로

크라우드 펀딩 톱 3 기업 성공 스토리 “이 할머니, 휴가 보내 드립시다!” 2012년 6월,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인디고고(indiegogo.com)’에 영상 하나가 떴다. 뉴욕의 한 중학교 스쿨버스 안내원 캐런 클라인(Karen Klein) 할머니가 버스 안 학생들에게 조롱당하는 모습이었다. 우연히 이 영상을 본 맥스 시도로프(Max Sidorov)씨는 할머니의 휴가비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반향은 놀라웠다. 7일 만에 84개국에서 3만여 명이 후원에 참여, 70만2454달러(약 7억원)를 모았다. 캐런 클라인씨는 이 돈으로 왕따와 따돌림을 방지하는 ‘안티불링파운데이션(Anti bullying foundation)’을 세우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의 힘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자금이 없는 예술가나 사회활동가, 벤처기업 등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방식이다. 2008년 시작된 ‘인디고고’를 비롯, 킥스타터 등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크라우드 펀딩은 국내에도 점차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기부와 투자, 참여가 결합된 펀딩 방식으로 소액기부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세다. ‘더나은미래’는 창간 5주년을 맞아, 국내 최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와 함께 지난 3년간 진행한 펀딩 300건을 분석해 이 중 모금액 순위 톱 3위 기업(출판·종교 제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1위, 바이맘의 실내 보온 텐트 프로젝트 3843만원 모금, 395명 참여, 2013년 11월 1일~27일(1차), 2014년 11월 18일~12월 19일(2차) ‘바이맘’은 겨울철 에너지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난방 텐트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이 회사가 크라우드 펀딩과 인연을 맺은 건 2013년 가을, 전화 한 통이 발단이 됐다. “충북 제천의 여고생들이었어요. 보통 겨울이 되면

[더나은미래 논단] 일방통행 사회공헌에… ‘자선의 덫’ 걸린 기업들

얼마 전,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중국에서 한 다국적 기업의 CSR 부서 담당자가 방문했다. 그녀는 지난 10년 동안 중국 한 지방 도시 빈곤 아동들의 교육사업에 많은 지원을 했고, 이로 인해 공로상과 업계의 인정을 받은 이였다. 이 회사가 최근 인수합병되면서 새 이사회 앞에서 업무보고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녀는 그동안의 성과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은 “그래서?”였다고 한다. 새 이사회 멤버들은 프로젝트가 비즈니스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 지역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는지에 대한 질문 공세를 퍼부었고, 그녀는 그 결과에 대해 속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수치는 Input(투입자원) 관련 자료였다. 자원봉사자 몇 명이 지역을 방문했고, 몇 시간 봉사를 했고, 지원 비용은 얼마였으며, 학교를 몇 개 지었고, 또 몇 명에게 장학금을 주었는지였다. 물론 이 투입자원에 대한 중간 산출물, 예를 들면 수혜를 받은 학생 숫자 등은 금방 나타난다. 하지만 이사회가 궁금해한 부분은 이 투입자원에 대한 진정한 산출 결과였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정말 교육의 질이 바뀌고 학생들의 진학률이 높아져서, 결국 지원해준 회사의 직원이 되기도 하고, 주주가 되기도 하며, 열성 소비자가 되기도 하는지에 대한 결과를 보여달라는 요구였다. 이러한 수치를 측정하려면 그녀는 아마도 훨씬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많은 학자를 동원하여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매달려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비영리재단에서 일하는지 아니면 글로벌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지 헷갈릴 것이다. 다시 위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결국

시민 2000여명, 업사이클링 아트로 ‘환경 예술가’ 되다

사회적기업 위누 ‘아트업 페스티벌’ 예술가·시민 함께하는 사회참여예술 폐플라스틱으로 예술 작품 제작 알록달록한 색깔의 페트병 꽃나무, 버려진 우산살과 천으로 만든 나비와 플라스틱 사슴….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 뒤편에 펼쳐진 ‘별천지’를 본 시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연히 가족 봄 소풍을 나왔다가 페트병으로 만든 정원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숲 같기도 하고요. 이번 주말에 집에서 딸아이랑 같이 페트병 꽃이라도 만들어보려고요.”(김은형·39) 사회적 메시지가, 사람들의 참여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DDP에서 열린 제4회 ‘아트업 페스티벌’은 사회참여예술이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증명했다. 사회적기업 ‘위누’ 주최로 4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이 페스티벌은 30시간 동안 100여명의 예술가가 폐자원으로 업사이클링 작품을 만드는 축제다. 아트업 페스티벌은 첫해 부서진 장난감, 이듬해 폐가전제품과 버려진 천에 이어 올해는 플라스틱을 주재료로 선정했다. 폐자원을 재활용하는 성동 도시관리공단과 RM화성이 페트병 1만 개를, 삼성카드가 폐카드 2만장을 제공했다. ◇예술가, 작업실 밖에서 사회적 역할에 눈뜨다 축제 내내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관객을 이끌었던 비영리단체 ‘친구네옥상’은 아트업 페스티벌을 통해 난생처음 자신들의 작품에 폐자원을 활용했다. 한관희(37) 대표가 기획한 업사이클링 퍼레이드 ‘황금영혼’은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한 뒤 깨어난 영혼이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찾아 떠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거리극이다. 배우들이 쓰는 인형탈을 청소기, 헤어 드라이기, 믹서, 카세트플레이어 등 박살 난 폐가전 제품으로 단 나흘 만에 만들었다. “아트업 페스티벌은 저희에게 작품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까지 생각하게 했어요. 황금영혼이 인간의

학대 아동 신고 안 하면 과태료… 그 후엔 수수방관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 6개월 신고 의무자 의심만 돼도 신고해야… 112로 신고번호 통합, 24시간 가능 교육 안 하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 피해 아동 사후보호·지원 시급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그리스도대학교 사회교육원 강의실에선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 교육이 한창이었다. 가정어린이집 원장 100여명의 시선이 영상에 집중됐다. CCTV 화면 속 아동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을 때 아동이 반사적으로 방어하는 자세를 보이면 학대 피해를 의심해야 합니다.” 노장우 서울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장의 설명에 원장들의 손이 바빠졌다. “여기 모인 원장님들 모두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라는 것, 알고 계시죠? 학대가 의심만 되어도 신고해야 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 특례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곳곳에서 원장들이 각자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대로 씻기지 않아 아이 몸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서, 방임을 의심하고 어머니께 몇 차례 말씀드렸는데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를 애지중지 키우는 부모로 알고 있는데, 요즘 집에서 멍들어 오는 경우가 있어 신고해야 할지 고민된다” 등 사례도 다양했다. ◇아동학대 신고 112로 통합… 아동 본인 신고 늘고, 신고 의무자는 망설인다 지난해 12월 31일, 부모의 상습적 학대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강원 지역 중학교 교사 3명에게 과태료가 부과됐다. 아동학대 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신고 의무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된 첫 사례다. 아동학대 특례법에 따르면, 교직원·의료인·상담교사 등 24개 직군을 신고 의무자로 규정하고, 학대 의심 사례를 신고하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숨은 영웅들

“비영리 전문가들이 주체가 되어 기업과 정부의 재정 후원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상을 만들려고 한다. 조직위원들과 심사위원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 꾸릴 텐데, 심사위원이 되어줄 수 있느냐.” 몇 달 전, 국제공인모금전문가(CFRE) 김현수씨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름은 ‘아시아 필란트로피 어워드(APA·Asia Philanthropy Awards)’. ‘필란트로피’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자선(Charity)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입니다. 기부와 봉사를 넘어,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적극적이고 넓은 의미의 사회공헌 행위와 정신입니다. 70명 가까운 비영리 생태계 종사자가 참여해서 상(賞)을 준다는 취지가 좋아 선뜻 ‘오케이’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기부금도 냈지요. 홍보를 돕기 위해 ‘보도자료’까지 직접 손을 봐주다 보니, 행사가 어떻게 꾸려질지 많이 궁금했습니다. 돈과 시간을 내서 참여하니까 더 이상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22일, 마감으로 무척 바쁜 날이었음에도 잠깐 짬을 내 시상식 구경을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와 비슷한 사람들 수십명이 참석한 프레스센터는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APA위원회 위원장인 김성수 주교의 농담 섞인 환영사부터, 6개 부문 수상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가슴 따뜻해졌습니다. 올해의 펀드레이저 상을 받은 한국메이크어위시 이광재 사무국장은 100번 거절당한 끝에 마지막에 기부금을 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좋아하지 않고는 이 일을 계속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청소년 필란트로피스트(김소희), 여성 필란트로피스트(노국자), NPO상(드림터치포올), 공적상(故 김석산)에 이어 올해의 필란트로피스트 상은 ‘노무라 모토유키’씨가 받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일본 내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목격하고, 일본의 과거 잘못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청계천 도시 빈민을 위한 구호 활동 등 지난

[희망 허브] [숨은 영웅을 찾아서] ⑤ 빈곤의 고리 끊기 위해… 달려오다 보니 30년이네요

[숨은 영웅을 찾아서] (5) 황선업 ‘섬나의 집’ 지역아동센터장 보건복지부장관상 세 번째… 심사위원들 전원이 만장일치 밤이면 야학, 낮이면 엄마 위한 교실 창고 교회 한 귀퉁이에 주말 진료소…대전 최초 종일제 탁아소 운영부터 외국인 노동자·다문화 한부모까지 가장 낮은 현장에서 보듬어 황선업(56) ‘섬나의 집'(섬김과 나눔의 집) 지역아동센터장 이야기를 해준 분은 그녀를 이렇게 평했다. “지난 3월에 황선업 센터장이 ‘지역아동센터 알찬마루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 전원이 ‘어휴~ 우리가 감히 그분을 어떻게 심사하느냐’고 했대요.” 궁금해졌다. 2005년과 2009년에 이어 올해로 복지부 장관상만도 세 번째라 했다. 섬나의 집은 대전시 대덕구 대화동에 있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좁다란 골목 언덕길 끝이었다. “대전의 평범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는데, 남편하고 교회에서 만났어요. 서울에서 노동운동, 학생운동 하다 목회를 마음에 품고 대전으로 내려온 사람이었거든요. ‘가장 가난하고 낮은 곳으로 들어가 살자’며 함께 대전 곳곳을 찾아다녔는데 그때 만난 게 ‘대화동’이었어요. 84년에 결혼하고서 바로 이쪽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31년째네요.” 땅이 기름져 벼농사가 잘돼 ‘대화(大禾)’라 불렸던 곳. 이곳에 가난한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건 1970년대, 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몰려왔다. 공단을 둘러싸고 고만고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저희 집이 풍족한 편도 아니었는데, 생전 이렇게 가난한 지역은 처음이었어요. 울타리 하나에 쪽방 스무 개 이상 달린 ‘닭장집’이 빽빽이 붙어 있고, 수도나 화장실도 한 지역이 공동으로 써야 했어요. 리어카 하나 못 지날 정도로 골목은 좁은데, 골목으로 내어놓은 배기구에서

[더나은미래 논단] 실리콘밸리에선 고액 자선도 투자처럼

애플의 최고 경영자(CEO) 팀 쿡이 세계 최고의 지도자로 뽑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5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 잡지 포천(Fortune)이 발표한 자료다. 포천지는 매년 정치 지도자는 물론 CEO, 비정부기구 대표, 성직자, 스포츠맨,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고 지도자를 조사해 발표해 왔다. 팀 쿡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등극한 것은 애플의 뛰어난 실적과 무관치 않다. 2011년 쿡이 경영을 맡을 당시 54달러였던 애플의 주가는 3년 반 동안 2.5배나 올랐다. 사상 첫 시가총액 1조달러 기업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다. ‘잡스 없는 애플’은 기우로 남게 됐다. 그런데 이런 숫자적 성과만으로 팀 쿡의 저력을 평가하기엔 이른 사건이 터졌다. 그는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재산은 8억달러(약 8800억원)로 평가된다. 쿡은 “10세인 조카의 대학 학비를 대주고 나서”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미 소리 소문 없이 기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팀 쿡<사진> 이전에 페이스북으로 수퍼 리치의 반열에 오른 마크 저커버그는 2013년 1월에 10억달러를 기부해 20대의 나이로는 처음으로 고액 기부자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의 고액 기부자 10위 안에는 실리콘밸리의 젊은 벤처기업가가 4명이나 포진했다. 그렇다면 소위 첨단을 달리는 실리콘밸리의 고액 기부자들은 과거의 기부자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들에게 자선사업은 기업 투자와 다를 바 없다. 벤처 자본을 연상시키는 ‘벤처 자선사업’이라는 용어는 자선가가 직접 사업을 선택하고 참여하며 확실한 근거가 있는 목표 중심의 자선사업 방식을 옹호한다. 또한 벤처 자선이 기존의 자선 활동에 자극을 주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투명성은 기부의 견인차

메일함을 열어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보도자료가 와있습니다. 읽어보고 지우는 보도자료들 가운데, 최근 한 자료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가 올해 15년이 되었는데, 2005년 4억원이던 기부금이 지난해 109억원에 달했다는 내용입니다. 2600%나 늘었습니다. 삼성증권, 신한카드, KB국민은행, 삼성카드, 메르세데스-벤츠 등 파트너 기업이50개나 된다고 합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기업 기부금을 이렇게 확대해온 비결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박두준 상임이사는 “투명성을 바탕으로 쌓아온 신뢰”라고 했습니다. 아이들과미래는 실제 비영리기관 최초로 2001년부터 내부감사 외에 외부감사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투명성은 과연 기부금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가. 아이들과미래 사례를 보면 분명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비영리단체에선 투명성에 관해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올해 6월 말이면 자산 5억원 이상, 수입 3억원 이상 공익법인은 모두 결산서류를 공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공익법인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젠 개인 기부금이 가장 많은곳, 사업비를 가장 많이 쓰는 곳 등 기부자들이 원하는 정보들이 쏟아져나오게 됩니다. 물론 첫 해이기 때문에 공시항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껄끄러워하는 분위기도 상당히 높습니다. 국세청으로부터 공시정보를 받아서 이를 공개하는 역할을 맡은 곳은 한국가이드스타입니다. 미국 가이드스타를 본떠 이를 국내에 도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박두준 사무총장이 그 뒷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초창기에 근무하던 비영리단체에서 윗분들이 금전적으로 사고를 치는 바람에 단체가 와해됐고, 직원들도 모두 일터를 잃었다. 이후 투명성에 인생을 걸었다. 한국가이드스타가 만들어진 2008년 당시 투명성은 아무도 관심조차 없었다. 송자 이사장은 ‘우리나라 기업이 이만큼 성장한 건 공시 덕분이다. 공시를

[더나은미래 논단] 비영리조직 이사회, 기금 모으고 전문성 채우는 실질적 기여해야

[더나은미래 논단] 국내·외 비영리조직의 이사로 오랫동안 활동해오면서 국내와 해외의 비영리조직과 이사회에 대해 종종 비교해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비영리조직 이사회에 대해 매우 큰 아쉬움을 느낀다. 그 이유는 많은 경우, 이사회가 그저 거수기 또는 고무도장(rubber stamp)의 기능만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즉, 이사회의 구성원들은 이사회에 참석하고 상정된 안건이 어떠한 내용이든 이를 승인하는 도장만 찍는 형식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사실 선진국에서도 비영리조직 이사회에는 고무도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선진국의 비영리조직 이사회는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였고 결과적으로 영리직의 이사회와 같이 실질적인 의사 결정을 수행하며 중요한 과업을 담당하는 기구로 변모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사회가 비영리조직 운영에 필요한 과업을 수행하면서 실제로 파급력(impact)을 창출해내는 이사회로 기능하는 경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비영리조직에 대한 강의 시간에 ‘비영리’ 조직의 단어에 대해 우리말 발음 그대로 “비어 있어서 비영리조직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로 설명하곤 한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비영리조직은 채워야 하는 빈 부분이 너무 많다. 인력도 비어 있고, 재정도 비어 있으며, 심지어 전문성이 비어 있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력도 비어 있고,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창출하는 파급력 부문에서 비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제한성을 갖는 비영리조직에 이사(理事)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이사회의 이사는 제한된 인적자원을 보완해줄 수 있고, 재정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조직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또한 비영리조직의 사회적 영향력과 파급력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가죽 골라내고 기름때 닦고… 가방으로 완성되는 데 열흘

정성이半, 업사이클링제품 제조 과정 최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업사이클링 제품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자투리 가죽을 붙여 만드는 ‘패치가죽클러치’의 과정엔 ‘정성’이 절반 이상이다. “소파를 만드는 업체에서 만들다 남은 것, 상처가 있는 것, 변색된 것 등 자투리 가죽을 기부받아 와요. 손바닥만 한 것부터 방석 크기, 제각각이죠. 열 포대 정도를 가져와서 쫙 펼쳐놓고 상품이 될 만한 걸 골라내면 한 포대 정도로 줄어듭니다. 글씨 같은 게 새겨져 있으면 일일이 지워야 하고요. 전부 사람 손을 거쳐야 하죠.” 이승선 에코파티메아리 팀장의 설명이다. 이후에는 프레스로 조각을 이어 붙이고, 안감을 대서 어엿한 가방의 모습을 갖춘다. 열흘 정도가 걸리는 공정이다. “아무리 닦아내도 기름때가 남아 있을 때면 ‘100만원은 받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 정지은 세컨드비 대표가 말하는 고충이다. 자전거 폐소모품으로 인테리어 장식품과 장신구 등을 만드는 정 대표는 경기도 구리 지역의 자전거 매장 3곳을 돌며 밑재료를 마련한다. “두 달에 한 번씩 가서 버려진 부품을 구해와요. 바퀴, 타이어, 스프로킷(톱니바퀴 모양의 체인을 거는 부품), 체인 같은 것들이죠. 고물상에도 팔 수 있는 것들이라 개당 5000원을 주고 사오는데, 한 번 갈 때 보통 30만원어치를 장만합니다.” 기름에 찌든 부품들이라 세척이 관건이다. 전부 세세하게 분해를 한 후 닦아내는 데 3일 정도가 소요된다. “마른 무쇠 솔로 겉을 털어내고, 탄산수소나트륨으로 기름기를 없애죠. 그다음에 물로 닦고요. 워낙 찌든 기름때라 정말 끝이 없어요. 세척이 끝나면 작업 절반이 끝났다고 봐도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