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장학에 대한 편견을 깨다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장학에 대한 편견을 깨다

[Cover Story] 진화하는 장학사업 장학사업은 비영리 업계의 전통적 자선 프로그램이다. 국내 최초의 공익 재단도 장학사업으로 시작했다. 1939년 설립된 ‘양영회(養英會)’는 일제강점기에 지방에서 서울로, 바다 건너 일본으로 유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해방 이후 기업 주도로 생긴 여러 공익 재단들도 대부분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로 학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장학사업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폭넓게 이뤄져 온 장학 대상자를 분야별 우수 학생으로 특정하고, 해외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오는 유학생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개인에 대한 지원이 아닌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스타트업 지원’까지 장학사업의 범주에 포함하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2007년 재단 설립 이후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장학사업을 벌였다. 지난 2021년에는 기존 장학사업을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scholarship)’이라는 이름으로 개편하고 장학의 편견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글로벌 ▲미래산업 ▲국제협력 ▲사회혁신 ▲문화예술 ▲사회통합 등 장학을 여섯 분야로 나누고 아세안 8국 유학생, 이공계 석·박사, 클래식 전공자, 청년 창업가 등으로 스칼러십 펠로우로 늘려가는 중이다. 향후 5년간 미래 인재 1100명을 육성한다는 게 재단의 목표다. 하나, 사회혁신가를 키워라 올해 17년 차를 맞은 현대차정몽구재단의 기금은 총 8500억원. 정몽구 명예회장 사재로 출연했다. 2007년 11월 600억원을 시작으로 2008년 300억원, 2009년 600억원을 출연했다. 본격적인 장학사업이 시작된 2011년에는 개인 사재 출연금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5000억원을 기탁했다. 2013년에는 1000억원씩 두 차례에 걸쳐 사재를 증여했다. 재단 운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아빠는 육아 중" 휴직 권하는 남초 기업
“아빠는 육아 중” 휴직 권하는 남초 기업

[Cover Story] 초저출산 난제 해결에 나선 기업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 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통계가 나온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양육’의 어려움은 저출산의 주요인 중 하나다. 최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대기업들이 직원 대상으로 출산·양육 지원 제도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남성 직원 비율이 높은 기업들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전체 직원의 80~90%가 남성인 철강·자동차·화학 기업들은 ‘가족 친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법적 기준보다 폭넓게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양육기에 근무시간을 단축하거나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출산 장려금도 지급한다. 그간 여성 비율이 높은 유통·금융·식품 기업에서 ‘여성 친화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여성 직원들 위주로 정책을 내놨던 것과 조금 다르다. 남성들도 출산과 양육에 동참해야 저출산 해결에 근본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취지다. 포스코 등 남초(男超) 기업들, 공격적 양육 지원책 도입 “처음에는 휴직하려고 했어요. 아내가 출산휴가 3개월간 아이 셋을 돌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맞벌이를 하다가 둘 다 일을 쉬면 소득이 크게 줄어드니까 많이 고민했죠. 회사에 육아기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2년까지 쓸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한번 해보기로 했어요.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해 오후 5시까지 평소처럼 일하면서 첫째 아이 유치원 하원시키고 틈틈이 다른 아이들을 돌봅니다. 왕복 3시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을 벌 수 있어서 아내는 물론 아이들도 무척 만족해요.” 포스코의 성하철(34) 과장은 하루를 새벽 6시에 시작한다. 생후

어른 없는 세상에서 어른을 만나는 법. /GettyImagesBank
[2023 가정밖청소년 보고서] 어른 없는 세상에서 어른을 만나는 법

더나은미래, 민간단체 10곳 대상 FGI 진행현장 전문가들 “가정밖청소년 규모 수십만 명 될 것”거리로 내몰린 아이들 마약·도박 등 범죄에 노출 박영미 7R청소년공감센터장은 얼마 전 경기 모 지역에 있는 조폭 두목을 만나고 왔다. 센터에서 돌보는 아이들이 조직원 명함을 받아온 게 화근이었다. 폭력 조직에 가입하면 300만원을 주겠다며 아이들을 꾀어냈다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두려운 마음을 다잡기 위해 기도를 했어요. 두목과 대면해 ‘우리 애들이 아직 어리니까 접근하지 말아 달라’고 차분하게 말했어요. 좋게 얘기하다 안 돼서 알고 있는 기업인, 정치인 이름을 다 댔죠. 이 사람들 다 내 지인이니까 애들 건들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고요. 지금 생각해도 떨리네요.” 경기 광주 지역 ‘가정밖청소년’들 사이에서 박 센터장은 유명인이다. 센터에서 공식적으로 돌보는 아이들은 12명이지만, 연락하고 지내는 아이들은 수십 명이다. 문제가 생겨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면 박 센터장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친구가 자살하려고 할 때도 박 센터장을 찾는다. “애들이 저에 대한 확신이 있거든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주고, 지지해 줄 거라는 확신이요. 부모한테 학대당하고 무시당했어도 어른 한 명에게만 사랑을 받으면 애들은 변해요. 문제 행동이 확실히 줄어요. 이걸 우리 센터의 ‘실적’이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저는 알잖아요. 애들이 제게 보내는 진심을요.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저버리겠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정밖청소년’은 사각지대 중의 사각지대로 통한다. 정부는 가정밖청소년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정밖청소년을 위한 유일한 안전망인 ‘쉼터’조차 엄격한 규율 때문에

세상을 위해 베팅하라

[Cover Story] 대담한 자선 ‘빅벳 필란트로피’ 전 세계 억만장자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돈을 ‘베팅’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빅벳 필란트로피’라고 불리는 새로운 방식의 기부다. 빅벳 필란트로피는 ‘거액의 판돈’을 뜻하는 빅벳(Big Bet)과 ‘기부’를 뜻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가 합쳐진 말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치 베팅하듯이 큰돈을 내놓는 자선 활동을 의미한다. 8조7000억원이라는 큰돈을 투입해 인류의 오랜 숙제였던 ‘소아마비 퇴치’에 성공한 빌 게이츠(Bill Gates)의 기부가 대표적인 ‘빅벳’ 사례다. 한국에서도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을 중심으로 빅벳 필란트로피가 시도되면서 기부 문화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소아마비 종식에 얼마가 필요할까? 소아마비는 폴리오(polio)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으로 열병을 앓고 나서 신체 일부가 마비되는 후유증을 남긴다. 백신이 개발되면서 선진국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아프리카와 중동 등 저개발국에서는 2000년 이후에도 매년 수천 명의 아이가 소아마비로 장애를 얻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2000년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을 설립한 뒤 ‘소아마비 종식’을 선언하며 막대한 규모의 지원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베팅’을 시작한 것이다. 게이츠재단이 지난 20여 년간 ‘세계소아마비퇴치운동(GPEI)’이라는 단체에 기부한 돈은 62억달러(약 7조8000억원)에 이른다. 대규모 지원금 덕에 변종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이 지속적으로 개발될 수 있었고 백신 보급도 원활하게 이뤄졌다. 그 결과 2022년 기준 전 세계 소아마비 발병은 30건을 기록했다. 사실상 소아마비가 종식된 셈이지만 게이츠는 완전히 뿌리가 뽑힐 때까지 지원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소아마비 발병 사례가 마지막으로 발생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지원을 안정적으로 이어간다면 앞으로 3~4년 안에 소아마비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며 “소아마비는 천연두

'공공·민간' 양 날개로 아동 보호 나선다
‘공공·민간’ 양 날개로 아동 보호 나선다

[더나은미래x굿네이버스 공동기획]아동학대 대응 최우선 과제는? A(16)양은 퇴원을 앞두고 있다. 극심한 강박과 불안 증세로 지난 6개월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최근 정서적 안정을 되찾으면서 주치의와 퇴원 시점을 논의하고 있다. 웃음이 많아진 그의 얼굴에도 문득 그늘이 드리울 때가 있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A양은 아동학대 피해자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A양을 아동학대 피해자로 보호하게 된 건 지난 2월부터다. 당시 경기 용인의 한 지구대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랑 크게 말다툼을 하다 심하게 맞았어요. 지금 엄마가 집을 비웠거든요. 빨리 좀 와주세요.”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신고자는 A양이었다. 경찰은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조사 결과 아동학대 정황이 발견됐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A양은 친모와 지속적인 갈등을 겪어왔다고 진술했다. 과거에는 체벌을 당했고, 신고 하루 전에는 친모와 다툰 끝에 충동적으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난간에 다리가 걸렸다”며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이럴 바엔 죽어라’라고 말한 뒤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신고자의 얘기를 들은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아동의 심리적 불안 증세로 원가정 보호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A양을 용인에 있는 학대아동피해쉼터로 보냈다. 하지만 쉼터에서의 생활도 녹록지 않았고, 결국 지난 5월 심리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아동학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경기용인아동보호전문기관의 오세인 상담원은 “이번 사건의 경우 학대 피해자가 심리적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면서 “아동학대 사건 대응은 장기적으로 이뤄지며 학대 피해 아동쉼터전문 요원,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 상담원 등

한국 자원봉사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강현(사진 오른쪽) 전 세계자원봉사협의회(IAVE) 회장과 권미영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이 만났다. 코로나 팬데믹 3년, 자원봉사의 역할과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혐오를 연대로 바꾼 자원봉사의 힘

[이강현·권미영 대담] 코로나 팬데믹 3년… 자원봉사를 말하다 대규모 봉사는 줄었지만 시민 주도 자원봉사 늘어모든 시민 ‘책임’ 다해야 공동체 무너지지 않아팬데믹 활약한 자원봉사 사회적 분위기 전환시켜 코로나 3년. 자원봉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집합적 형태의 대규모 자원봉사는 줄었지만 시민이 주도하는 ‘비공식 자원봉사’의 영역은 오히려 확장하는 추세다. 착한 가게를 지정해 ‘돈쭐’ 내는 온라인 캠페인을 벌이는 것, 산책을 하며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는 것, 지역의 크고 작은 문제를 고민하는 모임을 만드는 것도 자원봉사에 해당한다. 자원봉사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이때, 미국에 있던 이강현(77) 회장이 잠시 입국했다. 우리나라 자원봉사 역사에서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주요 자원봉사 단체와 조직, 제도와 정책이 대부분 그의 아이디어와 기획을 거쳐 탄생했다.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원봉사 전문기구인 ‘한국자원봉사연합회’를 만들었고, 1996년 자원봉사관리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볼런티어21(현 한국자원봉사문화)’을 창립했다. 2008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자원봉사협의회(IAVE) 회장에 뽑혀 7년간 국제사회의 자원봉사 운동을 이끌었다. 그의 한국 방문을 누구보다 기다린 이가 권미영(56)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이다. 중앙센터를 이끌면서 고민이 생길 때마다 이강현 회장이 10여 년 전 펴낸 ‘자원봉사의 길’이라는 책을 꺼내 읽는다. 팬데믹 시대에 자원봉사는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난달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회의실에서 이강현 회장과 권미영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는 법 ―최근 우리나라 자원봉사의 흐름을 어떻게 보는가. 이강현=자원봉사에는 두 개의 큰 축이 있다. 한 축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개인의 어려움을 돌보는 것. 다른 한 축은 시민운동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베트남 호아빈성 마이쩌우현에서 지난 3년간 진행된 ‘그린라이트 프로젝트’ 활동으로 이뤄진 업사이클 놀이터 조성에 현지 어린이들이 동참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초록색 쓰레기통 생기자, 마을이 달라졌다

기아×굿네이버스 ‘그린라이트 프로젝트’ 10년의 임팩트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남서쪽으로 140㎞ 떨어진 마이쩌우현. 스물세 개 마을로 이뤄진 인구 6만3000명의 작은 지방정부다. 십여 년 전부터 이 지역에 쓰레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불어나는 생활 쓰레기를 감당할 수 없어서 길가에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가정에서는 온갖 쓰레기를 한데 쌓아놓고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이쩌우현에도 쓰레기 처리 시설이 한 곳 있었지만 규모가 작았다. 도로 정비가 제대로 안 된 탓에 처리 시설로 쓰레기를 보낼 방법조차 없는 마을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 변화가 시작된 건 지난 2019년부터다. 거리에 쌓였던 쓰레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을마다 초록색 쓰레기통이 생기더니 1.5t짜리 쓰레기 수거 트럭이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쓰레기 처리 센터도 새롭게 건립됐다. 센터에는 분리수거한 폐플라스틱을 ‘펠릿’으로 재가공하는 시설이 마련됐다. 건축 자재나 바닥재로 사용되는 펠릿의 판매 수익은 쓰레기 처리 센터의 운영비로 쓰인다. 기아와 굿네이버스가 지난 3년간 마이쩌우현에서 함께 진행한 ‘그린라이트 프로젝트(GLP ·Green Light Project)’의 결과물이다. 그 많던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GLP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지역사회 자립과 환경 개선을 목표로 지난 2012년 시작됐다. 지난 10년간 진행한 GLP 프로젝트는 총 12개. 한 프로젝트당 3~5년 정도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베트남 마이쩌우현은 GLP의 열두 번째 거점이자 아시아 첫 거점이다. 사업에서 가장 중점을 둔 건 지속가능한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다. 기존 쓰레기 처리 시설을 센터로 증축하고, 수거 차량 2대를 지원해 수거 가능 지역을 기존 6곳에서 11곳으로

지난달 25일 강원 강릉 서부시장 2층에서 열린 'CCC 페스타'에서 래퍼 윤비(YunB)가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장 옆에서는 간단한 먹을거리와 잡화, 의류 등을 파는 마켓이 열렸다. /강릉=이경호 C영상미디어 기자
강릉의 핫 플레이스 ‘서부시장’을 아시나요?

서부시장 지역재생사업 3년의 임팩트 현대차그룹·지자체 등 힘 모아내부 리모델링, 청년 공간 조성공연·자동차 극장·마켓 등 열어시장 주변 상권 점점 활기 찾아 “서울에서 친구랑 여행 왔는데 강릉 사는 지인이 꼭 서부시장에 가보라고 해서 들렀어요. 타로점도 보고 가방도 샀어요. 자체 기획한 제품이랑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오래 구경하다가 가요.”(김도연·24)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에요. 판매자들도 친절하고, 젊은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 오게 돼요. 강릉에 살면서도 주말에 아이들이랑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아쉬웠는데 여긴 볼 것도 먹을 것도 참 많아서 좋아요.”(조옥주·40) 강원 강릉 용강동에 있는 45년 된 ‘서부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구도심 한가운데 삼각형으로 지어진 독특한 건물. 그곳 1~2층 서부시장을 사람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지난달 25~26일 열린 서부시장 ‘CCC 페스타’에는 1100여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다녀갔다. 래퍼 윤비가 공연을 하고, 먹을거리와 잡화를 파는 마켓도 열렸다. 팝콘 대신 감자전 먹는 ‘힙’한 극장 불과 2년 전만 해도 서부시장은 사람들이 잊은 곳이었다. 한때는 북적이던 시내 중심지였지만 구도심이 쇠퇴하고 강릉 인구가 감소하면서 활력을 잃어갔다. 2020년 4월 현대자동차그룹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골목(2014), 광주 청춘발산마을(2015)에 이어 강릉 서부시장을 세 번째 ‘지역재생 지원사업’ 지역으로 선정했다. 현대차는 강릉시, 사회적기업 공공미술프리즘과 손잡고 시장 안을 리모델링해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유다희 공공미술프리즘 대표는 “환경을 정비하고 청년을 몰아넣는 ‘점포’ 위주 지역재생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과 정보를 나누고 교류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마켓’ 방식 지역재생을 택했다”면서 “서부시장이

세상에서 자원봉사가 사라진다면...
세상에서 자원봉사가 사라진다면…

[더나은미래x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공동기획] 지금은 자원봉사 시대 코로나 때 자원봉사 없었다면 못 버텼을 것팬데믹 2년 동안 투입된 봉사자 ‘368만명’백신 접종 지원만 22만명… 현장 혼란 막아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현장에는 봉사자들이 달려간다. 지난달 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남 밀양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이튿날부터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 밀양시자원봉사센터를 비롯해 새마을부녀회, 밀양청년회의소 등이 참여한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이 현장에 설치됐고 이재민과 산불 진화 인력에 대한 급식 봉사 등 재난 현장에 필요한 자원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재난 현장에는 반드시 자원봉사자가 있다. 올해 초 동해안 산불이 발생했을 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때도 그랬다. 이번 팬데믹 기간에는 코로나19 대응 활동에만 368만6493명의 자원봉사자가 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지난 2년간 국내 전체 자원봉사 인원은 2763만7629명에 이른다. 현장 전문가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제 봉사자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2년간 투입된 자원봉사자 수를 환산하면 매일 3만7859명이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셈이다. 이 땅에 자원봉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봉사자가 없어져도 재난은 발생할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년간 코로나19 대응에 나선 자원봉사자는 크게 14개 영역으로 구분된 활동을 펼쳤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대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방역 소독에 82만9098명이 참여했다. 이어 취약계층 지원에 66만1834명, 기후위기 대응 활동에 47만8465명이 나섰다. 이 세 분야가 전체의 절반 넘는 53.4%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홍보 캠페인(29만2394명) ▲공공장소 검역 지원(16만6419명) ▲심리상담(3만8585명) ▲격리자 지원(1만6796명) ▲현장 관계자

[우크라이나 난민 르포] 부서진 터전, 사라진 삶 되찾을 때까지

“이곳을 떠나야 한다. 국경을 넘어라. 러시아 군인들이 들어오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엄마와 함께 일단 떠나라.” 아버지가 딸에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출발해 이웃 나라 몰도바를 거쳐 루마니아까지 직접 차를 몰고 가야 하는 험난한 피란길이었다. 2월 24일(이하 현지 시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러시아 군함이 들이닥친 오데사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설득에 못 이겨 옐리자베타 마르첸코(22)는 엄마와 함께 피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57세의 아버지는 고향에 남아야 했다. 18~60세 우크라이나 남성을 대상으로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지면서 출국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차를 정비했다. 기름도 가득 채워넣었다. 3월 2일 새벽, 모녀는 집을 나섰다.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나 믿지 말아라.” 헤어지기 전 아버지는 딸에게 여러 차례 당부했다. 가족은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날은 옐리자베타의 스물두 번째 생일이었다. 두 달 넘게 계속된 전쟁으로 4월 말 기준 우크라이나 국민 1300만명이 피란민 신세가 됐다. 전체 인구(약 4100만명)의 4분의 1이 넘는 숫자다. 530만명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났고, 770만명은 국내를 떠돌고 있다. 난민들이 처한 인도적 위기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국제구호개발 NGO인 ‘한국월드비전’과 함께 루마니아를 찾았다. 지난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제2의 도시인 ‘이아시’,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인 ‘시레트’ 등을 돌며 우크라이나 난민을 만났다. ‘루마니아월드비전’ 자원봉사자로 합류한 옐리자베타가 한국 팀의 일정을 함께 하며 통역을 도왔다. # 전쟁을 목격한 눈동자 루마니아 이아시 공항에서 차로 4시간을 달려 국경 검문소가 있는

‘여성의 삶’ 응원한 40년 발자취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40주년] 여성의 역사에는 굴곡이 많았다. 40여 년 전까지도 우리나라에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았다. 1980년 국내 여성 청소년의 고등학교 취학률은 56.2%였다. 그 나이대 여성 청소년 2명 중 1명만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셈이다. 대학교 취학률은 8.1%. 남성의 절반 수준이었다. 1990년대에는 민주화 물결을 타고 다양한 여성 이슈가 조명됐다.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굵직한 법들이 제정되는 등 여성운동도 탄력을 받았다. 여성을 지원하는 단체 수도 크게 늘었다. 2000년대에는 ‘여성의 일’이 화두였다. 여성의 교육 수준은 높아졌지만 출산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 몫이었고 여성은 사회 진출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1982년 설립된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설립명 태평양 복지회)의 역사는 우리나라 여성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80·90년대 재단의 주요 사업은 ‘여학생 교육 지원’이었다. 1990년대부터는 ‘여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업에도 집중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 시설에 생필품을 전달하고 시설 개·보수 등을 지원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여성의 자립’을 돕기 위해 다양한 여성 취업 지원 사업을 전개했다. 지난해 기준 재단의 누적 지원금은 약 153억8500만원. 지원 건수는 6만여 건에 달한다. 화장품 기업으로서 여성과 함께해 온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의 40년을 돌아봤다. ‘여성의 공간’을 만들어 드립니다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이 여고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건 설립 이듬해인 1983년부터다. 1989년 기준 여고생 4000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1990년 여성의 고등학교 취학률은 85.4%로 크게 높아졌지만, 대학교 취학률은 24.5%로 여전히 낮았다. 당시 대학생 104만명 중 여대생은 29만6100명(28.5%)에 불과했다. 1993년 여대생 장학금 사업을 신설한 이유다. 1990년대는 국내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