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기부·사회공헌도 ‘진짜’ 잘해야 하는 시대

후배 남편은 책도 펴낸 셰프다. 나누고 싶다는 뜻을 품더니, 기어이 동료 셰프 20명을 모았나 보다. 나에게 SOS를 청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직접 요리 재료를 사들고 가서 보육원 아이들 맛있는 걸 해먹이고 싶은데, 어떻게 연락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봉사할 보육원 찾기에 나섰다. 수도권인지 지역인지, 보육원 아이들 규모는 몇 명인지, 해당 보육원이 열정이 있는지…. 여기저기 묻고 부탁해서 다행히 연결시켜줬는데, ‘더나은미래’ 편집장으로 지닌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일반 개인이 알아보기엔 참 힘든 구조라고 생각됐다. 지난주에 만난 한 기업 홍보 책임자는 자선 콘서트 때문에 겪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회장님은 자선 콘서트를 많이, 자주 열어서 나눔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데, 표가 안 팔려 실무자들이 온갖 고생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고생스레 모은 기부금을 받은 단체는 홍보조차 도와주지 않고 기부금 사용에 대한 피드백도 아예 없다고 했다. 밖에서 보면 기부나 사회공헌은 참 멋진 일이다. 하지만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드러내놓고 말 못 할 사연이 참 많다. 기업 사회공헌 기금 중 일부가 준조세요, 민원 해결형 후원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비영리 혹은 복지기관에선 기부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관료화로 인해, 실제 원하는 진짜 임팩트를 내기 힘든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눈먼 돈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지금까지는 ‘목적이 좋으니, 과정에서 약간 부족함이 있어도 참아주자’는 온정주의가 컸다. 최순실 사태는 이 분위기를 바꿀 것 같다. 기업마다 기부금 집행 과정의 절차적 투명성을 챙기려 노력한다. 사업의

[김종걸 교수의 미래혁신과 민주주의-②] 촛불혁명 10법 구상

비정상의 일상화  누계 1500만개의 촛불이 전국의 광장을 밝힌 이유는 단지 보수정치에 염증을 느껴서도 개헌을 원해서도 아니었다. 정권의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행위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질타였다. 단언컨대 박근혜 정부는 너무나 무능했다. 경제가 특히 그렇다. 취임 후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는 4% 잠재성장률, 70% 고용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의 초석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국가부채는 2008년 300조원에서 지금은 600조원을 넘어섰다. 민영화로 팔려나간 국가재산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자금을 투여했다. 그런데도 경제는 여전히 그 모양이었다. 정책의 중심이었던 창조경제는 정권 내내 애매했으며, 노동개혁과 규제완화를 통한 일자리 확대논리도 설득력이 거의 없었다. 정작 개혁되어야 할 것은 그대로 온존되거나 더욱 강고해졌다. 재벌경제는 변화할 조짐조차 없었으며 오히려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그 엄청난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1년 뒤 메르스 사태 때도 위기대처능력의 부재는 똑같았다. 전염력이 낮다고 했으나 4차 감염은 현실화됐고 온 국민은 불안에 떨었다. 교육부는 휴교를 말하고 복지부는 등교를 말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민관합동종합대응팀,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즉각대응팀 등 컨트롤타워는 어지럽게 난립했다. 누가 결정하고 책임지는지 오리무중이었으며, 당연히 신속한 결정은 불가능했다. 그 지경이 되도록 대통령은 느지막이 나타나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확실하게 발동시켰던 에너지는 바로 증오의 에너지였다. 그들은 국민을 개혁의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국민을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구분시켰다. 해묵은 진영논리로 모든 경제사회적 논쟁들을 가두어버린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는 탈냉전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둘러싼 합리적인 대안들 간의 경쟁구도를

[여문환의 비영리 현장 이야기-①] 비정부 국제회의에서 살아남는 10가지 방법

국제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다 보니 이러 저러한 이유로 국제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민간외교 차원에서 이러한 국제행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외국인들이 우리를 통하여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회의는 회의 주제에 대한 정보 교환 및 지식 습득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식사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한국의 여러 가지 소소한 일상생활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다.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이 엄청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에서 왜 그렇게 북한이 포를 쏘아대느냐는 남북관계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일본은 왜 반성하지 않느냐는 민감한 질문까지 그 폭이 매우 넓고 다양하다. 이렇게 짧은 만남 속에서 관계 형성을 하고 우정을 쌓기란 쉽지 않지만, 타문화에 대한 태도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는 두 가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첫째는 우리 것과 우리 문화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둘째는 타문화를 무시하지는 않나 하는 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서구중심주의가 우리 안에 내재화되어 부지불식간에 중심국의 입장에 서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국제회의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보자. 첫째는 유머 감각이다. 영어 혹은 외국어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말로 남을 웃길 수 있을까? 하지만 한국말로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 영어로도 남을 웃게 한다. 시차로 생기는 피곤함을 가실 수 있게 하는 유머 한방이 필요하다. 둘째, 국제회의를 준비하고 주관하는 기관 혹은 단체의 사소한 것을 먼저 도와주는 것이다. 100명 이상이 참여하는 국제회의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

[보니따의 지속가능한 세상만들기] 비글은 왜 샴푸를 싫어할까?

외출을 하기 전 무엇을 하시나요? 혹시 샴푸로 머리를 감고, 세안 후 스킨 로션, 햇볕을 차단하기 위한 선크림을 바르지는 않나요? 여기에 더해 피부의 잡티를 가려줄 비비 크림과 파우더, 인상을 또렷하게 해줄 눈 화장과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립스틱을 바를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피부는 하루 종일 화학 제품의 자극을 받습니다. 이런 이류로 제품을 고를 때, ‘눈에 자극 없습니다’, ‘민감성 피부에도 좋습니다’, ‘먹어도 될 만큼 안전합니다’라는 문구에 절로 눈길이 향합니다. 화장품이 눈에 들어가도 문제가 없는지,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지. 회사들은 어떻게 알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우리의 안전을 위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영화보다 더 끔찍한 현실, 앞을 보지 못하는 실험용 비글 “우리는 P&G의 모든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습니다. 그 동안 구매했던 모든 제품도 폐기할 것이며,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P&G 제품인 샴푸 ‘해드 앤 숄더’와 함께 한쪽 눈이 실로 꿰매진 비글의 처참한 모습이 담긴 캠페인이 인터넷 사이트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과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 날에도 동물들은 끊임없이 실험대에 올라갑니다. 바로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성품이 온화하고 인내심이 강한 비글입니다. 인간의 몸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알기 위해 비글의 머리와 얼굴에 샴푸를 뿌립니다. 이런 실험은 두 눈이 멀 때까지 지속 됩니다. 실험이 끝나면 남은 생은 편안하게 살 수

[이재혁 교수의 CSR 전략-③] 우리 회사의 CSR은 전략적인가?

우리 회사의 CSR은 전략적인가?    스포츠경기가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 ‘전략의 승리’ 혹은 ‘전략의 부재’라는 평가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전략이라는 용어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대화 시기의 국가 정책(국가발전을 위해 특정 산업에 전략적 집중투자), 개인의 생활(전략적 대학 입시 및 취업 준비), 기업의 경영활동(산업융합화에 대비한 다른 업종 기업들간의 전략적 제휴)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말하는 ‘전략’이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이기는 방법’을 떠올린다. 이는 오답은 아니지만 만족스런 답변도 아니다. 전략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는 수단’을 말한다. 따라서 전략을 이기는 방법으로만 국한시키면 안된다.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대내외적 경영환경에 따라 이기는 것 외에도 다양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전략에 대한 이 단순한 정의에는 크게 두 가지의 중요한 시사점이 포함돼있다. 첫째, 전략을 이해할 때 그 방점을 수단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략은 수립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전략이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달성했는지, 실행 이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전략은 무언가를 달성하고자 하는 수단인데, 이는 해당 기업이 설정한 목표를 말한다. 따라서 여러 기업들이 동일한 목표를 설정하더라도 내외부 경영환경에 따라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 즉 전략은 기업별로 다양하게 수립되고 실행될 수밖에 없다. 이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책임)로 국한시켜 생각해보자. ‘우리 회사의 CSR이 전략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해당 기업이 CSR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장기기증과 건강보험, 밥벌이의 관료화

얼마 전, 장기기증과 관련된 속 터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 장기기증 서약자는 123만명. 성인 인구의 2.5%다(미국은 48%, 영국은 35% 정도로 높다). 장기기증 수치만 올라가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재정 1조2000억원이 줄어든다고 했다. 왜 그럴까. 건강보험재정 지출 2순위는 만성신부전증인데, 가장 좋은 치료법은 신장이식이다. 한데 장기 이식이 활성화 안 돼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건강보험 재정에서 쓰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에선 정부가 장기기증 서약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 매년 5억원가량의 예산을 쓴다. 20년 넘게 반복된 패턴이다. 예산 5억원을 쓰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민간단체에 보조금 식으로 쪼개서 나눠주는 방식이다. 어림잡아 20조원을 쓰고도 문제 해결에 실패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면 퇴근해 괜히 남편에게 화풀이를 한다. 공무원인 남편을 몰아붙이며, “정부는 규제만 하지 말고, 문제해결에 집중하면 안 되냐”는 식이다. ‘옵트 아웃(opt-out)’ 방식이라도 시도해볼 순 없었을까. 운전면허증을 발급할 때 ‘장기기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주고, 거기에 체크하도록 해 체크하지 않으면 장기기증에 동의하는 형태 말이다. 아마 누군가는 이런 의견을 냈을 지도 모르고, 시도했다가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뭔가를 해보려 하다 잘못되면 된통 책임지는 게 공무원 일상이다 보니, 어느새 정부는 ‘효율’보다 ‘공정’만 우선시하는 공룡이 됐는지도 모른다. 신년 들어 임팩트 투자, 소셜벤처 등 사회문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을 많이 만나다 보니, 더더욱 속이 상한다. 400조원 정부 예산 중 0.1%만이라도 과감하게 ‘미친 듯한’ 도전에 쓰이면 안 될까. 해결해야 할 목표만 주고, 그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등 어떤

[오승훈의 공익마케팅-⑨] 교주가 아닌 리더를 위한 리더십

뜬금없이 친구가 물었다. “내일 부산 갈까?” 당신은 뭐라고 할까? ‘뭐 타고 갈 거야?’일까, ‘부산은 왜 가는데’일까? 가는 방법을 되묻는다면, 당신은 그 친구에 대한 절대 믿음이 있다. 흔히들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한다. 보통은 ‘왜’를 묻는다. 이 ‘왜’가 목적이고, 조직의 경영에서 미션이다. 구성원들이 리더에 대해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졌는지에 대해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리더가 하는 일에 ‘그거 왜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이 없다면, 그 리더는 교주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리더가 모든 일을 결정하고 주관할 수 있으며, 성공했을 때의 권리와 실패했을 때의 책임을 모두 갖게 된다. 그야말로 ‘완벽한’ 리더십이다. 완벽한 리더십을 가질 수 없다면, 미션에 의한 리더십을 고려해 보라. 어떤 일을 하든 ‘우리에게 이 일이 왜 필요한지, 우리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성원들과 충분한 토론을 해라. 구성원과 리더가 미션과 목적에 공감대를 이룬 후에 시작하라. 일하는 방법은 그 후에 필요하다. 목표와 방법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일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부산으로 가보자. 왜 부산으로 가야 하는지 모른 체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 가서 뭘 해야 할까? 부산에 도착했다고 뿌듯할까? 심지어 부산에 간 것은 잘한 일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부산에 가는 이유가 신선한 회를 먹고 싶어서였다고 하자. 부산이 아니라 강릉이나 제부도를 가도 되지 않았을까? 부산에서든 제부도에서든 신선한 회를 먹었다면, 우리는 그곳에 다녀온 것을 잘했다며 뿌듯해 할 수 있다. 조직이 가려는 방향은 미션에 기인한다. 왜 출발해야

[김종걸 교수의 미래혁신과 민주주의-①] 퍼펙트 스톰이 다가온다

퍼펙트 스톰이 다가온다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시대적 전환의 한복판에 서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시대전환의 창조적 파괴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의 시대는 기존에 믿어왔던 모든 것을 근저로부터 뒤흔들고 있다. 이 시대적 전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위기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3저(低)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저성장, 저일자리, 저출산의 3저 시대다. 무엇보다 미래세대인 청년실업은 IMF 경제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2015년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청년층 실업률은 지난해에는 9.8%로 10%에 육박했다. 실업자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만약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저성장의 고착화로 인해 일자리는 더욱 더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3불(不)의 시대, 즉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기회의 불평등, 지역발전의 불균형 속에 살고 있다. 세칭 ‘금수저’들은 혼맥·학맥·금맥의 동심원을 이용해 사회적 지위를 겹겹이 쌓아간다. 소득불평등의 증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비정규직 비율의 증가,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간의 격차확대, 절대빈곤율의 상승 등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격차사회는 지역 간 불균형으로도 나타나고 결국 지방소멸의 위기로까지 확대된다.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인구구조변화와 지속가능한 행정기능 발전방안”, 2015년, 행정자치부)에 의하면 전남 고흥, 경남 합천 등 21개의 지역에서는 2048년 인구가 2013년 대비 절반 이상으로 급감한다. 반면 부산 기장, 경기 김포, 인천 서구 등 19개 지역은 인구가 100% 이상 증가한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한국사회의 과제가 인구감소・고령화라는 평면적인

[비영리활동가의 일과 삶의 균형⑩] 함께 행복한 정의로운 사회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2012년 대선 당시 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공약이 사회적으로 큰 공감대를 얻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그리 어렵지 않다. 퇴근 후 가족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이고, 부부가 손잡고 가까운 천변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며, 가끔 친구나 이웃과 맥주 한잔 가볍게 하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며, 아이가 잠들기 전 책 한권 읽어주는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리 어렵지 않은 그 일들이 더욱 어려워져만 간다. 작년 10월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국민들은 ‘주말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국가가 나를 책임져 주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스스로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국가는 세월호,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조류독감(AI)파동 등 거듭되는 참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서민경제를 지키지 못했고, 특정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이 맡겨놓은 자산마저도 훼손하였다. 국민들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을 겪으며 어느 때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통해 약 5천명의 촛불시민들이 적은 새해 소원에는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아이와 가족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함께 사는 좋은 나라 대한민국’ 등이 선정되었다. 촛불민심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국민들의 열망을 담고 있다.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후보들도 한결같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에

[이재혁 교수의 CSR 전략-②] 돈을 벌어야 하나? 선을 행해야 하나?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기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취약계층, 복지 사각지대, 공유가치 창출 등의 용어를 떠올리면서 ‘사회공헌’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면서, 기업과 사회가 서로 win-win할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반면에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돈을 버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친기업 정서에 빠져있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다. ‘이윤 창출’이라고 고상하게 대답하더라도, 속물자본주의 성향을 드러낸 사람에게 보내는 차가운 눈빛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업의 존재 이유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아마도 밀튼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일 것이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그는 1980년 뉴욕타임즈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증진시키는 것)”. 기업의 책임 중에서 경제적 책임만 유일하게 강조하는 것 같은 이 표현이, 기업 역할에 관한 논쟁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Mulligan, T., “A critique of Milton Friedman’s essay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Journal of Business Ethics>, 5(4), 1986).  기업의 존재 이유가 사회공헌인가? 재벌닷컴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에 53개의 기업들이 총 774억원을 기부하였으며, 그 중에서 12개 기업은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자의건 타의건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는 기업을 비하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사회공헌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    글로벌화 시대, 산업 융합화 시대에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⑧ 문제 정의에 관한 문제 #2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아침에 눈을 떴더니 집 앞에 지름 30m의 싱크홀이 생겼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더니, 모두 삽 한 자루씩을 들고 왔다. 문제가 해결될까? 지질, 토목, 건축 등 관련 전문가와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들도 모두 모여야 한다. 반대로 지름 1m의 웅덩이가 생겼다. 이웃집에 연락했더니, 지질, 토목, 건축 전문가와 정부, 지자체에 연락하겠다고 한다. 이때는 삽 한 자루만 들고 오면 된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해결 대안은 크기가 맞아야 한다. 큰 문제를 지향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지나치게 크다’라는 말은 상대적이다. 큰 문제를 정의했다면 그에 맞는 대안이 있어야 하고, 문제를 작게 정의했다면 또 그에 적절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환경 문제’를 제기할 때는 그에 맞는 해결 대안을, ‘한강 수질 오염 문제’를 제기할 때는 또 그에 맞는 해결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결될 것 같고, 사람들이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한다. 몇 년 전, ‘과자 과대포장 고발’ 영상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만약, 그 청년이 ‘과자 업체의 부도덕성 고발’이라고 했거나, ‘대기업의 사회적 윤리 위반’이라고 했거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 대기업의 시장 지배’라고 했다면, 우리가 그만큼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냈을까? 우리가 만약 그 문제에 그만큼의 관심이 없었다면, 언론은 그 문제를 다루었을까? 광고, 홍보 등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100만 명의 어린이들이 영양 부족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 2만 원의 후원금이 필요하다면, 도무지 해결될

[이재혁 교수의 CSR 전략-①] CSR=사회공헌? CSR, 제대로 이해하자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제대로 이해하자   경영학은 기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어떠한지, 그러한 경영환경이 초래하는 실무적 시사점이 무엇인지 등을 분석하는 기능을 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경영환경에 변화를 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하면, 그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학계와 업계 모두에서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현상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뿐만 아니라 그 개념 자체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쉽지 않은 듯 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 그 중의 하나이다. CSR에 대해서 ‘다양한’ 이해가 공존하는 이유를 CSR을 구성하는 세 개의 단어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Responsibility’라는 단어 때문에, CSR를 일방적인 의무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다보니 기업 준조세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바른사회시민연대의 2017년 1월 10일자 성명에 따르면, 기업이 정부에 반 강제적으로 지불한 준조세 규모는 최대 20조에 달한다.) ‘Social’이라는 단어 때문에, CSR은 사회적 문제에 국한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세 개의 성적표(triple bottom line: TBL)가 의미하는 것처럼, CSR은  좀더 광의의 대상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Blackburn, W. R. 2007. The Sustainability Handbook. Environmental Law Institute Press. Washington DC.). 마지막으로 Corporate’라는 단어 때문에, CSR은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예를 들어보자. 산업화에 따른 자연환경 훼손은 생산자인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집단이 함께 고민해야 할 이슈이다. 최근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적극적 집단으로 거듭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에게 ‘착한 기업시민(good corporate citizen)’이 되는 것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