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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리더에게 리더십을 묻다_”일은 강하게, 사람에겐 부드럽게… 배려의 리더십 통하더군요”

박윤아 강남세브란스 외과 교수, “마음으로 다가가야 사람은 따라옵니다” 박기정 롯데백화점 이사, “지시가 아닌 부탁 조직을 움직이더라고요” 홍승현 검사, “나만의 전문성 키우고 조직문화 전반을 살펴야” 김주연 한국 P&G 상무, “멀티태스킹에 능한 여성 비즈니스도 두각 보이죠” 양진옥 굿네이버스 본부장, “사업마다 새로운 기획 일에 대한 열정은 필수”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자신의 일에 혼을 담아 열정적으로 행동하세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여성 리더십은 권위적이고 강한 카리스마를 내세운 기존의 리더십과는 달리 감성적이고 구성원들을 배려하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리더십 유형을 말한다. 여성의 날을 맞아 의학, 법조, 기업, 문화예술, 사회복지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여성 리더들을 만나 그들이 현장에서 배운 여성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편집자 주 여성 리더십이 기존의 리더십과 가장 다른 부분은 ‘부드러움’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오너 일가를 제외한 롯데그룹의 첫 여성임원이 된 롯데백화점의 박기정(47) 이사는 “여성 리더십은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힘을 가진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는 디자인과 패션 기획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왔다. “패션은 재단에서 포장까지 모든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맨 아래 직급의 직원에게까지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했어요. 남성 리더들이 하듯이 ‘지시’하는 게 아니라 ‘부탁’하듯이 부드럽게 말했죠.” 여성으로서 20대에 실장, 30대에 부장과 이사가 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박 이사는 어려움도 많이

엄마와 딸에게 ‘우리 사회 여성’을 묻다_”사회 진출 문턱 낮아졌지만 ‘직장 지키기 장벽’은 높아”

우리 땐 대학 나와도 바로 결혼 취업하더라도 공무원·교사였지… 진학·전공, 남녀 경계 없지만 출산·육아 생각하면 막막해요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미성년자의 노동을 금지하고 여성에게 참정권을 달라고 시위한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유엔은 1975년, 3월 8일을 공식적인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전통적으로 남성을 우대하는 유교문화권에 속한 한국은 여권(女權) 신장의 속도가 서구 국가에 비해 더뎠다. 그러나 최근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둘러싼 사회여건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20대 딸과 스무 해 넘게 사회생활을 해온 50대 어머니를 만나 이들이 체감하는 과거와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 여건의 변화를 들었다. 편집자 주 삼일절 오후. 딸 박예림(25)씨와 어머니 전연숙(53)씨를 신사동 가로수 길에서 만났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2년차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박씨와 경기도 평택시 공무원인 어머니 전씨는 “모녀가 여유롭게 ‘데이트’를 하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했다. 모녀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일 얘기부터 시작했다. “제가 엔지니어로 하는 일은 국내외에서 수주를 받아 공장을 짓는 과정을 총괄하는 거예요. 한 프로젝트가 보통 1~3년씩 계속 되는데 그 기간 중에는 국내외 현장에 가서 살다시피 하죠.” 딸 박씨가 밝게 웃으며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여성이 하는 일과 남성이 하는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박씨처럼 과거에는 남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업종에

[Cover story] 방글라데시 유아 교육률

‘가난의 대물림’ 끊을 수 있는 꿈을 심어줍니다 아이들, 폐품 줍고 벽돌 깨서 돈 벌어… 초등교육도 사치… 문맹률 50% 넘어… 슬럼가에 자리한 지역아동개발센터… 사립학교 10%도 안 되는 교육비로… 슬럼가 아이들에게 ‘미래 꿈’ 심어줘… 방글라데시의 길거리를 걸을 때는 바짝 긴장하는 것이 좋다. 사람·릭샤(인력거)·자동차가 어지럽게 뒤섞여 차선도 인도도 없이 내달리는 게 이곳의 일상적인 거리 풍경이기 때문이다. 쌀쌀한 겨울 아침, 거리에서 만난 릭샤꾼 모하미드 조이날쉭(50)도 한 차례 질주를 마친 참이었다. 몸무게가 꽤 되는 손님을 내려준 그는 지친 얼굴로 릭샤에 기대서 있었다. 빛바랜 상의를 세 겹씩 껴입었지만 고된 노동으로 깡마른 몸만은 감출 수 없었다. 치마처럼 생긴 전통복장 룽기 사이로 여자 팔목만큼 가느다란 발목이 보였다. 하루 종일 거리를 달리느라 새카맣게 그을린 그는 퀭한 두 눈만 반짝반짝 빛났다. “한 달에 4500타카(약 7만 원) 벌어요. 그 중 2000타카(약 3만 원)가 릭샤 렌트비랑 집세로 나가고요.” 형편이 어떤지 묻자 마디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도시 슬럼가에 사는 그의 가족은 한 달에 겨우 4만원 남짓한 돈으로 연명한다고 했다. 무표정한 그가 딱 한 번 감정을 내비친 건, 기자가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였다. 초점 없던 그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열다섯 살, 열세 살 먹은 아들놈 둘은 학교에 안 다니고, 열두 살 먹은 딸은 6학년이다. 돈이 없어 딸도 올해까지만 학교에 보낼 예정이다.” 내뱉듯 답하고는 무거운 시선을 땅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조이날쉭의 두

장애인 고용할당제 등 법·제도는 갖췄지만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해야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사무국장 인터뷰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의 김형수(36·사진) 사무국장은 1994년 6월, 대입에 ‘장애인 특별 전형’이 생긴다는 것을 들었다. 고3 생활을 하며 ‘차별받는 것은 나중의 문제고 일단 대학을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지망한 김 사무국장은 수능과 대학별 본고사, 면접까지 봤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장애인 특별 전형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아서 동기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돌아온 날에야 겨우 합격 통지를 받았다. 대학 입학 후 학내의 장애인 문제와 교육권을 주제로 한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례를 접하면서 ‘장애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능숙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노하우가 생겼다. 김 사무국장은 ‘이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에 2000년 대학 졸업 후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 들어가 장애인 학생들의 대학 입시와 구직 활동을 돕는 일을 했다. 2003년,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서 독립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를 정식으로 설립했다. 장애인 학생들을 도우면서 김 사무국장이 안타까울 때는 “장애인이라 어차피 대학 졸업해도 취업이 힘든데 그냥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고등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김 사무국장은 “그런 말은 걱정으로 포장한 차별일 뿐”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대졸 실업률이 50%에 달해도 대학을 가지 않고는 자아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장애인이 단지 취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대학에 가는 것처럼 장애인 역시 똑같은 이유로 대학에 간다는 말도

한 푼 두 푼 모아 더 어려운 이웃에 도시락 배달

사람 이야기 서울 용산동2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해방촌 성당’은 멀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다 결국 택시를 잡아탔다. 아슬아슬하게 약속 시간에 맞춰서 성당에 도착해 마침 앞마당에 계신 한 어르신께 “도시락 배달…”하고 말을 꺼냈다. “강당으로 가봐요. 이미 다 모였어.” 할머니는 지하로 난 계단을 가리켰다. 지하 강당에 들어서자 오늘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할 할머니 10여명이 보였다. 한쪽 구석엔 설 선물로 전달할 가래떡과 김이 봉투에 담겨 늘어서 있었다. 도시락 배달 봉사자 박무진(84)씨는 “설을 맞아 특별히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20년 전부터 해방촌에서 살고 있는 김재흠(83)씨는 현옥분(78)씨와 짝을 이뤄 1년째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다. 그전에도 여러 봉사 활동을 했지만 이번 일은 특히 의미가 크다. 어떤 봉사보다 자신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다. “요리는 아무래도 연륜과 정성이 필요하다 보니 나이 든 우리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말하는 김씨는 무엇보다 나물로 하는 밑반찬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현씨 역시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 건강이 더 좋아진 것 같다며 장점을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김씨와 함께 맡은 세 가구를 내 집 드나들 듯 다니며,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면 갖다 주고 사는 얘기도 나눴다. “우리 때는 다 같이 고생했잖아요. 그때 얘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겠어요. 봉사활동을 시작하고서 바쁘게 움직이니깐 오히려 아픈 허리와 쑤신 몸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김씨와 현씨를 따라 성당을 나섰다. 성당에서

수익금 30% 기부… 남 도우니 기업도 성공

소망화장품 강석창 대표 소망화장품이 이윤의 30%를 기부하는 사회공헌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소망화장품 본사에 있는 강석창(51) 대표의 방은 한쪽 벽면이 화장품 진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망화장품은 ‘꽃을든남자’, 한방화장품 ‘다나한’ 등을 선보인 국산 화장품 브랜드다. 소망화장품은 2010년부터 매해 이윤의 30%를 국제구호개발 NGO 기아대책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윤을 내는 것이 목적인 기업이 왜 이윤의 30%나 기부하게 됐냐고 묻자, 강 대표는 “소망화장품을 설립할 때부터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려면 항상 이익을 내는 초우량 회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부가 오히려 기업활동을 열심히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라며 웃음 띤 얼굴로 답했다. 이 회사가 처음 기부를 시작한 것은 1995년. 당시에는 매출액의 1%를 기부했었다. 매년 꾸준히 이어지던 기부는 사업 확장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잠깐 그 흐름이 끊길 뻔했다. 2004년 저가 화장품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소망화장품은 ‘뷰티크레딧’이라는 새로운 브랜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재정이 나빠지면서 5년 정도 기부를 쉬었던 것이다. ‘다나한’이 성공을 거둔 2009년, 강 대표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5년치 기부를 한 번에 몰아서 했다. 23억7000만원이었다. 밀린 기부를 한 번에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약속한 것을 지켰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소망화장품이 기부한 기부금은 국내외와 북한에서 빈곤 퇴치사업을 하는 데 쓰였다. 기아대책의 김성식 ‘생명지기’ 사무총장은 “내년부터는 소망화장품 기부금을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수술해주는 ‘생명지기’ 사업에

이정근 사람인 대표 “얼마 전 흑자전환 이뤘지만 사회공헌은 당연히 할 일”

후원자 모집 ‘배너 광고’수천만원 기부하는 셈 작년 1월 최악의 참사라 불린 아이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채용정보 사이트 ‘사람인’의 홈페이지에는 기업의 구인광고 대신 아이티 어린이를 돕자는 배너가 내걸렸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구직자들이 찾는 사이트에서 ‘남을 돕자’는 호소가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이처럼 사람인 홈페이지에 걸린 후원, 기부 참여 배너를 통해 2005년부터 지금까지 600명이 넘는 사람이 국제국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의 정기후원자(월 1만원)로 등록했다. 사람인의 일주일 배너 광고비용이 300만원이 넘는 것을 생각하면 배너 후원을 통해서 ‘정기후원자 연결’ 외에도 수천만원을 기부한 셈이다. 얼마 전에야 흑자 전환을 이룬 중소기업이 사회공헌 사업에 뜻을 둔 데는 ‘공익성’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해야 한다는 대표와 직원들의 생각 덕분이었다. 이정근(49·사진) 대표는 “한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국가가 만들어놓은 도로나 전기 등 기본 환경을 이용하지 않느냐”라며 “회사를 운영하며 국가와 사회의 어려운 구성원들을 위해 기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인이 사회공헌 활동에 열심인 것은 업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2005년 직원 20명으로 시작된 채용정보 사이트가 300여명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 실업’ 때문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대졸 실업자가 35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고졸 실업자 수도 40만명이 넘는다. 사람인 직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보통 중소기업이라면 잘 하지 않는 사회공헌 활동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했다. 2005년 법인 설립 당시부터 배너 후원을 시작으로 사내 모금활동을 통해 ‘아름다운

이규철 안양 성문고 교사 “성문고 3학년 8반 학생이 되면 페루의 루쓰를 후원하지요”

아이들 1000원씩 나머지는 교사가…선배 졸업하면 후배가 또 이어 나누는 법 배우고 입시에도 도움 지난 9일 졸업식, 학생들은 평생 못 잊을 선물을 받았다. 담임선생님이 전날 밤잠을 설치며 만들었다는 동영상이었다. 반장선거, 단합대회, 체육대회, 수능 D-50 파티, 수능 전날 격려 행사까지, ‘고3’으로 살아온 지난 한 해가 차례차례 화면 위로 흘러갔다. 그중에는 경기도 안양시 성문고 3학년 8반 학생들만 가진 특별한 추억도 있었다. 바로 페루에 있는 여자아이 루쓰(14)를 후원한 일이었다. 이규철(44·사진) 성문고 교사가 제자들과 함께 루쓰를 후원한 것은 이달로 만 2년째다. 반 아이들이 1000원을 내면 이 교사가 나머지를 채워 매달 페루로 보내고 있다. “매년 제가 맡는 반 아이들이 같은 아이를 후원하는 거죠. 선배들이 졸업하고 나면 후배들이 이어서 후원하는 식으로요. 졸업한 선배들이 학교에 찾아오면 다 같이 루쓰 이야기로 꽃을 피워요. 선후배가 ‘나눔’이란 한 테마로 묶이는 거죠.” 이 교사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처음 후원을 시작한 건 재작년. 가수 션과 탤런트 정혜영 부부가 쓴 ‘오늘 더 사랑해’라는 책을 읽고 나서다. 좋은 일이니 반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어, 조심스럽게 후원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엔 매점 가서 과자 하나, 음료수 하나만 사도 1000원이니 큰돈은 아니었지요. 그래도 학생들이 제 호주머니를 털어 후원하는 거니까 망설여졌어요.” 이 교사의 걱정은 기우였다. 아이들은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그는 반 아이들과 상의해서 제3세계 국가에 사는 여자아이를 후원하기로 했다. 학생들 가운데 매달 돈을 걷을 ‘나눔 도우미’도 정했다. 그렇게

노바티스 장기기증 생명나눔 화보 촬영 캠페인 장기기증 서약 하고 나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미국·호주 운전면허 교부시 기증 확인… 오스트리아·프랑스 거부 의사 없으면 묵시적 동의…2010년 시작된 장기기증 릴레이 유명인사 10명에서 현재 150명이 중 74명 화보 촬영에 참여, 청계천서 내일부터 4일간 전시…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 평소 모델과 배우들로 북적거리는 이 공간이 배불뚝이 아저씨와 꼬마들 그리고 대학생들로 바글거렸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앞에 오신 분이 아직 촬영 중이라서요.” 안내를 자청한 직원의 목소리에선 즐거움이 묻어 나온다. 사진 촬영을 앞둔 대기실의 풍경은 이채롭다. 작가의 스튜디오답게 개성이 잔뜩 묻어 나오는 물건들 사이로 두 가족이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고 앉아 과자를 먹고 있고, 그 옆에선 바이올리니스트 노엘라씨가 커다란 개에게 “넬, 너도 티셔츠 입자”며 옷을 입히느라 분주하다. ‘대기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는데 그리 서먹하지 않게 어울리는구나’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대학생 둘이 비명을 지르며 대기실에 들어왔다. 그들이 손에 쥔 것은 사진 한 장. 그들은 친구들,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 방금 오중석 작가님이 사진 찍어줬어.” 대기실의 소란이 가라앉기 전에 오중석 작가가 들어온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2011년 달력 촬영 특집을 통해 여러 번 봤던 터라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 같다. “다음 분은 누구세요?” 오 작가의 말에 유항수씨는 두 아들 장근이와 현근이를 데리고 촬영장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조명을 환하게 밝히고 플래시를 터뜨리는데도 태연하다. 오히려 항수씨가 당황한 듯했지만 곧 오 작가의 리드를 따라 편안한 자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두 아들과 화보 촬영을 마치고 나온 항수씨는

“개구리 소년 사건’ 영화 보고 아동 범죄 경각심 높아졌어요”

착한카드 시사회② 영화 ‘아이들’ 지난 10일 저녁 7시, 영화 ‘아이들’의 시사회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속속 왕십리 CGV에 모였다. 설 연휴를 기점으로 풀렸던 날씨가 다시 매서워진 참이었다. 하지만 상반기 기대작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추운 날씨쯤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시사회는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의 후원으로 전 세계 100만 아동을 돕기 위한 ‘착한카드 캠페인’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열렸다. 시사회 영화는 ‘아동을 돕는다’는 착한카드 캠페인의 취지에 맞게 1991년 실제로 한국에서 일어난 아동 실종 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이었다. 영화 ‘아이들’의 기본 줄거리가 되는 일명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1991년 도롱뇽을 잡으러 집을 나선 다섯 소년이 그대로 사라져 버린 사건을 말한다. 다섯 소년은 10여년이 흐른 뒤인 2002년, 유골로 발견된다. 이 일을 계기로 ‘아동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문제가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번 시사회에 초대된 이세연(19)씨는 “오늘은 너무 행복한 날”이라며 시사회 당첨 티켓을 자랑했다. 고등학교 졸업식과 대학교 합격자 발표, 시사회 당첨 등 기다리고 있던 일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추리물과 스릴러를 특히 좋아하는 이씨는 “옛날에 일어난 일이라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대해서 몰랐는데 2002년에 유골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알게 됐다”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서 재미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성우(26)씨는 평소 ‘착한 일’을 한 덕분에 시사회에 올 수 있었다. 정씨는 “작년 9월부터 2주일에 한 번씩 집 근처 장애인보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착한 일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시사회

“소외계층 아이들, 꿈꿀 기회는 소외되지 않아야…”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 국내외 소외계층 아동들 초청 다양한 직업 체험 기회 제공… 일반 참가자들에겐 ‘기부 교육’ “GS SHOP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고객에게 상품을 알리고 판매하는 일을 하실 거예요.” 홈쇼핑회사의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공간에 들어서자 가슴에 ‘MD(상품기획자)’라고 적힌 명찰을 단 직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잠시 아이들에게 쇼핑호스트, 시연 모델, PD 등 각자의 역할이 떨어졌다. 아이들은 오늘 일일 홈쇼핑회사 직원이 되어 직업 체험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방송 개시. 아이들이 각자의 역할에 맞는 유니폼을 차려입고 자리에 섰다. PD를 맡은 윤동욱(가명)군이 “레디, 큐” 사인을 외치자 쇼핑호스트를 맡은 아이 둘이 오늘의 상품인 입체 동화책을 소개했다. 카메라가 비출 때마다 시연 모델이 된 아이 둘은 책장을 넘기는 시늉을 하느라 바빴다. 엄마들은 유리창 너머로 환하게 웃으며 이 모습을 관찰했다. “너무너무 수고하셨어요.” 직업 체험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빠져나가는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직원들이 미소와 함께 가상 화폐를 건넸다. 30분 정도의 직업 체험이지만 내가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이었다. 가상 화폐를 손에 쥔 아이들의 얼굴에 뿌듯한 표정이 번졌다. 지난 1월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Kidzania)’에서는 겨울방학을 맞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초청 행사가 열렸다. 이날 키자니아에 초대받은 것은 송파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아동 24명과 학부모 10명. “다문화 가정은 주로 소외계층이라 학부모들도 아이들 교육보다 경제적인 상황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이런 무료 체험

“오늘도 무대에 오릅니다 상처받은 영혼 치유하려고요”

가톨릭 문화기획 IMD 어린시절 누나 잃었던 현요안 신부… 슬럼프 빠져 괴로웠던 배우 우기홍씨 아파 본 사람들이 만든 연극 ‘바보 추기경’… “평범함 속 위대한 사랑 깨달았으면…” “영혼을 고치는 의사가 되라는 것이 누나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쉽진 않지만 평생을 걸고 노력해야죠.”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해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제주교구 중문성당의 현요안(41) 주임 신부를 만났다. 조용한 성당 안에서가 아니라 젊은이들과 예술인들이 오가는 홍대 인근의 한 극장 안에서였다. 그가 지도신부로 있는 공연기획사 ‘가톨릭 문화기획 IMD’의 새 작품이 이곳에서 지난달부터 공연 중이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큰 누나가 하느님 곁으로 갔어요. 공부도 잘하고,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작은 누나도 잘 챙기던 참 착한 누나였는데 1월 1일 설날에 백혈병으로 쓰러져 3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누나가 죽기 전에 가족들 한명 한명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제게도 세 가지를 남겼습니다. 하나가 부모의 가슴에 묻히는 자신과 장애가 있는 작은 누나를 대신해 ‘세 배’로 효도하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평생 책을 놓지 말고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유언이 영혼을 고치는 의사, 성직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누나의 장애를 고쳐주고 싶었던, 그래서 정형외과 의사가 꿈이었던 소년은 그때부터 성직자의 꿈을 마음에 품었다고 한다. 신학교 시절 연극부 활동도 했던 ‘끼’ 많은 현 신부는 2008년 가톨릭 창작 뮤지컬 ‘이마고데이(Imago Dei·하느님의 모상)’를 제작, 기획하면서 ‘가톨릭 문화기획 IMD’를 세웠다.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려면 가슴에 다가가야 하거든요. 위로, 치유, 회복은 머리로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