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300명 3년 만에 33억 건물주 됐다

[Cover Story] 시민자산화 이룬 ‘해빗투게더협동조합’ ‘조물주 위에 건물주.’ 건물 소유주가 신(神)을 뛰어넘는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에 ‘서울 건물주’가 된 사람들이 있다. 매입가 33억원. 위치는 최근 몇 년 새 강남권만큼 몸값이 치솟은 ‘마포’다. 지상 5층짜리 빌딩의 소유주는 ‘해빗투게더협동조합’(이하 해빗투게더). 임차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한 주민들이 모여 설립한 단체다.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날마다 치솟는 임차료를 견디지 못하고 마포 이곳저곳을 떠돌던 주민들이 어느 날 한자리에 모여 ‘우리가 건물주가 되자’는 맹세를 한다. 조금씩 돈을 내서 건물을 사버리자는 계획을 세우고 조합을 세웠다. 건물을 사유(私有)하지 않고 공유(共有)하겠다는 해빗투게더의 약속에 시민 303명과 단체 39곳이 힘을 보탰다. 2020년 11월 27일. 잔금을 치르고 건물 소유권을 완전히 넘겨받은 날이다. 건물에는 ‘모두의놀이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높은 임차료에 내몰린 마포구 주민들, 건물주 되다 해빗투게더는 대표적인 ‘시민자산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시민자산화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투자해서 토지나 건물 등 지역사회에 필요한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5일 내부 단장을 마치고 공식 개방한 모두의놀이터에는 이미 마포 주민들이 그들의 자산을 누리고 있었다. 해빗투게더 조합원들은 출자금과 크라우드펀딩으로 3억원을 모았다. 여기에 지난해 행정안전부 ‘지역자산화 지원사업’과 서울시 ‘민간자산 클러스터 융자지원사업’에 잇달아 선정되면서 대출 보증 지원을 받아 나머지 30억원을 채울 수 있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시민들의 힘으로 건물을 마련하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박영민 해빗투게더협동조합 상무이사는 “시민자산화의 핵심은 최대한 많은

농식품 투자가 탄소중립 앞당긴다

[Cover Story] 지구를 살리는 농식품 투자 최근 5년 농식품 투자 연평균 22% 성장기후변화·식량난 해결법으로 떠올라 AI·사물인터넷 기반 농업 ‘스마트팜’부산물 활용 ‘푸트업사이클’ 등 다양美·獨 글로벌 기업들 ‘애그테크’ 투자 과거 농업 분야는 투자 기피 대상이었다. 기상이변에 따른 농식품 가격 급등락, 기후변화로 인한 재배지 이동과 해수면 상승 등은 산업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최근 몇 년 새 급반전되고 있다.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에서 발표한 ’2020 연례 임팩트 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농식품 분야 투자의 연평균 성장률은 22%에 이른다. 세계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농식품 투자를 기후변화와 식량 안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꼽는다. 농식품 투자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들여다보면 농업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 농식품 투자가 탄소를 줄인다 농림수산식품 투자는 단순히 먹거리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산·재배·축산 ▲식품개발·제조·가공 ▲유통·판매 ▲소비 등 가치 사슬 전 과정에 걸쳐 있다.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기업부터 기후 환경이 척박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도 경작할 수 있는 스마트팜, 식용 곤충 사육을 통한 대체 단백질 생산, 부산물을 활용하는 푸드업사이클까지 다양하다. 국내 푸드업사이클 기업 ‘리하베스트’는 맥주·식혜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재가공해 친환경 식품을 만든다. 맥주를 만들 때 발생하는 보리 부산물은 영양이 풍부하지만, 활용 방법을 찾지 못해 가축 사료로 쓰이거나 대부분 폐기됐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식품 부산물량은 2019년 기준 2958만t에 이른다. 전체 부산물 중 약 70%는 환경부담금을 내고 쓰레기로 폐기된다. 맥주·식혜 부산물은

보호종료아동 60% 첫해 기초수급자 된다

[Cover Story] 기초수급비에 의존하는 ‘열여덟 홀로서기’ 매년 약 2500명의 ‘보호종료아동’ 발생시설 퇴소 후 자립 시작할 때 쥐여진 돈자립 정착금 500만원, 자립 수당이 전부 대학 진학 통해 보호 기간 연장하기도영국처럼 단계적 자립 이행기 도입 필요 그들에겐 비빌 언덕이 없다. 고아인 황모(19)씨는 지난해 보육원을 나왔다. 보육원이나 공동 생활 가정(그룹홈), 위탁 가정 등에서 생활하는 보호 대상 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법적으로 보호가 종료되기 때문이다. 여덟 살에 부모의 양육 포기로 10년을 경북의 한 보육원에서 지내온 황씨는 “보육원에서 제대로 된 자립 준비를 마치고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도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황군처럼 보호 기간 종료로 시설을 떠나야 하는 이른바 ‘보호종료아동’은 매년 약 2500명. 이들이 세상 앞에 홀로 설 때 쥔 돈은 자립 정착금 500만원과 3년간 월 30만원씩 나오는 자립 수당이 사실상 전부다. 진학도 취업도 힘겨운 이들은 시설 퇴소 이후 경제난에 직면한다. 더나은미래는 보호종료아동의 자립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지난 5년간 이들의 기초생활수급 현황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지난 8일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호종료된 자립 1년 차 1031명 가운데 613명(59.5%)이 기초생활수급자였다. 10명 중 6명이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존해 생활하는 셈이다. 지난해 보호종료아동 10명 중 6명이 기초수급자 최근 5년간 아동 양육 시설과 공동 생활 가정에서 보호종료된 아동은 총 5915명이다. 이 가운데 지난 4월 30일 기준으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은 2134명(36.1%)이었다. 퇴소 연도별로 보면, 2019년 시설 퇴소자의 수급

세계가 주목한다, 한국형 기본소득

[Cover Story] 한국형 기본소득 어디까지 왔나 양극화 심화·산업구조 변화…해결책으로 떠오른 ‘기본소득’ 정치권도 여야 막론 기본소득 공들여진보 “기존 복지 유지·확대해 도입을”보수 “복지 정책 통폐합해 지급해야” “한국은 ‘기본소득’(Basic Income)에서 세계적 모범 사례가 됐고, 앞으로도 모범 사례를 제시할 것이다.” 지난 4월 28~30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박람회의 기조연설을 맡은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형 기본소득’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특히 경기도에서 진행 중인 청년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좋은 사례로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천명 규모의 기본소득 실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경기도에서는 만 24세 청년 17만명을 대상으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지급되는 보편성이 핵심인 만큼 대규모 실험을 통해 타당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본소득 실험에 해외 연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1960년대부터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논의된 정책 의제다. 학계에 따르면 ▲무심사 지급을 통한 ‘무조건성’ ▲집단 모두에게 지급되는 ‘보편성’ ▲지속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성’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 지급되는 ‘개별성’ ▲현금으로 지급되는 ‘현금성’ 등이 기본소득의 5대 원칙이다. 한마디로 전 국민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성 소득을 뜻한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된 건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국내 상황에 맞게 적절히 도입되고 연구되면서 세계적으로 의제를 선도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기본소득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 중인 민간독립연구소 LAB2050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한

적자냐 흑자냐 ‘탄소 값’이 가른다

[Cover Story] 전 세계 ‘탄소 배출권 가격’ 전쟁 탄소 배출권·탄소세 나라마다 천차만별탄소 가격 낮추면 배출 감축 효과 ‘뚝’중국, 배출권 거래 확대… 시장 더 커질 듯 최근 테슬라의 실적에 대한 엇갈린 전망이 쏟아졌다. 지난 4일(현지 시각) 세계 4위 자동차 기업 스텔란티스가 테슬라에서 탄소 배출권을 사들일 필요가 없다고 발표하면서다. 스텔란티스는 피아트크라이슬러와 푸조시트로앵의 합병으로 지난 1월 출범한 기업으로 탄소 배출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면 2억유로(약 2700억원)에 달하는 탄소 배출권을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테슬라는 올해 1분기 순이익 4억3800만달러(약 495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탄소 배출권 판매로 챙긴 금액은 순수익을 웃도는 5억1800만달러(약 5850억원)에 이른다. 탄소 배출권 판매 수익이 없었다면 사실상 1분기 적자를 기록한 셈이다. 이 때문에 올해는 본업인 전기차 판매만으로 흑자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테슬라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지만 향후 탄소 배출 부담이 줄지 않으리란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탄소 배출 규제는 2030년까지 점차 강화되는 흐름이고, 이에 탄소 배출권 가격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가별 제각각인 ‘탄소 값’ 감축 효과 있나? 탄소 중립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각 정부에서 내세우는 정책은 탄소 배출권(CER), 탄소세(Carbon Tax)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탄소 배출권은 정부에서 기업마다 탄소 배출량을 할당하고 이를 초과하면 경제적 부담을 지게 하는 이른바 ‘탄소 가격제’ 중 하나다. 테슬라가 지난해 자동차 판매 부진으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고 사상 첫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에게 휠체어 아닌 ‘이동권’을 만들어줍니다

[이상한 사장님]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습니까?” 심재신(45) 토도웍스 대표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아동 전용 휠체어인 ‘토도아이’를 만들었을 때도 이런 질문 여러 번 받았다. 지난해 출시된 토도아이는 동력보조장치(파워어시스트)를 장착한 수동 휠체어다. 팔걸이에 달린 조종간을 전후좌우로 움직이면 네다섯살 아이도 힘들이지 않고 자유롭게 휠체어를 굴릴 수 있다. 중요하고 필요한 물건이지만 만드는 회사 입장에선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휠체어를 타는 6~13세 국내 아동의 수는 대략 2000~2500여 명. 시장 자체가 작다. 휠체어 가격을 너무 낮게 잡았다는 것도 문제다. 대당 150만원. 기존 아동 휠체어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다. “2000여 명 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남길 생각은 없습니다.” 세간의 질문에 대한 심재신 대표의 답은 단호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급’하기 위해 휠체어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몸에 맞지 않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경제적인 이유죠. 대부분의 복지 선진국들은 아픈 아이들에게 휠체어를 무료로 지급하는데 한국은 지원이 거의 없어요. 제도에 눌리고 돈에 눌립니다.” 지난달 12일 경기 시흥에 있는 토도웍스 본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고 예쁜 휠체어’를 만드는 사장님을 만났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휠체어를 장기간 타고 다닌 아이들은 척추측만증과 같은 ‘2차 장애’를 얻게 됩니다. 아이들이 몸에 꼭 맞는 휠체어를 타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토도아이 휠체어를 만들었어요. 매출이요? 국내 시장만 보면 답이 없습니다. 돈은 해외로 수출해서 벌어야죠.” 특별한 의뢰인 2016년 설립된 토도웍스는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소셜벤처다. 장애

한국의 빅이슈는 잡지사가 아니다

[Cover Story] 8년 만에 가격 올리는 ‘빅이슈’ 외국에선 철저한 ‘일자리 제공형 비즈니스’한국에선 주거·재취업·의료 등 전방위 지원 원가·코로나 사태로 어쩔 수 없이 가격 인상“판매원들 자립 위한 길… 따뜻한 관심 부탁” 홈리스(homeless)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는 지난 1991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한국을 비롯해 대만, 일본,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여섯 나라에서 총 8종이 발행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빅이슈는 홈리스 판매원이 잡지 판매 금액의 절반을 가져가는 일자리 제공형 비즈니스에만 집중하지만, 한국의 빅이슈는 ‘홈리스 지원 단체’ 역할까지 한다. 임대주택, 주거지원금, 커뮤니티, 직업훈련 등 다양한 지원을 하며 홈리스의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2010년 설립된 빅이슈코리아는 비영리 사단법인이자 사회적기업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약 550명의 홈리스가 빅판(빅이슈 판매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활동 중인 빅판은 33명 정도다. 빅이슈코리아가 잡지 판매량이나 매출보다 더 중요하게 관리하는 데이터는 ‘판매원’에 관한 기록이다. 판매원들이 왜 가족과 연락이 끊겨서 홈리스가 됐는지, 건강 상태나 성향은 어떤지, 현재 어디에 사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회사와 통화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정리해둔 데이터다.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판매원도 더러 있다. 이들을 찾는 것도 빅이슈코리아 직원들의 업무다. 지난달 초, 고(故) 신영순 판매원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도, 며칠이나 연락이 안 되는 걸 이상하게 여긴 직원이 그가 살던 고시원에 찾아갔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입원한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신영순씨를 만날 수는 없었다. 폐렴기가 있다고만 전해 들었던 신영순씨는 3월 10일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빅이슈코리아 직원들이 그의 죽음을 안 건 4월 1일이었다. 동료 19명이 함께한

투자처 발굴에서 계약까지… 임팩트투자의 기준을 묻다

[Cover Story] 임팩트투자사 국내 대표 6곳 설문조사 후보군 10%만 투자 논의 테이블 올라발굴부터 계약 성사, 평균 11주 소요임팩트투자 대상·자본 성격 다양해질 것 지난 2월 교육·돌봄 매칭 플랫폼 ‘자란다’는 누적 투자 110억원을 달성했다. 법인 설립 5년 만의 성과다. 지난해에는 수퍼빈이 시리즈B 단계 투자를 유치하며 누적 투자금 270억원을 기록했고, 에누마도 220억원을 이끌어냈다. 소셜벤처도 100억원 이상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시대가 왔다. 2018년 정부 모태펀드 출자를 기반으로 하는 임팩트펀드의 확산이 신호탄이 됐다. 소풍벤처스에 따르면, 국내 임팩트펀드 규모는 2010~2017년 약 5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18년 이후 3년간 총 5400억원으로 급증했다. 임팩트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일반 벤처캐피털(VC)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거쳐 집행된다. 투자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설루션이 얼마나 조화를 이뤄내는지가 핵심이다. 더나은미래는 국내 대표 임팩트투자사로 꼽히는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소풍벤처스 ▲HGI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옐로우독 ▲임팩트스퀘어 등 6곳을 대상으로 ‘임팩트투자의 기준’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사회혁신 생태계 조성의 원동력인 임팩트투자의 내부 프로세스를 들여다봤다. 투자 계약 1건에 평균 30건 검토 임팩트투자사는 1건의 투자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평균 31건의 투자 기회를 검토한다. 최초 후보군에는 연간 300여 기업이 오르지만 대표자 인터뷰를 거쳐 투자 논의 테이블에 오르는 기업은 10%에 불과하다. 이후 기업 실사와 계약 조건 협상 등의 과정을 통과하면 투자 계약이 성사된다. 이번 조사에서 투자처를 발굴하고 계약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11주로 나타났다. HGI의 경우, 투자 계약 1건에 평균 100건의 투자 기회를 검토하며 기업 발굴에서 계약까지 평균 20주가 소요된다고 응답했다.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의 경우 평균 18주, 옐로우독은 10주로 응답했다. 초기 단계 투자를

누구나 모금하는 시대인데… 70년째 제자리걸음 ‘기부금품법’

[Cover Story] 기부금품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 개정안 핵심 쟁점 ‘형사 처벌’ 강화사용 명세 장부 제공 안했을 땐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 벌금 행정 낭비에 이중 규제 부담모금 활동 위축 ‘부작용’ 우려모호한 조항 구체화 작업 필요 최근 모금 업계에서 ‘기부금품법’ 개정 논란이 뜨겁다. 작년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사태’로 불거진 비영리 단체 투명성 강화를 위한 후속 조치다. 지난달 8일 행정안전부는 공익 법인의 기부 금품 모집 상황, 사용 명세 장부, 서류 공개 등을 온라인 방식으로 통합 관리하는 기부통합관리시스템 ’1365기부포털’을 공개했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 행안부는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을 연내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주요 개정안에 모금 단체를 형사처벌하는 조항도 추가됐다는 점이다. 이에 모금 단체들은 “비영리 단체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문제 제기된 기부금품법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규제만 강화한다면 이중 규제, 행정 부담 증가로 인한 모금 활동 위축 등의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신중한 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처벌 강화하면 투명성이 높아진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기부금품법 개정안은 총 17개다. 한 법안에 대해 여러 개정안이 제출됐을 경우 통상적으로 법안심사소위에서 병합 심사해 위원회 차원의 대안을 만든다. 논란의 중심은 공익 법인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한 한정애 의원 안이다. 정부 입장이 반영된 이 개정안을 모금 업계에서는 이른바 ‘행안부 안’으로 부른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쟁점은 형사처벌 조항이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기존 공익 법인에 대한 감독 범위를

외교부, 해외 파견 ‘비정규직’에만 지원 중단

[Cover Story] 코이카 비정규직 차별 논란 열악한 ‘특수지’ 파견자들에생필품 송료 관세·통관 면제2월부터 비정규직은 지원 중단정규직은 되레 연 4회로 늘려 외교부 산하 무상원조 전담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에서 비정규직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생활환경이 극도로 불안정한 나라에 파견된 직원에게 제공하던 ‘생필품 외교행낭 지원 제도’를 비정규직에게는 더는 제공하지 않겠다고 각국 사무소에 통보하면서다. 전 세계 40개 나라에 파견된 코이카 소속 비정규직 코디네이터(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간제 근로자)들은 “그동안 외교행낭을 통해 마스크 등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조달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중단 통보를 받았다”면서 “정규직은 되고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게 더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마스크 없다는데… 비정규직 나 몰라라 외교행낭(Diplomatic Pouch)은 본국 정부와 현지 대사관 사이에 오가는 소포나 화물을 뜻한다. 외교 문서로 취급돼 관세와 통관 절차가 면제된다. 마스크·생리대·기초의약품 등 생활필수품조차 제대로 구하기 힘든 나라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 배려인 셈이다. 외교부는 분쟁 중이거나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라, 경제적으로 열악한 66개 지역을 ‘특수지’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코이카는 현지 파견자들에게 외교행낭 서비스를 지원해왔다. 인당 40~160㎏까지 지원하는데 국가별 위험도, 잔여 체류 일수 등을 따져 무게에 차등을 두고 있다. 코이카가 파견 중인 비정규직 코디네이터는 2021년 2월 기준 157명으로, 이 중 132명이 특수지에 파견돼 있다. 코이카는 지난달 1일 ‘해외사무소 파견 코디네이터 생필품 송료 지원 중단 안내’라는 문서를 각국 사무소에 보냈다. ‘외교부 개발협력과의 요구로 코디네이터에 대한 외교행낭 지원을 즉시 중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월경의 모든 것’ 편하게 둘러보세요

[Cover Story] 국내 첫 월경 라이프 편집숍 ‘월경상점’ 대안 용품 월경컵, 영양제·생리대 등 판매내 몸에 사용하는 것, 직접 만져보고 사야“여성에게 월경은 일상, 다양한 선택권 필요” “여자 친구한테 선물을 하고 싶은데, 어떤 게 좋을지 몰라서요.” 지난달 30일 서울 대방동 스페이스살림 1층 ‘월경상점’. 20대 남성이 상점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는 “‘월경컵’을 선물하려고 하는데 온라인상으로는 어떤 용품이 적합한지 알 수 없어서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점원은 남성을 월경컵 진열대로 안내한 뒤, 제품별 특징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상점 안에 있는 제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직접 만져보기를 수차례. 30분 가까이 탐색을 마친 남성은 작은 쇼핑백 하나를 손에 들고 가게를 나섰다. 지난달 8일 국내 첫 월경용품 가게인 월경상점이 문을 열었다. 일회용품이 아닌 ‘대안(代案) 월경용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제품 판매뿐 아니라 월경에 대한 인식을 ‘숨겨야 하는 것’에서 ‘드러내도 되는 것’으로 바꿔나가는 게 월경상점의 목표다. 여성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자 월경상점은 소셜벤처 이지앤모어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월경 라이프 편집숍’이다. 화장품이나 신발, 의류 브랜드 제품들을 모아서 파는 여느 편집숍들처럼 여성이 월경할 때 필요한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모아서 판매한다. 월경혈을 받아내는 작은 실리콘 컵인 ‘월경컵’과 팬티 안에 흡수체를 넣어 입기만 해도 생리대 효과를 내는 ‘위생팬티’ 등이 대표적이다. 일회용 생리대 대안 제품이지만 수요층이 얇아 대형 마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품들이다. 이 밖에도 면 생리대, 온열 패치, 월경 전 챙기면 좋은 차(茶) 등 월경 전체 사이클과 관련된 모든

화장품 용기, 재활용 안 되는 OTHER가 90%

[Cover Story] 국내 주요 화장품 제품 재활용 여부 살펴보니 각사 주력 판매 제품 30개 분석재활용 가능한 건 5개 제품 불과대부분 복합 재질 ‘OTHER’ 씻고 헹구고 닦았다. 차곡차곡 모은 플라스틱을 악착같이 분리 배출했다. 쓰레기 매립지로 갈 운명의 플라스틱에 새 생명이 부여될 거란 생각에 뿌듯함도 느꼈다. ‘아더(OTHER)’를 알기 전에는 많은 사람이 그랬다. 지난해 말 재활용 마크만 보고 깨끗이 씻어 내놓는 즉석밥 용기가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게 화제를 모았다. ‘OTHER’는 복합 재질로 이뤄진 플라스틱 제품으로, 식품 포장재나 화장품 용기 등 일상생활 곳곳에 쓰인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지배적인 화장품 업계에서는 유독 OTHER 제품이 많다. 문제는 단일 성분이 아니기 때문에 분리 배출돼 폐기물 선별장에 도착해도 재활용되지 않고 매립 혹은 소각된다는 점이다. 생산할 때부터 재활용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말이다. 더나은미래는 국내 주요 화장품 기업의 주력 판매 제품 30개의 용기 재질을 살펴봤다. 이번 조사는 2019년 기준 국내 화장품업계 매출액 상위 여섯 기업(OEM 제외)인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애경산업, 해브앤비, 카버코리아, 이니스프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기업별로 다섯 제품을 꼽았고, 제품은 지난 28일 기준 오픈마켓 쿠팡의 판매량 순으로 선정했다. 복합 재질 OTHER, 만들 때부터 재활용 불가 환경부의 분리 배출 지침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질에 따라 ▲PET(페트)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PS(폴리스티렌) ▲PVC(폴리염화비닐) ▲OTHER(복합 재질) 등 7가지로 구분한다. OTHER를 제외한 나머지 재질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30개 화장품 가운데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은 5개에 불과했다. 세부적으로는 유리 소재 2개(파운데이션), PET 소재 2개(토너·세럼), PP 소재 1개(크림) 등이다. 플라스틱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