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혼을 찾아서③] 인터뷰_ 신국악단 ‘소리아’ 류문 프로듀서

“국악,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어야” “우리가 만든 新국악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때까지 내인생 모두 바칠 것” 미국 공영방송 PBS가 만들고 있는 한국 특집 다큐멘터리 ‘김치연대기(Kimchi Chronicles)’를 보면 해금, 대금, 가야금 등 한국 전통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왔던 국악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훨씬 빠르고 젊은 분위기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지난 2009년 미국 NBC 방송에 나갔던 독도 홍보영상에도 사용돼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번 PBS의 다큐멘터리와 NBC의 독도 홍보영상에 사용된 음악은 둘 다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신국악단 ‘소리아’의 음악이다. 소리아(SOREA)는 한국의 소리(Sound of Korea), 한국의 영혼(Soul of Korea)이라는 뜻으로 2005년에 결성됐다. 데뷔 직후인 2006년 국악 분야를 넘어 대중음악 분야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창작곡 ‘뷰티풀 코리아(Beautiful Korea)’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2006년 독일 펜페스트(Fan Fest) 공식 초청 독일 5개 도시 순회공연, 2009년 영국 템스페스티벌 공식 초청 특별공연, 2010년 프랑스 샹리브르페스티벌 공식 초청 특별공연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외치지만 막상 국민들은 외면해 왔던 국악으로 소리아가 국내외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소리아의 류문 프로듀서는 “음악은 특히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처음부터 전 세계 청중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보사노바, 탱고 등의 음악도 원래는 한 지역의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유럽 등의 유명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한국 사회의 미래 위해서 경쟁 아닌 나눔 가르쳐야”

인터뷰_ 김중곤 굿네이버스 본부장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가 지난 1993년부터 진행해 온 세계시민교육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지구촌 이웃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세계시민’으로 커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나 가정에서 굿네이버스가 제작한 영상과 홈페이지를 통해 교육을 받는 ‘간접교육’과 전문강사가 학교로 파견돼 수업을 하는 ‘직접교육’이 있다. 지금까지 약 1500만명의 학생들이 이 교육을 통해 ‘나눔’을 배웠으며, 올해에도 226만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굿네이버스 사업운영본부의 김중곤 본부장은 “세계시민교육의 3가지 핵심 키워드는 이해와 존중, 협력”이라고 말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이해’, 즉 상대 문화와 사람에 대한 ‘공감’이라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돈도 많고 경험도 많은 선진국의 NGO가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르쳐줄게’ 혹은 ‘내가 많이 가지고 있으니깐 불쌍한 너희들을 도와줄게’라는 생각으로 국제협력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세계시민교육의 수업을 들어보면 강사는 유독 ‘학교에 가는 것은 모든 아이의 권리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는 김 본부장이 말한 세계시민교육의 핵심과도 일치한다. 아이들은 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존과 교육은 모든 아이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임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런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다면 세계시민의 자질인 ‘이해’와 ‘존중’, ‘협력’ 등을 배우는 나눔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본부장은 “아동기에 형성된 행동 양식이 성인기에 패턴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의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이뤄지는 교육은 나눔보다는 경쟁을

“지금 사는 공간에 대한 애정, 근대 문화재 보존의 출발점이죠”

도코모모코리아 ‘근대문화유산 지키기’ 서울에서 가장 높았던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 옥상에는 전광판이 있어 뉴스를 보여주고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던 ‘화신백화점’은 1930년대에 단연 ‘장안의 화제’였다. 일제시대 대표적 한국인 건축가 박길용이 르네상스시대 건축양식을 소화해 지은 화신백화점은 한국인이 주인인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1987년 헐리기 전까지 종로의 랜드마크였던 화신백화점을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종로타워가 세워져 있다. 김종헌 회장은“근대 문화재의 옛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도시개발 계획을 세워 문화와 역사를 일상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도코모모코리아(DOCOMOMO Korea) 김종헌 회장은 화신백화점과 서울시청을 ‘가장 아까운 근대문화재’로 꼽았다. 서울시청 역시 2008년 일부를 철거하고 현재 리모델링 중이다. 근대문화재는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포함한 6·25전쟁 전후의 기간에 제작된 건축물이나 생활 문화 자산을 말한다. 한국의 근대 문화재는 일제시대의 잔유물로 여겨진 데다 ‘문화재로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된 경우가 많다. “광화문 뒤편에 있었던 조선총독부처럼 의도적인 것은 응어리를 풀어줘야 하겠지만, 근대를 일본과 관계된 독립운동사로만 이해할 일은 아닙니다. 일제시대라고 해도 그 상황을 뚫고 살아온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있고, 이들의 생각과 생활을 알려면 근대 문화재를 보존해야 합니다” 김종헌 회장이 이끌고 있는 도코모모코리아는 한국의 근대 건축문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2003년에 만들어진 단체다. 도코모모코리아가 속해있는 도코모모(DOCOMOMO)는 ‘근대의 건물과 환경형성의 기록 및 보존을 위한 조직(DOcumentation and COnservation of buildings, sites andneighborhoods of the MOdern MOvement)’의 줄임말로 1990년 네덜란드에서 생겨난 국제 민간단체다. 김 회장은 “근대

[한국의 혼을 찾아서②] “궁중음식은 ‘맛과 멋’이 있는 우리의 식문화”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무형문화재회관서 궁중음식 전시… ‘조선왕조의궤’ 속 잔치 장면 재현 궁중잔치 음식·식문화 알리고 의궤 가치도 알릴 수 있을 것 봄 햇살이 내려앉은 오후. 창덕궁 서편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골목 끝에 있는 (사)궁중음식연구원 안마당 장독대에는 된장·고추장이 익어가고 있었다. 연구원은 중요무형문화재 38호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 한복려씨가 궁중음식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이사장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이었던 고(故) 한희순 상궁과 한 상궁에게 궁중음식을 전수받은 어머니 고(故) 황혜성 선생에 이은 3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이다. 아담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한옥 건물인 궁중음식연구원 안채에서 만난 한 이사장은 고운 한복을 입고 기자를 맞았다. 한 이사장은 궁중음식의 가치를 단순히 ‘맛있는 먹거리’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식문화’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다’는 말 대신 ‘음식한다’고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요리’가 일본식 단어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단순히 ‘조리법’과 같은 기능적 측면으로만 이해하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면서 몇 가지 궁중음식이 유행하고 한식세계화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레시피(조리법)만 익힌다고 음식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거든요. 궁중음식에는 충효 사상을 바탕으로 음식을 궁에 ‘올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궁중음식을 ‘내리는’, ‘올림과 내림’의 미학이 있습니다.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봐야 ‘문화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거죠. 궁중음식을 ‘맛’뿐 아니라 ‘멋’으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게도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궁중음식의 ‘멋’을 알리고 싶은 한복려 이사장은 오는 29~30일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회관에서 궁중음식 ‘전시’를 연다. 단순히 음식을 해서 맛을 보이는

[Cover story]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건강과 꿈을 찾았어요”

한국 도움으로 건강 되찾은 우즈베키스탄의 ‘니고라’ 햇살 따뜻한 지난 주말. 병원 복도에 들어서자,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링거 바늘을 손에 꽂은 채 천천히 복도를 지나갔다. 휠체어를 탄 중년의 남자는 서다 가다를 반복했다. 공기는 무거웠고, 낮은 목소리들이 웅웅거렸다. ‘이곳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구나’ 생각하는 찰나,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8살 소녀 ‘니고라’가 활짝 핀 봄꽃처럼 웃고 있었다. 아이와 눈을 맞춘 후 시선은 바로 몸에 두른 기구로 옮겨갔다. 소녀의 여린 몸에 갑옷 같은 회색 보조기구와 머리를 고정하는 흰색 장치가 달려 있었다. 측은한 표정을 짓자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이 기구들은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는 ‘영광의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돌이 지난 후부터 뼈가 휘기 시작했다. 커갈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다. 뼈가 장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가난한 부부는 아이에게 “수술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빠 톨릅씨와 아내는 “아이가 큰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생후 8개월 때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진 기억만 떠올리며, 부부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밤마다 아이를 껴안고 우는 것이, 부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던 2007년, ‘희망’이라는 단어가 니고라에게 찾아왔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우즈베키스탄 베카밧에 장애아동을 위해 만든 유치원에 들어갔고, 니고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국에서 후원자들이 생겨났다. 서울 은평구 서문교회의 중고등부 학생 20여명은 니고라를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저금통을 깨서 2년 동안 200여만원을 모았다. 강남세브란스 병원도 돕겠다고 나섰다.

시민의 사랑이 끓인 칼국수… 희망의 한 그릇 ‘후루룩~’

시민공모주로 만든 식당 ‘희망칼국수’ 천안시민의 돈 모아 만든 착한기업 ‘동행’의 첫 식당 직원 월급 10% 제외 판매 수익금 전액 기부 올가을 2호점도 오픈 예정… 벌써 1500만원 이상 모여 지난 2월 문을 열었다는 ‘희망칼국수’는 평일 점심시간에도 손님으로 북적였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도록 스무 명씩 늘어선 줄이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이 칼국수집은 요즘 천안의 새로운 ‘맛집’으로 뜨고 있다. 하루에 파는 칼국수만 400인분이다. 칼국수의 생명인 육수가 시원한 데다, 6500원짜리 칼국수정식 하나만 시켜도 만두나 보쌈이 줄줄이 코스로 나오는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나 희망칼국수는 단순한 ‘맛집’만은 아니다. 맛있다는 소문만 듣고 찾아온 손님들은 ‘희망칼국수의 수익금 전액은 지역사회와 공익활동에 사용됩니다’라고 적힌 현판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주부 이주현(38)씨는 “내가 먹는 칼국수 한 그릇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아서라도 앞으로 이 집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며 웃었다. 희망칼국수는 천안시민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시민공모주’로 만든 착한기업 ㈜아름다운동행이 차린 첫 번째 식당이다. 박노진 아름다운동행 대표는 “시민공모주로 회사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 불과 2주 만에 1억원이 모여서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현재 이 회사의 주주는 천안 시민 70명이다. 주주들의 면면도 다채롭다. 부모님을 따라 저금통을 깬 중·고등학생, 아내와 상의해 적금 탄 돈을 냈다는 직장인, 한푼 두푼 모아온 모임 회비를 낸 친목회, 경쟁 관계인데도 선뜻 돈을 낸 이웃 식당 사장까지, 천안 곳곳에서 시민주주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나섰다. “절반은 저도 아는

소리 없는 소통 기회… 향이 있는 소통의 장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카페 ‘티아트’ 경복궁 역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 작고 예쁘장한 카페 ‘티아트’가 있다. ‘티아트’는 청각장애인들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카페이자 사회적 기업이다. 홍차수입회사 ‘티월드’ 대표이자 수많은 티마스터, 바리스타 등을 길러낸 자타공인 홍차전문가 박정동(47)씨가 직접 운영한다. 만나자마자 홍차부터 권하는 박 대표는 나른한 오후 티타임을 즐기듯, 밀크티를 몇 모금 마시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홍차 수입 때문에 인도에 자주 가는데, 아마 2008년도일 거예요. 인도 콜카타의 어느 식당에 들어갔는데 종업원들이 다 청각장애인들인 거예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데, 그리고 저 역시 수화를 전혀 할 줄 모르니 큰일이다 싶었죠. 그래도 손짓 발짓 하며 결국 주문을 다 했어요. 음식도 맛있었고 서비스도 너무 좋았어요.” 그날의 짧은 경험이 박 대표의 눈을 뜨게 했다. 청각장애인이지만, 어떤 교육이나 지원도 받지 못한, 심지어 수화조차 배우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도 살아났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場)을 만들어 ‘소리 없는 소통’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인 것만 같았다. 박 대표는 자신의 경험과 강점을 살려 청각장애인들이 일하는 카페를 열기로 결심했다.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못 듣잖아요. 그래서 시각과 후각, 촉각이 자극되는 일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리스타 일은 커피나 차를 만들면서 고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거든요. 그럼 소리를 듣지 못해도 덜 단조롭고 덜 지루할 거라 생각했어요.” 우선 수화부터 배웠다. 청각장애를 가진 청년들을 만나려고 단체들을 찾아다녔다. 함께 일할 직원을

종가의 정신적·물질적 가치 드러낸 ‘문장’… 브랜드 가치 창출할 것

종가(宗家)문화명품화 프로젝트_ 서울대 김경선 교수 요즘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을 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마음에 다가오도록 답을 주는 사람은 드물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김경선(40) 교수와의 만남은 좋은 자극이 됐다. 김경선 교수는 경상북도의 ‘종가(宗家) 문화 명품화 프로젝트’에 참여해 500년 종가들의 문장을 디자인해주고 있다. “디자인은 한마디로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음식의 포장은 이 음식이 어떤 맛이 날지, 어떤 향이 날지, 이 음식에 담겨 있는 사람의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통로 같은 것입니다.” 종가의 문장을 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가들은 그 가문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물질적인 가치와 정신적인 가치들을 여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외부에 어떻게 표현되고 전달될지에 대해서도 이제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없는 문장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직면해서도 김경선 교수의 뜻은 흔들리지 않았다. “종가에서 만든 된장이 대량 생산된 제품처럼 플라스틱 용기에 판매된다면 제대로 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보기 힘들 겁니다. 종가의 가치를 그 가치만큼 드러나도록 보여줄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김경선 교수는 종가의 문장이 그런 역할을 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가의 문장이 종가에서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와 결합되어 종가다운 브랜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선 교수가 종가의 문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영국 유학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거리 곳곳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간판들이었다. “왠지 간판에 관심이 갔어요.

[한국의 혼을 찾아서①] 무형문화재 최기영 대목장

“후대에 전할 기술·기법하나라도 더 남겨야지” 인간문화재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의 혼을 찾아서’ 시리즈를 시작하며, 인간문화재와 첫 만남을 가지는 자리였기에 기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최기영(68) 대목장은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74호이자 세계가 인정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작년까지 충남 부여군 백마강 일대에 1300년 전 사라진 백제를 재현하는 ‘백제문화단지’ 조성을 지휘했고, 서울 서대문 봉원사, 경기도 양평 용문사, 전남 순천 송광사, 창경궁, 남한산성 등 수많은 문화재들이 그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인간문화재는 한복을 입고 한과를 즐길 것’이라 생각했던 기자의 선입견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전수교육관에 들어서자마자 여지 없이 깨졌다. 최기영 대목장은 ‘삼부특수목재’라는 글자가 박힌 검은 작업복 점퍼를 입은 채 탁자에 코를 박고 한옥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현장 속으로 뛰어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다는 말에 “대통령이든 서민이든, 어린 아이든 백세 노인이든 분수를 알아야 혀. 분수를 알아야 공부도 저절로 되고 기능도 저절로 익히게 된다 이 말이여. 목수는 목수로 끝내야 혀. 문화재니 교수니 해도 ‘나는 목수다’하고 생각허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말이지.”라며 웃었다. ‘나는 목수다’라는 목소리 속에는 대목장이기 이전에 목수라는 업에 대한 자부심과 작업에 대한 집요한 열정이 느껴졌다. 대목장(大木匠)은 나무를 소재로 집을 짓는 사람으로 나무를 다듬고 집을 설계하는 것부터 공사의 완성까지 책임지는 건축가다. 전통건축현장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최기영 대목장은 신응수 대목장, 전흥수 대목장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당대가 지정한 대목장 세 명 중 한 명이다. 평생 목수를 하기로 마음먹은 때를 물었더니

“웨딩드레스, 식이 끝나면 평상복으로 수선해드려요”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친환경 결혼식 ‘에코웨딩’ 화분 꽃장식, 하객에게 선물로… 유기농 음식, 남는 건 싸가도록… “아직 장소 제약 많아 아쉬워”…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생애 그 어느 순간보다 빛나고 싶은 사람이 바로 결혼식 날 ‘신부(新婦)’다. 그 욕망을 공식적으로 풀어놔도 되는 결혼식은 그래서 종종 과한 느낌을 준다. 특히 식장, 음식, 웨딩드레스 등 결혼관련 상품이 죄다 ‘패키지화’된 한국의 결혼식은 비싸면서도 천편일률적이다. 결혼식 날 단 하루를 위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물품들이 환경을 심하게 오염시킨다는 것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 무엇인지 묻고, 상업화된 한국의 결혼문화에 대안을 제시하는 이가 있다. 사회적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이경재(31) 대표다. 이씨는 원래 의류회사와 방송국 의상실에서 일하는 평범한 패션디자이너였다. 그런 이씨가 ‘옥수수 전분’을 이용해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그린(green) 디자이너가 된 것은 한 방송을 통해 국민대 윤호섭 교수의 인터뷰를 보고서다. 이씨는 “‘환경이 이렇게 되기까지 디자이너의 잘못은 없나?’라는 윤 교수의 물음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 길로 이씨는 국민대학교 환경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했고, 자신의 전공인 ‘패션’을 통해 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쐐기풀, 한지, 옥수수 전분 등을 소재로 친환경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년에 170만 벌씩 버려지는 썩지도 않는 드레스는 새롭게 출발하는 한 가정의 시작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6년 연 첫 개인전에는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웨딩드레스 열여섯 벌을 전시했다. 이 개인전을 보러 온 한 여성 관람객이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수형자와 함께 심는 희망… 사고는 줄이고 용기는 키우죠”

교도소 아버지학교 토의·나눔·편지 쓰기‐ 머리가 아닌 삶으로 깨우쳐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성큼 다가왔지만 교도소는 여전히 겨울이다. 마음의 상처와 절망, 회한이 뒤섞인 수형자들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때문에, 반기는 이도 관심을 갖는 이도 없는 사회 때문에 한 번 더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두꺼운 철문 너머 교도소는 여전히 겨울이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수형자들과 함께 지내며 다양한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통해 수형자들에게 회복과 희망을 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국 1만5000여 교도관들이다. 지난 금요일, 그중 ‘교도소 아버지학교’를 통해 수형자들의 마음에 봄을 선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교도소 아버지학교’의 김동수(50) 사역팀장과 양훈석(49·진주교도소), 이남형(48·군산교도소), 김병용(44·소망교도소) 교도관들이다. ‘교도소 아버지학교’는 수형자들의 올바른 아버지상 정립을 통해 출소 후 재범 방지 및 범죄와 수형생활로 인해 깨진 수형자 가족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와 각 교정시설이 함께 운영한다. 교정본부에 따르면 2003년 여주교도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4개 교정시설에서 시행 중이다. 미혼자를 위한 예비아버지학교, 여성을 위한 어머니학교도 열리고 있다. 처음 시작할 당시를 묻자 “참 눈물이 많았다”며 김 교도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봉사자 분들이 강당을 마치 레스토랑처럼 꾸며 주셨어요. 깨끗한 테이블보도 깔고 테이블마다 장미꽃으로 장식도 했죠. 자리마다 한 명 한 명 수형자의 이름표도 마련했고요. 시간이 되어 강당으로 들어서는 수형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절엔 수형자는 무조건 번호로 불렀거든요.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울고, 예쁜 장미꽃에 울고, 교도관이나 봉사자들이 손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에 울고…. 눈물바다였습니다.”

‘커뮤니티 맵핑〈Community Mapping〉’ 선구자 임완수 박사

지역사회 문제점 ‘콕콕’ 짚어… 살기 좋은 곳으로 “뉴욕 방문 때 화장실 찾다 곤욕 ‘화장실 소개 사이트’ 개설 계기” 뉴욕에서 화장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없는 게 없을 듯한 이 대도시는 여행자들 사이에 ‘화장실 가기 힘든 도시’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오죽하면 ‘뉴욕에서 화장실 찾기’를 주제로 한 책이 나왔을 정도일까. 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임완수(45) 박사 역시 뉴욕에서 화장실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일년 중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 시즌, 뉴욕 중심가에 있는 록펠러센터를 찾았던 그는 화장실에 갔다가 한 시간이나 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결국 기차역 몇 개를 지나치고야 화장실을 찾았다니까요.” 임 박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쉬자고 간 여행지에서 그는 화장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알고 보면 뉴욕에도 곳곳에 숨어 있는 공중화장실이 많을 텐데 사람들이 아는 곳에 대한 정보만 모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뉴욕의 화장실(nyrestroom.com)’이라는 웹페이지를 만들었다. 구글맵과 마이크로소프트 빙 맵스가 제공하는 편리한 지도 시스템을 활용해 누구나 뉴욕 지도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는 곳을 표시할 수 있도록 만든 웹페이지였다. 지도가 완성되는 데는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뉴욕 시민들이 웹페이지에 찾아와 자신이 알고 있는 공중화장실을 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임 박사는 “뉴욕 화장실에 대한 책을 쓴 작가는 혼자서 조사를 하느라 3년이 걸렸다지만, 웹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함께 뉴욕 화장실 지도를 완성하는 데는 1개월이면 충분했다”며 뿌듯해했다. 2006년 초에 만든 이 웹페이지가 뉴욕타임스(New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