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불편하지 않은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라 생각합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장애인고용 법안 만들 땐… 1년 중 5일도 안 쉬고 ‘예술작품 만들 듯’ 했다 법 시행 20년… 고용률 13배 늘었지만 이윤 추구 고용 형태, 아쉬운 부분도 많아 신체 일부가 불편할 뿐 다른 문제는 없는데… 인식 개선이 급선무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으로, 고용노동부 최초로 ‘내부 출신 장관 1호’가 된 인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그는 1982년 행정고시(25회)에 합격한 후 30년 가까이 고용노동부에 몸담으며, 장애인 고용문제 해결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경기 과천의 정부종합청사에서 이 장관을 인터뷰했다.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주도했다고 하는데, 당시 어려움도 많았다고 들었다. “1989년 무렵 법안을 만드는 주무관으로 차출됐다. 장애인이니 더 애정을 갖고 해보란 뜻도 담겨 있었다. 당시 경영계에서는 ‘고용의무제는 시장논리에 반한다’며 엄청나게 반대했다. 당시 나는 ‘세금을 내서 장애인을 시혜적으로 도와줄 거냐, 일자리를 줘서 그들이 세금을 내도록 할 것이냐’고 경영계를 설득했다. 사무관인 나와 고용전문직 직원, 둘이서 법과 예산과 기금 마련까지 다 짜느라 1년 365일 중 집에서 쉰 날이 5일도 안 됐다. 참고할 게 아예 없어서, 모든 걸 예술작품 만들 듯 새로 짰다.” ―법 시행 20년이 넘었다. 직접 주도한 공무원으로서 공과를 평가한다면. “법 시행 초기 장애인 고용 수치가 1만명에 불과했다. 작년 연말 기준 13만명을 돌파했다. 13배 늘었다. 예전에는 장애인들이 주로 집안에만 있었는데, 요즘은 사회생활을 많이 한다. 근원적 복지가 일자리 아닌가. 일자리를

공연 지원 등 ‘문화 복지’로 영역 확대해야

기업의 사회공헌은 전통적으로 사회복지나 교육·장학 사업과 같은 지원 사업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화 예술 영역으로도 그 저변이 확대되고있는추세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일반인들의 인식에서도 문화 예술에 대한 사회공헌 요구가 높았다. 문화 예술 사회공헌의 필요성에 대해 ‘반드시 필요하다(40.4%)’와 ‘필요하다(51.7%)’는 응답이 90%를 넘었다. 반면 ‘현재의 문화 예술 사회공헌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는 ‘못한다(42.6%)’나 ‘아주 못한다(10.8%)’는 부정적인 답변(53.4%)이 긍정적인 답변(29.8%)을 압도했다. 플랜엠의 김기룡 대표는 “학력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문화 예술 사회공헌의 현 수준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많았기 때문에, 향후 사회가 발전해가면서 문화 예술 사회공헌에 대한 욕구가 동시에 늘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문화 예술 사회공헌 활동은 대부분 공연 지원이나 현물 기부와 같은 마케팅성 협찬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문화 예술 사회공헌의 향후 지원 분야가 소외 계층의 문화 예술 교육 지원(38.2%)이나 소외 계층의 문화 예술 관람 및 향유 지원(10.7%), 또 지역사회 예술 단체나 예술 공연 지원(16.3%) 등으로 ‘문화 복지’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존의 메세나 형태로 이뤄져 온 고객이나 일반인 문화생활 지원(14.6%)이나 신진 예술가 발굴 및 지원(9%), 예술가의 창작 활동 지원(7.7%)은 상대적으로 응답자가 적었다.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김민지 사무국장은 “문화 예술 사회공헌에 대한 욕구는 매우 큰 데 반해,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라며 “앞으로 현장의 욕구를 반영한 정교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 예술 사회공헌은 기업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까. 이

[사진으로 본 기업 사회공헌] 민둥산이 20년 후… 이렇게 푸르게

1985년 시작된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민둥산은 20년 만에 푸른 숲이 됐다. 유한킴벌리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덕분이다. 1985년 처음 나무를 심었던 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는 20년 후인 2005년, 물이 없던 곳에 실개천이 생겨났고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나 곳곳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자라는 만큼 사람도 자란다. 유한킴벌리는 매년 봄 신혼부부들을 초청해 ‘신혼부부 나무심기’ 체험행사를 가졌는데, 2000년 신혼부부로 참여했던 김동준ㆍ이은하 부부가 10년이 흘러 두 자녀(문정·도현)와 함께 다시 행사를 찾았다.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가치는 미래세대에게도 이렇게 전해진다. 1984년부터 숲가꾸기를 위한 공익기금을 조성해 국내의 국유지와 공유지에서 나무를 심은 유한킴벌리는 캠페인 30년을 맞는 2014년까지 5000만그루를 심거나 가꿀 계획이다.

기숙사 무료 입주… 국가 장학금 사각지대 지원해야

늘어난 국가 장학금, 기업 장학재단이 나아갈 방향은 해외교환 장학생 선발-글로벌 교육사업 제공 등… 기업의 특성 살린 지원 국가 등록금 혜택과 기업 장학금 중복 수혜 등… 지원 조건 다양화해야 “국가 장학금이 너무 많아졌는데, 저희 기업재단에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때문에 장학재단 담당자들은 요즘 삼삼오오 만나면 동향을 묻는 경우가 많다. “학생 뽑는 데 어렵지는 않으냐” “학생들 뽑아놓으면 조건이 좋은 데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느냐” 등을 물으며 정보를 교환한다. ◇’국가장학금’ 도입에 기업장학사업 담당자들은 고민 중 현재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등록된 국내의 장학금 종류는 270여가지에 달한다. 이 중 든든학자금대출, 일반학자금대출, 미래드림장학금, 희망드림장학금, 국가근로장학금 등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자금과 장학금은 12가지다. 각 정부부처에서 국가보훈처, 근로복지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을 통해 지원하는 학자금과 장학금은 16가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장학금은 155가지다. 민간기업의 장학재단 장학금은 49가지, 개인이나 종친, 해외에서 주는 장학금은 43가지다. 한 기업장학재단 관계자는 “과거에 국가나 공공영역에서 복지를 다 감당할 수 없었을 때는 기업이 장학재단을 통해 어려운 학생을 돕는 게 큰 의미가 있었는데, 이제 국가에서 장학금을 확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업장학재단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재단에서는 국가장학금 확대 이후 제도 일부를 바꾸기도 했다. 국내 보육시설, 그룹홈 또는 저소득 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해온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송헌석 과장은 “예전에는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가는 아이가 생기면 안 된다’는 취지로 1학년생은 등록금 전액을, 2학년생은 90%를 지원했는데, 국가 혜택이

굿네이버스 동영상 본 후 기부금 보낸 8살 소년

“자말 형 얘기 너무 가슴 아파” 용돈·후원 모아 100만원 기부 “자말형. 우리 가족은 엄마 그리고 누나, 나 이렇게 세 명이야. 나도 자말 형처럼 아빠가 없어. 내가 3살 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형아 CD보고 마음이 아팠어. 우리 누나는 엉엉 울었어. 우리 누나는 고3인데 공부하는 걸 싫어하거든. 그런데 형아가 돈이 없어서 학교도 못 가고 돈을 벌려고 물동이 배달하고 빨래하고 남은 시간에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어. 그래서 요즘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 나도 만나는 사람마다 형아 이야기를 했고 돈도 많이 모았어. 형아 이 돈으로 꼭 학교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엄마 치료약도 사드려(…).” 지난 3월 말 굿네이버스로 현금 100만원이 들어 있는 편지가 도착했다. 대전한밭초등학교 1학년 2반 이주원 군이 쓴 편지였다. 이군의 어머니인 이성희(48)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주원이와 누나가 둘이서 굿네이버스 CD를 보더니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고 울어서 뒤늦게 함께 봤는데, 나도 울컥했다”며 “아빠가 없고 엄마도 아픈데도 생활을 책임지고 밝게 사는 자말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군은 근처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주말에 모인 친척들, 학습지 선생님에게 CD를 다 보여줬고, 이들은 1만원, 2만원씩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 10만원 남짓한 후원금에 이씨는 90만원을 보태 100만원을 만들어 굿네이버스로 보냈다.

“저개발 국가 상황 보며, 세계시민 깨닫는 아이들… 이것이 인성교육 아닐까”

‘나눔교육’ 함께한 다멘드라 칸 이번 굿네이버스 나눔교육에 참여한 다멘드라 칸(Dhamendra Karn·사진)씨. 네팔의 버티켈 초등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선생님으로 일하기도 한 그는 현재 굿네이버스 네팔 벌디야 지역개발사업장 매니저로 7년째 일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네팔지부는 2010년부터 세계식량계획(WFP)과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결합된 농촌개발사업인 ‘FFNV(Food for New Village)’ 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미주 언론홍보팀장은 “단순히 식량을 배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지역사회의 자립기반을 만드는 데 의의가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나눔교육을 마친 다멘드라 칸씨와 짤막한 인터뷰를 가졌다. ―한국에서 직접 나눔교육을 진행한 소감이 어떤가.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을 찾은 이유도 아이들에게 좁은 시각을 벗어나 다른 나라 아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다 넓은 시각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국 아이들이 자신의 상황과 네팔 아이들의 삶을 서로 비교해보고, 저개발국가들의 어려운 상황을 알았으면 좋겠다. 또 아이들에게 ‘세계시민’임을 알게 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동기부여를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만 아이들이 이번 한 번의 교육으로 그칠 게 아니라, 부모와 함께 저개발국가의 상황이나 어려운 이웃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양한 실천으로 이어졌으면 더 좋을 것 같다.” ―학교 교장선생님에서 굿네이버스 지역개발 사업장 매니저로 커리어를 바꿨는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개발 사업이 훨씬 더 보람 있다. 지금까지 1만2000명의 아이가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 중 일부는 벌써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특히 부모들의 소득을

“네팔 아저씨 이야기 듣고 나눔 참여 결심했어요”

34개 초교서 ‘나눔교육’ 네팔인 라주씨가 현지 상황 들려주자 “정말요?” 휘둥그레…” 가엾은 친구 도울래요” 용돈 기부하는 아이도 “나마스떼~ 저는 네팔에서 온 라주입니다.” 네팔 전통의상을 입고 두손을 모아 인사하는 이 사람, 굿네이버스 네팔지부에 온 라주 카드카(Raju Khadkaㆍ35·아래 사진)씨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변호사를 거쳐 굿네이버스 네팔 아동결연서비스 담당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신용산초등학교 강당에 모인 5학년 학생들에게 직접 ‘나눔현장’ 이야기를 전하러 이곳까지 왔다. “여러분, 제가 네팔에 관해 이야기할게요. 에베레스트산 본 적 있으세요? 네팔에는 에베레스트산뿐만 아니라 100개가 넘는 산이 있어요. 참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나라예요. 그런데 저기 한 어린이를 보세요. 배가 고파서 울고 있어요. 그 옆의 남자아이는 길에서 버려진 음식을 찾고 있어요. 아래 사진 보이나요? 길거리에서 차로 다가가 구걸을 하고 있답니다. 이 소년은 몇 살일까요? 12살이에요. 여러분과 같은 5학년이에요. 이것이 지구촌의 현실이에요. 어떤 곳에 사는 친구들은 학교에 가고, 어떤 곳에서는 구걸을 해요.” 미동도 없이 집중하는 아이들에게 라주씨는 또 다른 사진을 보여준다. 행복하게 웃는 소년의 사진, 네팔에 사는 ‘람’이다. 라주씨는 ‘람’이 직접 쓴 편지를 보여줬다. “람은 원래 길에서 지내던 아이였어요. 쓰레기더미로 가득 찬 마을에 살았어요. 학교도 가지 못했죠. 지금은 람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어요. 고맙다고 꼭 전해 달라고 하네요. 람은 지금 학교에 다녀요. 깨끗한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어렵고 힘든 친구를 위해 아동권리행사에도 참가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아세요? 여러분의 부모님, 선생님, 여러분과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무조건적 ‘혜택’보다 낯선 땅에서의 적응 도와줄 ‘시스템’ 만들어야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다문화 취재를 통해 만난 몽근졸씨와 저는 말이 아주 잘 통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그건 정말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2008년 여름부터 2년 동안 저는 미국에서 소위 ‘다문화 여성’으로 살았습니다. 매일 아침 다섯 살짜리 딸아이를 프리스쿨(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면서 저는 선생님께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맴돌았지만 그냥 웃으며 “굿 모닝(Good Morning)”만 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선생님과 낄낄거리며 대화하는 미국인 학부모를 보며 자괴감을 느껴야 했지요. 마트에서도 “Plastic or Paper?(비닐봉지, 아니면 종이봉투에 담아갈래?)” 하고 재빠르게 묻는 종업원의 말을 못 알아들어 창피당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서커스장에서 모든 관객이 일어나 미국 애국가를 부르는 통에 우리 가족만 어색한 채 입만 벙긋벙긋한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 스케줄을 채워줄 다양한 프로그램이 눈에 보였습니다. 월요일엔 도서관, 화요일엔 초등학교, 수요일엔 지역 커뮤니티센터, 목요일엔 미국인 자원봉사 할머니집, 금요일엔 교회를 다니며 생활영어를 배웠습니다. 도서관에서 40년 넘게 자원봉사로 일한 70대 애비(Evy)할머니 부부는 매주 목요일 자신의 집으로 저와 몇몇 한국 여성들을 초대해 토크타임을 갖고, 미국 문화와 미국 생활에서 겪는 아주 사소한 어려움을 상담해주기도 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딸 때 유의할 점, 식당에서 팁(tip)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할로윈 데이에는 아이에게 무슨 옷을 입혀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등을 말입니다. 이렇게 2년쯤 지나 귀국할 때쯤, 저는 전화 통화를 통해 “왜

공장서 일하는 여성은 시간 없어 교육 못 받아 10년 지나도 한국말 못해

다문화 여성이 본 다문화 정책 다문화 이해하고 부인 존중하는 남편 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다문화’란 단어, 낙인처럼 느껴져 오히려 관심 자체가 싫어지기도 최고 요리사를 꿈꾸던 몽골의 처녀. 2000년 한국으로 요리 유학을 온 몽근졸(37·사진)씨는 지금 한국에서 ‘다문화 강사’로 살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실에서 2시간 동안 몽골문화를 알려주고, 이주민의 인권에 대해 가르치는 일을 한다. 2008년부터 5년째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의 다문화 교육 강사로 활동 중인 그녀를 경기 부천에서 만났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우리 아들(초2)이 초등학교에 가서 이런저런 일이 생길까 걱정됐다. 한국 학교시스템을 알고 싶어서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일하면서 자신감이 생기자 아들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1학년 장기 자랑 때 몽골옷 입고 몽골어로 자신있게 발표하더라.” ―다문화 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뭐라고 보나. “언어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다문화센터라는 게 없어 TV만 보고 한국어를 배웠다. 지금은 천천히 한국어 쓸 수 있는 정도다. 2~3년 정도는 ‘밥 먹었어요’ 하는 간단한 것만 했다. 5년쯤 지나니까 한국말 알아듣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결혼해서 살아도 10년은 필요한 것 같다. 어떤 엄마가 며칠 전 학교 선생님이 ‘엄마 대신 아빠를 학교에 보내라고 했다’며 눈물 흘리더라. 선생님과 말 안 통할까 봐 겁나고…. 아직도 아들 받아쓰기 시험 준비할 때면 발음 안 되는 것도 있다.” ―다문화 지원이 많아졌는데,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별로 도움받아본 적은 없다. ‘다문화’라는 단어 듣기가 싫다. 내가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어 배울 데도 없어 알아서 다 해야

놀림 받고 자란 아이가 성장한 10년 후 사회 모습 그려봐야

다문화 정책… 지원금 크게 늘었지만 일부에만 혜택 몰려 다문화 지원 예산, 6년 동안 100배 늘고 지원센터도 10배 증가 시간 여유 있는 주부는 혜택 많은 기관 서로 비교해가며 다녀 농사짓거나 시댁 눈치로 혜택 전혀 못 받는 경우도 이주 노동자 자녀교육이 훨씬 심각한 상태지만 정부는 오히려 지원 배제 이벤트성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큰 그림 필요해 “보육료 거절합니다.” 파워블로거인 고마츠 사야카(31)씨는 올 1월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 관한 이런 글을 올렸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우리 아기가 다문화 가정 아이라서 나를 엄청 부러워한다. ‘다문화 가정 보육료 100% 공짜’라서다. … 인터넷에 찾아보고 주민센터도 가봤더니 결혼식·여행·택배비 할인, 대입 다문화 가정 특별전형, 한국어 교육, 요리교실, 각종 취미교실, 육아도우미 무료, 영·유아 보육비 무료, 각종 체험 문화 탐방, 취업 지원 및 일자리 지원, 친정부모 초청행사, 바우처사업, 방문 자녀 교육, 방문 부모 교육, 놀이공원 가족초대권, 영화관람권, 무료건강검진권, 고향 방문 항공권, 토픽(TOPIK·한국어능력시험) 응시료, 어린이학습지, 장학금, 운전학원비 보조, 자조 모임 운영비, 국민임대주택 1순위 우선 배정, 분양시 우선 공급 대상, 전세자금 대출금리 할인까지 있더라. … 물고기를 계속 잡아주면 물고기 잡는 방법은 절대 못 배운다. 낚싯대를 어디서 사고 낚시를 어디서 하고 낚시를 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사야카씨는 이런 이유로 남편과 상의해, 39만원의 보육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블로그에 밝혔다. ◇다문화 지원도 양극화 다문화 지원과 관련된 예산은 2006년 12억원에서 2011년 1162억원으로 6년 만에 100배 가까이 늘었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조금씩 싹트고 있는 공동체 의식 모여 ‘청소년 행복지수 1위’ 국가 될 수 있기를…

지난해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동에서 한 여중생이 몸을 던졌습니다. 집단따돌림 때문이었습니다. 핏자국을 보았다는 이웃도 있고, 옥상 밑 계단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던 여중생을 보았다는 이웃도 있었습니다. 무수한 소문만이 휩쓸고 난 후, 사건은 점점 사람들 기억에서 잊혔습니다. 그리고 12월 대구의 한 남중생이 학교폭력으로 또다시 목숨을 던졌습니다. 출근길, 그 지점을 지날 때마다 저는 가끔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를 생각합니다. ‘왜 그랬니, 왜 그랬어’ 하고요. 미국 시애틀에서 2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2010년 여름, 일곱살짜리 큰딸을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얼굴색은 똑같은데, 말이 어눌하고 영어를 섞어 쓰는 큰딸은 금방 또래 여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유치원에 간 지 일주일이 되던 무렵, 아이는 잠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가 ‘쟤는 이상하니까 놀지 마’라며 왕 노릇을 하자, 몇몇 친절하던 여학생들도 모두 자기와 친구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나아졌지만, 놀이터에서 놀 때면 큰딸은 늘 애들이 맡기를 꺼리는 술래역할만 맡았습니다. “나대지 마라!”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가장 심한 욕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왕따나 학교폭력 등의 사건이 반복되어도, 많은 사람은 “왕따 당할 만하니까 당했다” 혹은 “문제아들은 전학이나 퇴학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는 그러지 않을 거야’라고 위안을 삼기도 하지요. 공동체가 아닌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이것은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걸 어렵게 합니다. 청소년 문제 취재를 하면서 참 고약했던 건, “어쩔 수 없다. 해결책이 없다”는 패배감이 사회 전체에 가득했다는 점입니다. ‘다름’을

“당신의 아이가 얼어 죽을 수도 있다면 값싼 텐트 보내겠는가”

긴급구호 현장에 셸터박스 도입한 톰 핸더슨 대표 텐트·식기구·모기장 등 생활 물품 넣은 셸터박스 48시간 내 구호현장 도착 시속 200㎞ 바람 이기고 영하 20~영상 70도 견뎌 비 새고 무너지는 텐트는 도움 안 주는 것만 못해 박스마다 고유번호 부여 최종도착지 웹에 보여줘 기부자에게 신뢰 얻어 정부지원 받지 않고 소액기부 통해 운영 10년간 75개국 도와 아이티 대지진, 일본 쓰나미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체육관이나 길거리에 담요 한 장 깔아놓고 앉아있는 피해자들의 초점 없는 눈초리, 구호트럭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모습에 의문을 품은 사나이가 있다. 영국 해군 수색팀 다이버 출신인 톰 핸더슨(62)씨는 1999년 TV를 통해 재난 뉴스를 보면서 ‘왜 이재민들은 구호트럭이 던져주는 물품을 받기 위해 달려들어야 하는가. 왜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모든 걸 잃은 그들이 존엄성까지 잃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이것이 긴급구호 전문 NGO인 ‘셸터박스(Shelterbox)’가 탄생한 배경이다. “TV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큰 박스를 떠올렸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한데 엉켜서 자지 않도록, 자기만의 공간인 텐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 안에 4인 가족이 생활할 물품을 넣되, 어른 두명이 들고 갈 만큼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고요.” 셸터박스 안에는 텐트와 담요, 식기구, 물 정화시설, 망치, 모기장, 색연필 등이 들어 있다. 이 박스는 24~48시간 내에 지진이나 홍수 등 긴급구호 현장에 도착한다. 2001년 143개의 셸터박스가 인도의 지진현장에 보내졌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은 모금 현장을 움직였고, 로터리클럽과 보이스카웃 등에서 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