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8일(수)

빈 공간은 ‘화물차 주차장’으로, 시니어에겐 ‘일자리’를

[인터뷰] 서대규 빅모빌리티 대표

한국의 화물차 기사들은 하루 중 14시간을 운전대에서 보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2022년 조합원 19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달 평균 24일 출근해 339시간을 일한다. 이는 한국 노동자 평균(173.8시간)의 2배에 달한다. 물류 전문가들에 따르면, 화물차주들은 14시간 일하고도 바로 귀가하지 못하는데 주요 원인은 화물자동차 대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차고지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21조에 따르면, 오전 00시부터 4시 사이 1시간 이상 주차는 해당 운송사업자의 차고지, 공영차고지 등에 해당하는 시설 및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화물차 공영차고지는 39곳, 주차 면수는 9665대에 불과하다. 국내에 등록된 영업용 화물차 총 52만5303대의 1.8%에 해당되는 주차면만 확보된 것이다(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실·국토교통부 자료). 

부족한 차고지 문제는 불의의 사고로도 이어진다. 올해 4월에도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20대 청년이 11.5t 화물차를 들이받아 목숨을 잃었다. 이유는 인근 아파트 진입로에 불법주차된 화물차 때문이었다. 같은 달 이천시에서도 1t 트럭 운전자 30대 한 남성이 왕복 2차선 도로변에 주차돼 있던 14t 화물차를 들이받아 숨진 바 있다. 서울시·경기도 자료에 따르면 차고지 위반 밤샘주차 차량을 들이받고 숨진 사람은 한 해 평균 200명 선으로 추산된다.

민간에서 제공하는 민영 주차장, 주유소 등에도 화물차 주차가 가능하지만, 월 50만원에 달하는 비싼 주차비와 정보 검색 어려움, 순번 대기 등의 이유로 주차가 어려운 실정이다. 

화물차 주차장 1호점 여니, 1주일 만에 ‘만차’ 

이러한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기업이 나타났다. 서대규 대표가 지난해 4월 설립한 (주)빅모빌리티다. 빅모빌리티는 상용차(商用車) 전용 주차장을 운영하며, 검색 플랫폼인 ‘트럭헬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용차 운전자들은 트럭헬퍼를 통해 월 평균 25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고, 고정 주차장을 확보할 수 있다. 앱에서는 주차 가능한 공간을 안내하고, 차고지 증명 대행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서대규 빅모빌리티 대표. /빅모빌리티

서 대표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舊 한국타이어)에서 14년 동안 근무하다, 지난 2022년 1월 신사업기획팀에서 지금의 트럭헬퍼 사업을 기획했다. 그는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창업 계기를 밝혔다.

회사 측과의 협의 끝에 상용차 시장, 그중에서도 주차 문제 해결에 뛰어들기로 했다. 맨땅에 헤딩이었다. 사업 초기 자금부터 마련해야 했다. 우선, 2022년 5월에 창업진흥원 예비창업패키지에 지원해서 6000만원을 받았다. 그 자금으로 트럭헬퍼 홈페이지와 홍보 동영상 등을 제작했다. 이후엔 40여 곳의 땅을 직접 찾아다닌 끝에, 지난해 1월에 용인시 처인구에 1호점을 열었다. 80평 규모로, 한 대형 식당의 주차장 일부였다. 

소비자들의 요구도 살폈다. 실제 화물차주들의 주차 어려움을 체감하기 위해 약 10명의 화물차주 영업용 차량에 함께 탑승하고 하루 일과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화물차주분들이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기름은 어떻게 넣으시는지, 일과 후에 주차는 어떻게 하시는지 다 따라다녔죠.” 

이 과정에서 홍보를 위한 ‘꿀팁’도 얻었는데, “밤 12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 화물차에 전단지 꽂아놓으면 직방일 것”이라는 화물차주의 조언이었다. 조언대로 며칠 동안 전단지 꽂는 일에 매진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호점이 1주일 만에 만차가 된 것이다. 

시니어 특화 일자리로 가맹사업 확대 예정… 도전은 계속된다

지난해 4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부터 독립해 본격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 대표 개인 자금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이 가능했다. 독립 직후 국내 최초의 초기투자 전문 벤처캐피털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로부터 투자도 유치해냈다. 

설립한 지 1년, 빅모빌리티는 30여 개 주차장에 약 300대의 대형차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고객 이탈률은 4% 이하다. 무엇보다 화물차주들의 근로여건 개선에 기여했다는 것이 서 대표에게 가장 큰 성과이자 원동력이다. 화물차주의 자녀로부터 “아빠가 덕분에 집에 일찍 들어올 수 있어 감사하다”며 커피 쿠폰을 받은 적도 있다. 

화물차 주차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트럭헬퍼’의 모바일 반응형 웹 갈무리.

“하루는 밤에 화물차주분과 사모님이 같이 영상 통화를 거셨어요. 결제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알려드렸더니, 사모님이 ‘남편이 매일 밤마다 주차장 찾기 힘들었는데 편히 주차할 수 있는 곳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눈물 났어요.” 

내년엔 화물차 2000대 주차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서 대표. 올해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임팩트프랜차이즈’ 사업에 선정돼, 가맹사업을 통한 사업 확장의 문이 열리고 있다. ‘임팩트프랜차이즈’는 임팩트유니콘(연간 매출 100억원 이상 또는 기업가치 500억원 이상 사회적경제기업)이 될 수 있는 성공모델 후보군 12개를 선발해 빠른 성장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6월 최종 6개 기업이 선발됐는데, 빅모빌리티도 그중 하나다. 

서 대표는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으로 사업화지원금 뿐만 아니라, 가맹업 등록 등 행정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전문 변호사와 멘토도 지원받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빅모빌리티가 고려하는 1차 가맹점주는 은퇴·실직 후 수입이 없는 고령자 중 토지를 보유하고 있거나 토지 임대가 가능한 이들이다. 주차장 운영 관리 전반은 빅모빌리티에서 담당하고, 가맹점주는 주차장 환경 관리와 불법주차 통제 등을 맡는 구조다. 서 대표는 “토지만 있다면 누구나 사업이 가능한 ‘시니어 특화 솔루션’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DB 교통환경챌린지’ 사업에 선발돼 빅모빌리티 모델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기도 했다. 한국사회가치평가의 임팩트 측정 결과, 주차 공간 배회 시 소비되는 석유에너지 및 온실가스 저감, 불법주차로 인한 교통사고 피해 비용 감소, 화물차 운전자 추가 근무 방지 등 총 1억2600만원의 사회적 성과를 창출했다고 밝혔다.

“처음 트럭헬퍼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화물차 불법주차 문제 해결’의 소명을 잊지 않고 소셜임팩트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oil_l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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