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UNDP ‘동티모르 청년 취·창업 지원사업’
1년간 누적 171명 수료
이 중 50명은 취업 성공
동티모르 청년 프레데리코(25)는 올해 3월 현지 시중은행인 만디리은행(Mandiri Bank)으로부터 취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대학 졸업 2년 만이다. 그는 동티모르 최고의 명문 사립대인 오리엔탈동티모르대학(UNITAL)에서 회계를 전공하고,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적십자사 행정회계팀에서 봉사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졸업 이후 20개 넘는 금융기관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 프레데리코는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며 “동티모르에서는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기 무척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티모르 재무부와 고용노동청 조사에 따르면 현지 청년인구(15~24세) 10명 중 3명(30.5%)은 일주일 이상 유급노동을 하지 않고 어떠한 교육·훈련도 이수하지 않은 니트(NEET) 상태다. 동티모르 청년 실업률도 지난해 기준 13.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세계은행(WB) 통계를 보면 베트남(7.4%), 필리핀(6.3%), 태국(4.5%) 등 동남아시아 주요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특히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농업국가 동티모르에 인턴십 개설
프레데리코가 취업문을 열게 된 건 인턴십을 하면서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과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동티모르 청년 취·창업 지원사업(YEES)’으로 마련한 인턴십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생계를 잇기 위해 동네 수퍼마켓에서 배달 일을 하던 그는 소셜미디어(SNS)로 모집 공고를 보고 곧장 신청서를 냈다. 이후 인턴십 1기로 선정되면서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간 동티모르 무역산업부(MCI)에서 인턴을 했다. 담당 업무는 ▲소프트론(연성차관) 신청 접수 ▲비즈니스 제안서 분석 ▲소프트론 대출기업 모니터링 등이었다. 인턴십을 마칠 때쯤 만디리은행 세일즈 마케팅 부서에 취직할 수 있었다. 프레데리코는 “인턴십을 하면서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 재정 분석, 정부 고위 관계자와 협업하는 방식을 배웠는데 취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동티모르에서 인턴십 제도를 운용하는 기업·기관은 거의 없다. 애당초 기업 수 자체가 많지 않다. 동티모르 핵심 산업이 농업이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근로 인구의 64.2%는 자영농이다. 이 밖에 정부에서 13.5%, 민간기업과 공기업에서 각각 4.8%, 3.4%가 일한다. 대부분의 국민은 산간오지에 거주하면서 원예작물, 원두 등을 재배한다. 지형 특성상 인프라 구축이 어렵고, 기업 투자에 대한 법·제도 역시 미흡하다.
코이카는 현지 청년들의 취·창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YEES를 시작했다. 인턴십 지원 대상은 17~35세 청년이다. 선발된 청년들은 우선 3일간 소프트스킬 강화 훈련을 받는다. 소프트스킬에는 효과적인 의사소통, 팀워크, 문제해결 능력, 적응력 등이 포함된다. 이후 무역산업부, 보건부(MoH) 같은 정부 기관이나 민간기업, NGO에서 4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실무를 배우게 된다.
인턴십에는 이달 종료된 4기까지 총 171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39개 조직에서 생산·마케팅·재무 등 일련의 경영 전문지식을 쌓았다. 인턴십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청년은 50명이다. 취업난을 겪는 동티모르 청년들 사이에서 이러한 성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인턴십 경쟁률은 10대1에 달할 정도로 치열해졌다.
현지에서 YEES 사업을 총괄하는 차은주 코이카 동티모르 사무소장은 “청년들은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기업들은 역량 있는 청년들이 없다며 구인난을 토로한다”면서 “코이카는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각 기관의 관계자들도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귀환 노동자의 재정착을 돕다
YEES는 현지 청년들뿐 아니라 정부 고위 관계자 사이에서도 알려진 사업이다. 지난 3월 조제 하무스호르타 동티모르 대통령은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제5차 유엔 최저개발국 총회(LDC5)에서 YEES 사업을 언급하며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은 코이카 동티모르 사무소 코디네이터는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여국 사업을 언급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그간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던 청년 실업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하려는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티모르 정부는 이번 사업에 약 160만달러(약 21억1400만원)를 내놨다. 이 기금은 코이카 예산 620만달러(약 82억원)에 더해 창업경진대회를 개최하거나 창업지원금·소프트론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코이카는 해외에서 일하다 본국으로 돌아온 귀환 노동자의 정착을 위한 창업지원도 진행 중이다. 청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상황인데, 정작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재정착을 위한 지원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코이카는 “국가마다 주력 산업, 근로 형태, 일자리에 필요한 역량 등이 다르기 때문에 타국에서 일하다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 일자리 시장에 진출해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며 “이러한 경우 해외에서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창업 준비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이어 “사업 아이디어 형성부터 창업, 사업 확장에 이르기까지 성장 단계별로 청년 창업을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창업 교육, 금융 지원, 관계자 네트워킹 등을 제공하는 식이다. 김지은 코디네이터는 “로컬 NGO와 함께 귀환 노동자를 대상으로 창업을 위한 재정·회계 교육을 시행하고 추가 직업훈련과 경영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