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음식의 맛을 떨어뜨리고 영양소까지 줄게 한다는 연구가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프라하 체코생명과학대학의 마틴 모즈니 교수와 영국 로담스테드연구소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기후변화로 인해 맥주의 맛과 품질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연구 결과를 실었다. 맥주의 쌉싸래한 맛과 거품을 내는 핵심 성분 ‘홉(hop)’의 작황이 나빠지면서다. 홉은 유럽과 아시아의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덩굴 식물로, 솔방울 모양의 꽃이 맥주를 만드는 데 쓰인다. 맥주는 로스팅된 홉과 보리 등의 맥아를 효모로 발효시켜 만들어지기 때문에, 홉의 품질 하락은 맥주의 맛에 악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홉 재배량은 2050년까지 최소 4.1%에서 최대 18.4% 감소한다. 맥주의 독특한 맛과 향을 주는 홉의 알파산 함량도 20~30.8%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은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가격이나 품질 측면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홉 생산량은 감소 추세다. 주로 독일·체코·슬로베니아에서 재배되는 홉의 생산량은 1995년 이후 ha당 평균 0.13~0.27t 줄었다. 특히 슬로베니아 첼레(Celje) 지역의 감소율은 19.4%로 가장 컸다. 세계 홉 생산국 2위인 독일에서도 감소폭은 컸다. 독일의 슈펠트가 19.1%, 할러타우가 13.7%, 테트낭이 9.5% 감소했다.
체코생명과학대학 과학자 미로슬라프 트른카는 “기온이 더 오르고 강수량이 줄면 홉 재배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라며 “홉 재배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맛이 변하는 건 맥주뿐만이 아니다. 마이클 호프만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2050년에는 쌀의 비타민B 함량이 30% 감소할 것”이라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사는 수천만 명이 티아민·리보플라빈·엽산 등의 주요 비타민을 섭취하지 못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호프만 교수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진행한 연구로는 ▲양파의 매운맛은 점점 더 심해지고 ▲캘리포니아의 아보카도 생산량이 줄고 ▲인도는 향신료를 수출하지 못할 지경에 처할 것이며 ▲2050년에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이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호프만 교수는 “이건 전례 없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기후변화는 육류와 유제품 생산부터 야채·과일의 종류, 맛까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