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8일(수)
“21세기 富,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기부 관점·권유 방식도 바꿔야 할 때”

폴 쉐비시 보스턴 대학 사회학 교수

21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제기부문화심포지엄 ‘기빙코리아 2010’에서 폴 쉐비시(Paul G. Schervish·65) 교수를 만났다.

폴 쉐비시 교수가‘부의 이전(移轉)을 통해 본 기부문화의 변화’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폴 쉐비시 교수가‘부의 이전(移轉)을 통해 본 기부문화의 변화’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폴 교수는 보스턴 대학의 사회학 교수이면서 부와 자선 연구센터(Center on Wealth and Philanthropy at Boston College) 소장으로 미국의 고액 기부자들을 오랜 시간 연구해왔다. ‘기부문화,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 행사에서 그는 21세기에는 ‘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으며 기부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콧수염을 길러 친근해 보이는 폴 교수는 자신이 한국에 대해 받은 첫인상에 대해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은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어서 마치 사람을 칠 것 같았습니다. 서울시내 어디를 가도 커피 전문점이 있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와 통화를 하는 걸까요?”

폴 교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동차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풍요의 21세기에는 ‘부’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다”며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뿐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보살피려 하는 쪽으로 인간의 본성이 발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와 국가 전체가 잘사는 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폴 교수는 “부가 늘어날수록 돌봄과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범위도 커진다”고 말했다.

폴 교수는 부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하는 이 시대에 기부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부자가 일방적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선을 베풂으로써 기부자의 마음에 생길 수 있는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1만 가구가 1억달러(1130억원)를, 500가구가 10억달러(1조1300억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돈을 세금으로 내는 것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 가난한 이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 중 어디에 쓸 때 기부자가 가장 행복을 느낄까요?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그는 기부를 권유하는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전에는 수혜자나 기부단체가 잠재적 기부자에게 훈계하고 죄책감을 갖게 해 기부를 이끌어냈다.

“언제 얼마만큼의 돈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을 통해 기부할지는 기부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수혜자를 더 가난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죄책감을 이끌어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효과적으로 알리고, 기부자가 기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경험을 보여줄 때 비로소 더 큰 기부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부를 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없냐고 묻자, 그는 ‘전기적 대화(Biological conversation)’를 강조했다. ‘어려운 사람을 봤는데 도와주지 않으면 왜 마음이 불편할까?’, ‘나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왜 막연한 책임감을 느끼게 될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폴 교수는 “자선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 이는 은연중에 자선의 대상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선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거액의 자산가들이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는 미국 문화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폴 교수는 웃음을 지으며 “거액 기부는 사람들이 어떤 곳에 돈을 나눠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은 제시하지만, 그렇다고 나눔을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열강의 침입과 전쟁 때문에 부를 누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어떻게 부를 향유하고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부터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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