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특별한 동료가 생긴다면

[Cover Story] 장애인이 일하는 나라

[Cover Story] 장애인이 일하는 나라

고용률 3.1% 안지키는 기업이 절반
법개정으로 부담금 높여야

“근로 능력이 있는 장애인이 몇 명이나 되냐? 되지도 않는 법은 집어치워라. 멀쩡한 청년도 취업이 안 되는데 미친 짓 하고 있네.”

다소 거친 말에 놀랐다면 미안합니다. 얼마 전 더나은미래 기사에 달린 댓글이에요. 장애인 고용의무를 지키지 않는 기업이 많다는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네요. 장애인 기사에는 종종 이런 댓글이 달리곤 합니다. 이 정도면 나이스한 편이에요. 말은 조금 거칠었지만 적어도 기사를 읽어보고 단 댓글이었으니까요.

눈치챘나요? 네, 이건 장애인에 관한 기사입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급격히 흥미를 잃을까 두려워 간단한 퀴즈를 준비했어요. 퀴즈는 대개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니까요.

Q1. 국내 15~64세 장애인의 고용률은 몇 %일까? 답:__
① 30%
② 50%
③ 70%

Q2. 지난 10년간 국내 발달장애인 인구는 어떻게 변했을까? 답:__
① 약 40% 줄었다
② 거의 같다
③ 약 40% 늘었다.

Q3. 국내 ‘비장애인’ 근로자의 임금은 월평균 약 288만원(2022년 상반기 기준)이다. 장애인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얼마일까? 답:__
① 약 190만원
② 약 220만원
③ 약 250만원

Q4. 국내 장애인 인구 중 65세 이상 장애인 비율은 몇 %일까? 답:__
① 약 50%
② 약 35%
③ 약 20%

Q5. 우리나라 근로자의 정규직 비율은 62.5%다. 장애인 근로자의 정규직 비율은? 답:__
① 약 55%
② 약 35%
③ 약 15%

Q6. 고교 졸업 장애인의 대학 진학률은? 답:__
① 약 60%
② 약 40%
③ 약 20%

Q7. 국내 중증장애인 대 경증장애인 비율은? 답:__
① 4:6
② 3:7
③ 2:8

Q8. 국내 공공기관 중에서 ‘장애인 정규직’을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은 곳은 몇 %나 될까? 답:__
① 약 60%
② 약 40%
③ 약 20%

답을 알려주겠습니다. 정답은 〈1:②, 2:③, 3:①, 4:①, 5:②, 6:③, 7:①, 8:②〉 입니다. 당신은 8점 만점에 (____)점을 받았군요. 점수가 낮은가요?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비슷한 수준이거든요.

더나은미래는 지난달 21일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프로’에 의뢰해 국내 20~60대 남녀 1039명에게 같은 퀴즈를 풀게 했어요. 응답자들의 평균 점수는 8점 만점에 2.78점.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34점 정도 받은 셈이에요. 8개를 전부 맞힌 사람은 1039명 중에 딱 한 명 있었어요. 8문항을 모두 틀린 사람은 17명이었어요.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인구는 264만 4700명(2021년 기준)이에요. 전체 인구의 약 5.1% 정도가 장애인이죠. 만약 당신이 나머지 95% 쪽에 속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군요. 가족이나 친구 중에 장애인이 있나요? 혹시 ‘일하는 장애인’을 본 적이 있나요?

[Cover Story] 장애인이 일하는 나라

#일호씨 이야기

충북 제천에는 중증장애인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살림터’라는 보호작업장이 있어요. 발달장애인 태일호(37)씨는 2006년 이곳에 입사해 18년째 일을 하고 있어요. 일하며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입사 10년 되던 해 아버지에게 승용차를 선물했어요. 일호씨는 매월 25일 월급날마다 이렇게 혼잣말을 했어요. 얼른 돈 모아서 아버지 차 사주고 싶다. 그 말을 정말로 지킨 거예요.

살림터에서는 제천 지역 발달장애인 30명이 허브 농사를 지어요. 유기농 허브를 기르고 수확하는 일, 찻잎을 골라 분류하는 일, 티백을 포장하거나 유리병 제품으로 생산하는 일 등 다양한 직무를 맡고 있어요. 카페에서 허브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도 해요. 살림터는 여러 수익 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발달장애인 직원들에게 급여를 줘요. 4대 보험, 퇴직연금에도 가입돼 있어요.

일호씨는 ‘에이스’로 꼽히는 직원이에요. 일을 하고자 하는 욕구도 넘쳐요. 박스 접기, 잎 따기, 티백 포장 작업 등 손으로 하는 웬만한 작업은 비장애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해냅니다. 주 5일 40시간 근무하고 받는 월급은 190만원 정도예요.

백경선 살림터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중증장애인이 근로 능력이 되느냐, 그 애들이 ‘일’이 뭔지는 아느냐,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요. 일할 수 있습니다. 일이 뭔지는 월급 받는 순간 바로 알게 됩니다. 내가 번 돈으로 엄마에게 용돈을 줄 수 있고, 조카가 태어나면 선물을 사줄 수 있는 것. 그게 일이에요.”

#좀 이상하지 않아?

일호씨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상당수의 중증장애인이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에요.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국내 중증장애인 수는 100만명이나 되지만, 고용은 여전히 경증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기준 15~64세 경증장애인 고용률은 약 66.5%에 달했어요. 중증장애인은 고용률은 27.1%에 그쳤죠. 이 격차가 왜 좁혀지지 않는 건지 궁금한가요? 한번 들어보세요.

30여년 전, 장애인 고용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 벌어져요.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라는 법이 시행되면서 ‘의무고용제도’라는 게 시작된 거예요. 의무고용제도는 당시로써는 나름 강력한 ‘규제’를 담은 제도였어요. 기업이나 기관의 근로자 수에 따라 일정 비율의 장애인을 뽑도록 의무화한 제도죠. 지키지 않으면 ‘고용부담금’을 징수하고 기업 명단도 공개해요.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인 민간기업은 근로자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하고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은 3.6%를 고용해야 해요. 고용부담금은 100인 이상 사업장에만 부과하고 있어요.

의무고용제는 장애인 고용을 양적으로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어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증장애인의 경우 기업들이 ‘모셔가기’ 경쟁을 할 정도로 고용이 잘되는 편이에요. 하지만 중증장애인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어요. 중증장애인 1명을 뽑으면 장애인 2명을 고용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더블카운트제도’까지 도입됐지만 여전히 저조해요.

중증장애인 고용도 문제지만 의무고용률 자체를 지키지 않는 기업들이 너무 많아요. 2021년 12월 기준, 의무고용제 대상인 민간기업은 2만9092개였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만6770개 기업이 3.1%를 채우지 못했어요.

대기업의 경우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해 매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목돈(고용부담금)을 내놓고 있어요. 돈이 아까워서라도 장애인을 고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은데 일부 기업들은 아예 손을 놓고 있어요. 이상한 일이죠.

#셈법을 바꿀 시간

장애인 고용의무를 포기하고 거액의 부담금을 내는 민간기업들. 기업이 철저히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걸 인정하면 슬슬 의문이 풀리기 시작해요. 만약 고용하는 것보다 부담금을 내는 게 더 이득이라면? 득실을 따져보고 고용 대신 부담금을 선택하는 기업들이 있겠죠.

우리나라 고용부담금 제도의 ‘이상한 셈법’을 이해하고 나면 좀 더 명확해져요. 현행 방식은 ‘월별 미고용 인원수’에 ‘부담기초액(최저임금액의 60%)을 기준으로 가산한 금액’을 곱한 액수를 연말에 한꺼번에 징수하는 방식이에요.

부담금의 기준을 최저임금액의 60%로 정한 이유는 뭘까요. 고용노동부는 “장애인 고용에 드는 시설비와 관리비 등 추가비용을 기준으로 잡았다”고 설명해요. 하지만 정작 장애인을 고용할 때 드는 ‘인건비’는 반영되지 않았어요.

비교해볼게요. 법을 지켜 장애인 고용의무를 다한 기업은 장애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해요. 또 장애인 근로자를 위한 시설, 장비 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추가로 큰 비용이 들어가요. 반대로 법을 지키지 않는 기업은? 고용에 따른 ‘추가비용’ 정도만 부담하면 됩니다. ‘고용할래? 돈 낼래?’했을 때 ‘돈 낼래!’가 되는 이유예요.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고용부담금 제도가 오히려 ‘고용 회피’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고용부담금을 기업의 ‘평균임금’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어요.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장애인의 지속가능한 노동을 위한 정책 과제’ 보고서는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는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페널티가 너무 약해 의무고용률 달성이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각 기업의 평균임금 수준으로 고용부담금을 높이는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어요.

장애인법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임성택 지평 대표변호사는 “법은 변화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며 “장애인고용법이 생긴 이후 30여 년간 한 번도 조정된 적 없었던 ‘부담기초액’을 높이는 법 개정을 통해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어요. 발달장애인 고용기업 ‘베어베터’를 운영하는 이진희 대표는 “부담기초액을 최저임금의 100% 수준까지는 올려야 대기업이 움직일 것”이라며 “대기업이 장애인을 직접 고용해야 고용의 질과 양이 함께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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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씨 이야기

경기도 성남에 있는 네이버 사옥에는 층마다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커피머신이 놓여 있어요. 커피머신을 관리하고 원두가 떨어지면 보충해주는 업무를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하고 있어요. 사옥 내 화분 관리도 발달장애인 직원들 몫이에요. 잎 정리, 분갈이, 물주기 등을 해요. 사내 편의점과 플랜트샵(꽃집)에서도 발달장애인 직원이 근무해요. 네이버가 설립한 ‘네이버핸즈’ 직원들이에요.

지난해 네이버에 입사한 이다은(26)씨가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네이버핸즈’의 이야기를 사내에 소개하고 알리는 일이었어요. 다은씨는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단순한 업무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편견을 깰 수 있었다고 해요.

“플랜트샵에 ‘마이픽’이라는 서비스가 있어요. 원하는 꽃을 고르면 꽃다발을 제작해주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예요. 발달장애인이 꽃 관리와 포장이라는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었어요. 적절한 교육 시스템과 업무 환경이 마련된다면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네이버핸즈 사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일하는 마음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동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많은 장애인이 일의 기쁨을 느끼면 좋겠어요.”

다은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지네요. 마지막으로 질문 두 개를 더 해도 될까요.

Q. 장애인 고용이 더 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①매우 그렇다
②그렇다
③보통이다
④그렇지 않다
⑤전혀 그렇지 않다

Q.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 기업에 부과하는 고용부담금은 어느 수준이 적당할까?
①미고용 인원당 280만원(최저임금의 140%)
②미고용 인원당 240만원(최저임금의 120%)
③미고용 인원당 200만원(최저임금의 100%)
④미고용 인원당 160만원(최저임금의 80%)
⑤미고용 인원당 120만원(최저임금의 60%)

퀴즈를 풀었던 1039명에게도 이 두 개의 질문을 던졌어요. 첫번째 질문에’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42.4%(441명), ‘매우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19.5%(203명)로 장애인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61.9%를 차지했어요. 장애인 고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 사람은 3.1%(33명)였어요.

두번째 질문에는 최저임금의 100%를 부과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283명(27.2%)으로 가장 많았어요. 140%를 부과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274명(26.4%)이나 됐어요. 120%를 선택한 사람도 202명(19.7%)이었어요. 전체 응답자의 73.3%가 고용부담금을 최저임금의 100% 이상 부과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어요.

이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에요. 그리고 이런 상식이 법이 되는 날, 우리에게도 특별한 동료가 생길거예요.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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