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화)

[최태욱 기자의 ‘○○’] 한 달에 한 번, 비밀 상자를 열면 공정무역 상품이 주르르~

사회적기업 10곳 참여 ‘맺음꾸러미상자’ 매달 메뉴 조합 바뀌어 여는 재미 쏠쏠

지난 16일 강북구 번동의 한 골목길이 부산스럽다. 이영섭(39·온라인 유통업)씨의 사무실 이삿날이다. 이씨는 남겨진 책상, 의자, 소형 냉장고 등을 자활 공동체 ‘민들레가게’에 기증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아깝잖아요. 주변에 이런 거 처분한다는 사람 만나면 꼭 얘기해줍니다.” 이씨가 트럭에 실리는 의자를 보며 말했다. 김지연 민들레가게 총괄팀장은 “신청하면 직접 수거하러 가는데, 하루 평균 3~5건 정도 된다”고 했다. 강북구에 이 같은 활동을 하는 업체는 민들레가게, 아름다운가게, 살림 등 7곳. 매장 수로 20여곳이나 된다.

지난해 이들이 뜻을 모았다.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라는 협의체를 결성하고 ‘공공박스'(http://oobox.kr) 캠페인을 시작했다. 홈페이지에 온라인 기증 신청을 하면 요일별로 정해진 업체가 수거한다. 판매 수익금은 소외 이웃에게 연결한다.

이날 영섭씨의 손때가 묻은 물품들은 강북구 인수동 산자락에 있는 물류센터로 옮겨졌다. 30여평 공간 가장 안쪽엔 파란색 상자가 산처럼 쌓여 있다. ‘여름잠’에 들어간 겨울옷들이다. 복도에는 ‘출하 대기’ 중인 상자들이 가득했다. 오는 주말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가 주최하는 자선 바자회로 향할 예정이다.

옷 대신 ‘설렘’이 담긴 상자도 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맺음사업단’의 도시형 꾸러미 상자다. “사회적기업이나 공정무역 제품들을 한 상자에 담아 기업에 장기 회원제 방식으로 납품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임상엽 맺음사업단 매니저의 설명이다.

지난 5월 첫 번째 거래가 성사됐다. 오는 12월까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에 꾸러미 상자를 납품하게 된 것. 이혜원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구매팀장은 “매주 월요일 임직원 250여명에게 간단한 아침을 대접하는 ‘위클리스낵’이란 행사를 하는데, 주로 대기업 제과류가 제공됐었다”며 “이를 한 달에 한 번 사회적 경제 조직의 제품들로 대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맺음 꾸러미 상자는 ‘열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0여개의 사회적기업, 자활 기업, 공정무역 업체들이 참여하다 보니 매달 메뉴 조합이 바뀐다. 5월 26일 제공된 첫 번째 상자는 사회적기업 ‘라퐁텐’의 브라우니와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의 캐슈넛으로 구성됐다. 오는 30일 상자에 담긴 내용물은 ‘비밀’이다.

재밌고 예쁜 상자로 자립까지 일궈낼 수 있다면? 지난 2008년 설립된 ‘메자닌아이팩’이 그렇다. 종이 상자를 만드는 이곳은 직원 30명 중 15명이 취약 계층, 그중 10명은 북한 이탈 주민이다. 컬러 인쇄기와 전자동 상자봉합기 등을 갖추고 이삿짐 상자부터 ‘뽀로로’ 상자까지 소화한다. 알파㈜, SK행복나래㈜, ㈜녹십자 등 70여개의 굵직한 거래처를 통해 작년에만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박상덕 메자닌아이팩 대표가 “직원들 일 잘한다는 소문에 스카우트 제의도 빈번하다”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도 강하다. 직원 한 명이 평균 4~5명의 북한 가족을 돌본다는 메자닌아이팩. 이들이 만드는 상자엔 이미 내용물이 그득 들어차 있다. 바로 희망이다.

☞ 최태욱 기자의 ‘○○’은 한 가지 키워드로 공익 분야의 이슈와 트렌드를 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관련 아이디어의 제보를 원하는 독자께서는 〈sun2ji@chosun.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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