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나무 베는 목재기업이 환경을 지키는 법

[이건산업 50년 이야기]

솔로몬제도에 조림지 2만5000ha 조성
탄소흡수력 낮은 성장 끝난 나무만 벌목
나무 벤 자리에는 반드시 새 나무 심어

호주 브리즈번에서 비행기로만 4시간, 보트를 타고 다시 1시간을 들어가면 나오는 솔로몬제도의 뉴조지아섬. 그곳에는 2만5000㏊, 여의도 면적 90배에 달하는 숲이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울창한 이 숲은 이건산업이 1995년 솔로몬제도 정부로부터 매입해 관리하는 곳이다. 창호나 마루의 자재로 쓰일 나무를 심고, 기르고, 베고, 얇은 판(베니아)으로 가공해 배에 싣는 작업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진다.

나무 제품을 생산하는 목재 산업과 환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무의 특성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벌목은 산림을 울창하게 만들지만, 어린나무까지 베어내는 무분별한 벌목은 산림 황폐화의 주요 원인이 된다. 저개발국에서는 대량의 목재를 기업에 팔아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불법 벌목이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매년 이 문제가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의 주요 안건으로 올라오는 등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친환경 벌목을 확산하려는 국제사회의 고민이 깊다.

솔로몬제도 뉴조지아섬 선착장. ‘웰컴 투 이건(WELCOME TO EAGON)’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선착장 뒤로는 이건이 관리하는 2만5000㏊(약 7500만평) 규모의 조림지가 펼쳐진다. /이건
솔로몬제도 뉴조지아섬 선착장. ‘웰컴 투 이건(WELCOME TO EAGON)’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선착장 뒤로는 이건이 관리하는 2만5000㏊(약 7500만평) 규모의 조림지가 펼쳐진다. /이건

이건은 ESG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1970년대부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조림사업을 해왔다. ‘심지 않으면 베지도 않는다’는 게 이건산업이 50년간 지켜온 경영 원칙이다. 나무를 벤 자리에는 반드시 새 나무를 심는다. 성장이 끝나 탄소 흡수량이 한계에 다다른 나무만 벌목하며 지름 50㎝ 이하 나무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이건이 조성한 솔로몬제도 조림지의 연간 탄소 흡수량은 약 77만t에 달한다.

심지 않으면 베지도 않는다

솔로몬제도에서 조림 사업을 시작한 건 지난 6일 작고한 故 박영주 회장(창업주)의 뜻이었다. 박 회장은 1978년 제2차 석유파동 당시 목재 가격이 치솟는 상황을 경험하고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브라질, 미얀마 등이 후보로 올랐지만 솔로몬제도를 최종 선택했다. 일조량과 강우량이 많아 목재 자원이 풍부하고 정치·사회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산업은 1980년부터 7년에 걸친 현지 조사, 솔로몬제도 정부를 상대로 한 교섭 끝에 1987년 9월 37만㏊(약 11억 평) 규모의 초이셀섬 산림 단독 개발권을 획득했다. 1995년에는 뉴조지아섬의 정부림 2만5000㏊(약 7500만 평)를 추가로 매입했다.

해외 조림사업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된 배경에는 현지인과의 돈독한 관계가 있다. 박 회장은 회사 설립 전인 1960년대 후반, 출장 차 방문했던 필리핀에서 산림 개발 회사들의 무리한 벌목으로 민둥산이 양산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로 인해 산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 현지 주민의 삶은 크게 위협받고 있었다. 박 회장은 이런 악습을 끊기 위해 조림사업의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것, 둘째 현지인과 상생할 것. 이건은 이 원칙을 50년째 지키며 매년 1000㏊ 면적에 새 나무를 심고 있다.

나무 베는 목재기업이 환경을 지키는 법

1989년에는 솔로몬제도에 이건재단을 설립하고 현지 주민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했다. 매년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일부 학생은 한국의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조림사업장 주변 마을에는 수도와 전기 시설을 구축하고 학교와 병원, 미술관을 지었다. 현재 이건산업의 작업장에서 일하는 현지 주민은 1000여 명에 달한다.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까지 3대가 함께 일하는 경우도 있다. 조림지 주변이 ‘살기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을 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

솔로몬제도 현지에서 근무했던 이건산업 관계자는 “현지에서 이건은 ‘국민 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주민들의 신뢰가 높다”고 말했다. 2002년 솔로몬제도에서 현지인을 착취하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반발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이건산업의 조림지만은 무사했다. 2000년 솔로몬제도에 내란이 일어났을 때는 반군이 이건산업 직원의 차량을 몰수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건산업이 소유한 차량이라는 걸 알게 된 반군 대장은 박영주 회장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고 차량을 돌려보냈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순환경제’를 이루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친환경 밸류체인의 범위를 확장했다. 2009년, 2011년 이건에너지와 이건그린텍을 각각 설립하고 폐목재를 재활용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건그린텍에서는 목재 부산물이나 원자재를 잘게 부셔 조경용 우드칩과 목재 팔레트(받침대)를 제작한다. 목재 팔레트는 전자제품 등 충격 완화가 필요한 물건을 운반하는 데 쓰인다. 국내 이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목재 폐기물뿐 아니라 다른 건설 현장에서 나오는 처치곤란인 목재 폐자재도 받아 처리한다. 이건그린텍에서 재활용하는 폐목재는 연평균 6만8000t이다. 이건에너지에서는 폐목재, 목재 부산물 등을 태워 열병합 발전을 한다. 이렇게 발생한 스팀에너지를 인천지방산업단지 내 주변 기업에 공급한다. 재생에너지로 인증받은 일부 전력은 전력거래소에 판매한다.

이건산업 측은 “▲목재 생산(1단계) ▲폐목재를 활용한 제품 생산(2단계) ▲에너지 생산(3단계)이 그룹 안에서 모두 이뤄지는 목재 산업의 수직 계열화를 국내 목재기업 최초로 이뤘다”면서 “2·3단계에서 얻은 수익금은 다시 조림사업에 투자함으로써 목재산업의 순환경제를 실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건은 폐목재를 활용하는 2·3 단계의 사업을 확장해 갈 계획이다. 타 기업과 협약을 통해 효율적으로 폐목재를 수거해 친환경 제품과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설명이다. 이건산업 측은 “이건은 지난 50년 동안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해왔다”며 “앞으로도 이런 가치순환을 더욱 활성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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