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비영리단체의 후원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납부한 돈을 ‘기부금품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회원들이 낸 돈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의 규제를 받지 않고 사업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일 대법원은 기부금품법을 위반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의 상고심을 파기하고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사업을 진행한 사단법인 A는 지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약 5년의 기간 동안 후원회원으로부터 모집한 기부금의 사용이 기부금품법에 위반됐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일반회원’ ‘정기회원’ 등으로 가입한 사람들이 매달 낸 회비나 정기후원금에 대해서도 기부금품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A법인은 1심, 2심에서 모두 유죄를 받았다.
기부금품법은 모금·관리·운영·결과보고 등을 목적으로 단체가 쓸 수 있는 ‘모집비용’을 전체 모금액의 최대 15% 이내로 제한한다. 기존에 행정안전부 등 등록청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모금을 등록 대상으로 봤다. 이때 모금종사자 인건비, 후원행사나 캠페인 경비 등이 모집비용으로 분류됐다. 후원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회비는 기부금품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재단법인 동천의 황인형 변호사는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호물품을 전달하거나 사후복원활동을 수행하는 건 모두 사람의 몫이기 때문에 공익단체들의들 고유목적사업비에서 인건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원심판결이 그대로 적용되면 단체들은 인건비를 지불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1·2심 판결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황인형 변호사에 따르면, 공익단체들의 전체 모금액 중 95%는 기부금품법 적용을 받지 않는 정기후원금이다. 단체들은 각자의 실정에 맞게 정기후원금을 인건비, 사업비, 홍보비 등에 사용했다. 일회성 모집·후원활동 등을 통해 모금한 기부금은 기부금품법 적용을 받아 사용이 제한되지만, 이 비율은 5%에 불과했다. 그런데 검찰과 1·2심 법원은 정기후원금을 기부금품법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모금단체들의 모금액 100%가 기부금품법 적용 대상이 되면서, 모금액 사용에 굉장한 제한을 받게 된다. 특히 2심 법원은 인건비, 홍보비 등을 모두 모집비용에 포함하면서 기부금품법에 따라 15% 이내로 사용을 한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존 40~50% 비중을 차지하던 인건비가 15%로 대폭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인형 변호사는 “활동가를 중심으로 한 복지·구호사업이 핵심인 공익단체들 입장에서 기존의 행정 해석을 전면적으로 뒤집은 1·2심의 판결은 사실상 사업을 중단하라는 소리”라며 “모집비용을 15%보다 더 확대하지 않은 채 후원회원들의 정기후원금까지 기부금품법에 포함하는 건 공익활동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혜자가 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선 용역, 캠페인, 교육, 연구 등이 수반돼야 하는데, 여기에 인건비가 투입된다는 건 법원과 검찰이이간과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원심판결로 공익단체들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태평양과 동천은 변호인단을 꾸렸다. 변호인단은 기존의 판례와 법률 연혁, 기부금 관련 법체계의 종합적인 해석을 통해 적극적으로 다퉜다. 대법원은 1년여의 심리 끝에 원심판결 중 유죄부분을 모두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사단법인 A)의 정관에 따라 ‘후원회원’ 등 자격을 얻은 회원들로부터 납부받은 후원금은 기부금품법의 규율 대상인 기부금품에서 제외된다고 봄이 타당하고 ▲피고인 법인의 인건비·홍보비는 법인의 목적 수행에 수반되는 비용이며 ▲모집 목적 외의 용도로 지출한 금액은 이자 등으로, 수입 금액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피고인 법인이 법인세법과 상속세, 증여세법 등 법령에 규정된 각종 의무를 위반한 사실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동천은 이번 판결에 대해 “전국의 공익단체들이 중대한 운영상의 위기를 면하게 됐다”면서 “향후 공익활동의 활성화, 합리적인 관리감독 체계 마련을 위한 법제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