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집밖에 나가기 무섭다”… 고립 청년, 서울에만 13만명

#무직인 30대 여성 A씨는 일어나면 스마트폰부터 집어든다. 소셜미디어를 보다가 밥을 먹고, 소소한 집안일을 한다.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잠을 자면서 보낸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어서다. 구직활동은 따로 하지 않는다. 외출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50대 B씨의 아들은 수개월째 방에만 있다. 아르바이트도, 취업 준비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때로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B씨는 고민이 크다. 자녀를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까. 퇴직을 앞둔 터라 마음이 더 무겁다.

청년들이 취업 박람회에서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DB
청년들이 취업 박람회에서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DB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중 고립·은둔 생활을 하는 청년이 약 1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18일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만 19~39세 청년 5513명과 이들이 속한 5221가구를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시행했다. 실제 고립·은둔 생활을 하는 당사자와 가족, 지원기관 실무자를 대상으로 심층조사도 진행해 조사의 정확성을 높였다.

이번 조사에서 ‘고립’은 6개월 이상 정서적 또는 물리적 고립상태에 놓인 경우로 규정했다. ‘은둔’은 6개월 이상 외출이 거의 없이 집에서만 생활했으며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이 없던 경우로 설정했다.

고립청년 41%, 5년 넘게 외출 꺼려

조사 결과 서울 청년 중 고립·은둔청년 비율은 4.5%였다. 이를 서울시 인구에 적용할 경우 최대 12만9000명에 이른다. 전국 청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약 61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고립·은둔 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실직 또는 취업의 어려움(45.5%)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심리적·정신적인 어려움(40.9%), 인간관계의 어려움(40.3%) 순이었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서울시 청년 전체 평균보다 부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기 이전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경험(62.1%),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진 경험(57.8%), 지인으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한 경험(57.2%) 등이 있었다. 성인기 이후에는 원하는 시기에 취업을 못했거나(64.6%),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57.8%) 등 취업 실패 경험을 안고 있었다.

고립청년의 약 28.5%는 '외출을 하지 않고 보낸 기간'이 5년 이상이라고 답했다. /서울시
고립청년의 약 28.5%는 ‘외출을 하지 않고 보낸 기간’이 5년 이상이라고 답했다. /서울시

이들 청년의 55.6%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생활이 5년 이상인 청년 비율은 28.1%로 매우 높았다. 1년 이상 3년 미만은 28.1%, 3년 이상~5년 미만은 16.7%였다. 경제력에 대해서도 걱정이 컸다. 고립·은둔 청년 10명 중 6명(64.7%)은 본인 가구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보통보다 낮다고 답했다. 일반 청년의 응답 비율인 31.4%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본인의 경제적 수준도 매우 부족함(51.6%), 약간 부족함(33.5%)으로 나타났다. 일반 청년은 각각 15.2%, 35.6%였다.

“고립 벗어나고 싶다”… 55%가 문제 인식

고립‧은둔청년은 자신의 신체적 건강상태에 대해 43.2%가 나쁘다고 응답했다. 이는 일반 청년(14.2%)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정신건강 관련 약물 복용 여부에 고립·은둔청년은 18.5%가 복용한다고 답해 일반 청년(8.6%)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립·은둔청년 10명 중 8명은 가벼운 수준 이상의 우울을 겪고 있었다. 중증수준 이상은 57.6%에 달했다.

고립‧은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에 대해 절반 이상(55.7%)이 ‘그렇다’고 답했다. 43%는 실제로 벗어나기 위한 시도도 해봤다고 했다. 시도한 방법은 취미 활동(31.1%), 일이나 공부(22%), 병원 진단 및 치료(15.4%), 심리상담(10.2%) 등이 있었다.

고립·은둔 청년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 /서울시

필요한 지원으로는 경제적 지원(57.2%)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 밖에도 취미·운동 등의 활동(44.7%), 일자리나 공부 기회(42.0%), 심리상담(36.8%)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연령대에 따른 차이도 있었는데 20대는 취미, 운동 등의 활동이나 심리상담을, 30대는 경제적 지원을 많이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지원은 고립·은둔생활 극복에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된 지원이었다. 지원방식은 단순 현금 지급보다는 바우처 형태의 지원을 희망했다.

고립‧은둔청년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은 고립과 은둔에 대한 이해 프로그램(22.4%), 부모와 자식 간 가족 상담(22.1%) 등이었다. 자녀를 이해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상담이나 교육을 주로 희망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고립·은둔 청년 지원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철희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장은 “청년의 고립과 은둔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당사자 중심의 섬세한 정책설계가 필요해졌다”며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실태조사를 시행해 유의미한 결과 값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립·은둔청년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 이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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