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국내 유일의 소년 교도소… 김천교도소 프로젝트 ‘연’

공동 창작의 과정에서 서로 간의 신뢰·책임감을 배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며 자기를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돼
뮤지컬로 12월 무대 오를 예정…무대 경험으로 자신감 되찾을 것
한 번 범죄로 인생이 끝나지 않도록 사회가 아이들을 도와야…

추석 연휴가 하루 지난 9월 27일 10시. 국내 유일의 소년 교도소인 김천교도소를 찾았다. 19세 미만의 소년범죄인 대다수는 보호처분을 받아 소년원 등에 수용된다. 하지만 징역 또는 금고형의 형사처분을 받으면 이곳 소년 교도소에 수감된다. 취재 수첩과 볼펜,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개인 물품을 맡기고서야 소내로 입장이 가능했다.

낯선 긴장감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선 강당은 뜻밖에도 청소년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19명의 청소년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뮤지컬의 극본을 만들고 있었다. ‘프로젝트 연’의 이유정(44) 대표는 칠판에 크게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고 썼다.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곳을 생각할 때의 마음을 말해주세요.”

수의(囚衣)를 입은 아이들이 잠시 주저하더니 곧 목소리를 높였다. “들뜬다” “편안하다” “행복하다” “그립다” 유정씨는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감정을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색깔·소리·사람·냄새·사물이 떠오르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의 이미지를 끌어냈다.

네온사인에 있는 파란색. 차를 타고 달릴 때의 바람소리·동생 냄새·가족…. 질문과 답이 한참 오가는 사이 칠판이 가득 찼다. 유정씨의 표정이 만족스럽다. “방금 여러분들이 한 얘기가 뮤지컬의 각본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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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마음에 드는 재료를 골라 콜라주를 만들어보는 시간, 한 아이가 뛰어나가더니 날개를 골라 어깨에 멨다. 뮤지컬 수업 시간은 잠시나마 자유를 느껴보는 시간이다. ②③④아이들이 만든 콜라주는 함께 바다에 가고 싶은 가족이나 행복으로 둘러싸인 집을 표현하고 있었다.
①마음에 드는 재료를 골라 콜라주를 만들어보는 시간, 한 아이가 뛰어나가더니 날개를 골라 어깨에 멨다. 뮤지컬 수업 시간은 잠시나마 자유를 느껴보는 시간이다. ②③④아이들이 만든 콜라주는 함께 바다에 가고 싶은 가족이나 행복으로 둘러싸인 집을 표현하고 있었다.

수업 내내 아이들을 지켜보는 황영복(55) 교위의 표정에서도 웃음이 지나간다. “아이들이 뮤지컬을 배우기 시작한 지 5주가 됐어요. 전에 무용수업을 할 때는 땀으로 흠뻑 젖더니, 오늘은 이렇게 말들을 잘하네요. 이렇게 신난 모습은 처음이에요.”

아이들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교정시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하나인 뮤지컬 창작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소년교도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뮤지컬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진행했던 극본 작성 수업을 예로 들며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면서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일종의 성찰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동 창작을 하면서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약속, 신뢰와 책임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무엇보다 무대에 오르는 경험이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고취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뮤지컬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김천의 지역극단 ‘삼산이수’의 이현옥(33)씨는 “뮤지컬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하루하루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며 “아이들이 사회에서 생활할 때에도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모인 아이들. 이번엔 오전에 얘기했던 내용들을 콜라주로 표현해보는 시간이다. 눈앞에 놓인 다양한 재료들을 본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네 개 모둠으로 모인 아이들이 색색의 재료들을 오리고 붙이고 반죽을 하는 동안 선생님들을 만났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수감생에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되찾아주자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취지다. 하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예술강사들도 이 프로젝트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었다. 임형수(43) 선생님은 이 뮤지컬 프로젝트의 담임이다.

“대학 때 연극을 하고 20년이 됐어요. 그동안 연극을 왜 하고 사는지 스스로를 자책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힘이 나요. 담배도 끊었어요. 이런 일 더 오래 하려고요.”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 작업에 열심이다.

잠시 후 만들어진 콜라주 작품 네 개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사뭇 진지하게 작품에 대한 평이 오고 간다. 그 사이에 농담도 빠지질 않는다. 상철(가명, 19)이네 모둠은 ‘꿈이 멈춰버린 시간’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아가야 하고, 그러면 성장하잖아요. 반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더 힘들어지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이대로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상철이의 설명에 모두가 진지해지려는 순간 정렬(가명, 21)이가 손사래를 친다. “그럼 여기에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거냐? 그러면 우린 큰일 나. 빨리 나가야지.” 둘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웃었다.

아이들이 만든 뮤지컬은 올해 12월에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김천소년교도소나 김천문예회관이 공연장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벌써 자신감이 넘친다. 주성(가명, 21)이는 12월에 예정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관객이 500명 와도 떨지 않을 자신 있어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 프로젝트에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김종석(44) 교수는 “한 번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도록 사회가 도와야 한다”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삶을 계획할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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