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종일 서서 일해도 알아주는 사람 적지만… 생애 마지막 보살핌을 위해 오늘도 일합니다

어르신들께 새 가족이 돼주는 사람들, 남부실버요양센터 보호사들의 하루
요양보호사 2명 상주하며 어르신 10여명 식사 돕고
대소변 처리·건강 관리… 6시간 동안 앉을 틈 없어
“물에 약 탔을 거다” 치매로 오해도 하시지만 진심으로 대해 드리면 어르신들도 다 알아주셔
일부 불량시설 행태에 노인 가족이 트집 잡기도 직업인으로 인정받도록 체계적인 정비 필요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가 전국 236개 노인장기요양기관을 대상으로 특별조사를 실시했는데, 144개 기관이 29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종사자를 거짓으로 등록하거나, 서비스 제공 시간을 늘려 청구했다. 일부 노인요양기관의 부도덕한 행태로, 현장에 있는 요양보호사들은 “(어르신) 가족들이 의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볼 때면, 힘이 빠질 때가 많다”며 하소연한다. 이들은 엄연히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제대로 존중받지도 못한다. ‘더나은미래’는 직접 노인요양기관을 찾아 요양보호사들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미상_사진_노인_실버요양센터할머니_2014

“내가 말이여. 이래 지냈던 사람이 아녀. 논일, 밭일, 음식도 못하는 게 없었어. 나이 사십에 남편 죽고, 없이 살았어도 딸 둘, 아들 넷 시집·장가 다 보낸 사람이란 말여.”

이금자(가명·87) 할머니가 억울한 듯 말을 이었다. “근데 인자 앉지도 일나지도 못혀. 빨리 죽어야 쓰겄는데 죽지도 못혀. 2년 전 처음 왔을 때 들락날락하더니, 이젠 자식들도 뜸혀. 걔들도 먹고살기 바쁜가벼. 에혀 얼렁 죽어야지….” 자식들 얘기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골다공증을 앓았던 이금자 할머니는 2년 전 문턱을 넘다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두어 번씩 되물어야 할 만큼 귀도 어둡다.

지난달 28일 찾은 서울 독산동의 ‘남부실버요양센터(다솔관)’. 노인 42명이 생활하는 곳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로 시설이용료의 80%(월 130여 만원, 1등급 기준)는 건강보험공단이 낸다. 이성상 사무국장은 “1~3급까지 들어올 수 있는데, 등급만 유지되면 기한 없이 거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등급은 매년 새로 받아야 하며, 3번째 심사부터는 2년에 한 번씩 갱신한다.) 6층 건물의 2층부터 4층까지가 생활 시설이다. 4층 출입문 앞에 선 이 국장이 출입문 꼭대기에 달린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치매노인들은 ‘아차’ 하는 순간 사고가 날 수 있어, 문을 꼭 잠가야 한다”고 했다.

실내는 여느 가정집과 비슷했다. 50평(165㎡) 규모에 방이 5개다. 한 층에 노인 13명이 산다. 혼자 쓰는 방도, 4명이 함께 쓰는 방도 있었다. 항시 상주하는 요양보호사는 2명. 가장 작은 방을 둘러보는 찰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것들 뭣이여!” 방 주인 박점자(가명·85)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최정희 요양보호팀장은 “여기 어르신 중 (치매가) 가장 심해 공격적인 성향을 자주 보이시는 분”이라고 했다. 모서리 끝의 405호는 마치 입원실처럼 침대 4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한 침대에서 온 몸에 피부병 약을 바르느라 알몸이 된 노인의 다리가 마른 가지처럼 앙상했다. 최 팀장은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와상(臥狀·누워있는 상태) 어르신”이라며 “이층의 여덟 분이 저런 어르신이라 대소변 처치도 해드려야 한다”고 했다.

1 강성화 작업치료사가 와상환자의 식사를 돕고 있다. 2 박점자(가명) 할머니가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1 강성화 작업치료사가 와상환자의 식사를 돕고 있다. 2 박점자(가명) 할머니가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생애 마지막 보살핌을 받는 곳 ‘노인장기요양원’

송양자(가명·100) 할머니는 방문 앞에 힘없이 기대앉아 있었다. 이 시설 최고령자다. “며늘애가 다리랑 어깨가 아프대. 밥 못 해준다고 말도 않고 이리 보냈어. 온 지 3년 됐는데 집에 한 번을 못 가. 내일은 토요일인디….” 말을 흐리는 할머니는 “누가 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친손자가 박사요, 박사. 강남에 있는 연구소서 일혀”라고 했다. 최시원(가명·29) 사회복지사는 “보호자들이 지쳐서 보내신 분들이라, 좋아져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며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오후 4시, 요양보호사 이정숙(가명·59)씨가 금순자(가명·77) 할머니 발가락에 반창고를 붙였다. “발가락뼈가 나오려고 해서 못 튀어나오게 감는 것”이라고 했다. 재활병원에서 근무했었다는 강성화(28) 작업치료사는 “이곳이 병원보다는 훨씬 가족적인 분위기”라며 “치료만 신경 쓰는 병원과 달리, 여기선 어르신 개개인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4시 반이 되자 저녁 준비로 부산해졌다. 일찍 취침하는 어르신이 많아 오후 5시가 되기 전에 저녁이 시작된다고 한다. 배식통을 방 안으로 들이는 사이, 박점자 할머니가 싱크대에 물을 따라 버리고 컵을 빡빡 씻었다. “우리가 물에 약을 탔다고 저러세요. 아까 어르신이 직접 떠가셨거든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래요.” 요양보호사 김성녀(가명·60)씨의 설명이다.

배식도 요양보호사가 직접 했다. 보리밥에 계란탕, 순대야채볶음, 깨묵무침, 무들깨나물, 김치가 이날의 메뉴. 403호의 한 노인이 “여기!” 하며 외쳤다.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신호였다. 마주 보는 침대 사이로 이정숙씨는 기저귀를 갈고, 김성녀씨는 배식을 했다. 405호는 죽과 미음으로 끼니를 대신했다. 강성화씨는 “누워계셔서 밥은 소화시킬 수가 없다”고 했다. 한술 떠서 호호 불어 식히고, 입을 열게 해 한 숟갈 뜨게 하는 데도 한 세월이다. 박점자 할머니의 밥은 거의 그대로다. “왜 이렇게 안 드셨느냐”는 물음에 “밥이 노래. 약을 탄 것 같애”라며 인상을 썼다.

◇힘들어도, 억울해도 ‘내 일’이라 생각합니다

요양보호사들은 조금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이들이 앉는 것을 본 건 오후 1시 이후 6시간 만에 처음이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불 꺼 달라” “문 닫아라” “물 달라”…. 주문도 가지각색이다. 김성녀씨는 “403호엔 불 끄고, 문 닫아야 하는 어르신과 ‘무서우니까 불 켜라’는 어르신이 밤새 ‘껐다켰다’ 실랑이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온종일 노인들 뒤치다꺼리로 “발바닥이 아플 정도”라는 요양보호사. 이 일을 왜 선택했을까? 2009년 시작했다는 김성녀씨는 “그냥 주부로 있을 때보다 삶이 의미 있다”고 했다. “치매로 엉뚱한 소리만 하는 것 같아도,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면 어르신들도 받아준다”며 “보람 있다”고 했다. 5년 경력의 이정숙씨는 “힘들다, 더럽다 생각하면 못 하는 일”이라며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다 내 부모다’ 생각하면, 별로 힘든지도 모른다”고 했다. 최정희 팀장은 “요양보호사들이 적지 않은 나이에 제 몸 돌보지 않고 일하지만, 아주 가끔 찾아오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어르신의) 가족들이나 일부 불량 시설들의 행태 때문에 받는 차가운 시선에 힘이 빠질 때가 많다”고 했다.

국내에 노인을 위한 장기요양 시설은 총 2만4000여곳. 입소 시설은 4600여곳(19%), 집으로 요양보호사들이 찾아가는 ‘재가 시설’은 1만9600곳(81%)이다.(보건복지부, 2013년) 대부분 지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 도입과 함께 생겨난 시설이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은 “급격한 고령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핵가족화가 맞물리면서 집에서 어르신을 모실 수 있는 가정환경이 점점 사라졌고, 독거노인이 급격히 늘었다”며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그런 어르신들이 안정적으로 수발을 받으며 마지막까지 삶의 질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김지영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장은 “이미 110만명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은 25만명뿐”이라며 “희생과 봉사만을 강요하기보단, 자긍심을 가진 직업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체계로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