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5일(월)
사회적기업, 청년 예술가의 경제적 자립 돕는다

더나은미래×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공동기획
[이것이 사회적경제다]
①청년 예술가에게 기회를

코로나 팬데믹 2년.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폐업 위기에도 사회문제 해결을 포기하지 않은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난해부터 각자 돌파구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코로나19 공동대응본부를 꾸리고 ‘고용 조정 제로’를 선언했다. 함께해야 멀리 간다는 정신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사회적기업 5년 생존율은 79.7%다. 일반 민간 기업 생존율의 2배를 넘는다. 지금도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전국 각지에서 꿈틀대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로 경제적 이익을 만들고, 이를 다시 문제 해결에 쏟는 선순환이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공동으로 예술·환경·의료·장애 등 각 분야에서 사회문제 해결에 나선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4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신윤예 공공공간 대표가 특수 인쇄 장비를 이용해 유리컵에 작가의 그림을 프린팅하고 있다. /공공공간 제공

호작(24) 작가는 4년 차 일러스트레이터다. 낮에는 회사에서 제품 디자인을 하고, 밤에는 SNS에 작품을 그려 올린다. 일상에서 겪은 일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데,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로 팬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SNS에 올린 그림들로 ‘굿즈(기획 상품)’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이 프린트된 유리컵, 텀블러, 쿠션이 하나씩 판매될 때마다 수익도 얻고 자부심도 느낀다.

그가 선뜻 굿즈 제작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사회적기업인 ‘공공공간’이 제공하는 ‘위드굿즈’라는 플랫폼 덕분이다. 공공공간은 지난 2012년부터 서울 창신동에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해 자투리 천을 충전재로 활용한 ‘제로 쿠션’, 자투리 발생을 최소화한 ‘제로웨이스트 디자인 셔츠’ 등을 만들고 있다. 소상공인 소득 증대와 환경 보호라는 소셜 미션을 바탕으로 지난 2017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고, 2019년부터는 신인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알리고 굿즈도 판매할 수 있는 위드굿즈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신윤예 공공공간 대표는 “작가가 작품 이미지를 업로드한 뒤 그림을 새겨 넣을 제품의 종류를 선택하면 우리가 물건을 제작해 플랫폼에서 판매한다”면서 “최소 주문 수량이 없어서 작가가 마음 편하게 굿즈를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 한 개의 굿즈도 제작해 드립니다”

청년 예술인의 삶은 팍팍하다. 문화체육관광부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가가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연평균 소득은 약 1281만원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9년 한국 국민의 1인당 총소득인 3만3790달러(약 3953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특히 미술 분야의 경우 약 868만8000원으로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또 미술 분야 예술인의 약 20.3%는 1년 이상 활동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로 ‘수입 부족’(약 66.8%)을 가장 많이 꼽았다.

결국 투잡을 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호작 작가는 “작가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는 생활비와 작품 재료비에 쓸 소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작가 활동을 하는 지인 대부분이 미술 공방이나 소품샵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면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위드굿즈의 핵심은 청년 예술인의 경제적 자립이다. 작가들은 굿즈 판매가의 30%를 갖는다. 제작 원가와 유통비를 제외한 순이익이다. 예를 들어, 판매가 3만5000원짜리 텀블러 하나를 팔면 1만500원을 받는 셈이다. 공공공간이 제품 생산부터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 진행하기 때문에 디자인 시안을 넘긴 작가는 추가적인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위드굿즈를 이용하는 한 작가는 지난 10개월간 누적 256만원의 순이익을 얻기도 했다.

순수 예술 활동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신인 작가들은 겸업하거나 굿즈 판매, 외주 작업 등으로 활로를 찾는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한 미술 작가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이 개인적으로 굿즈 판매에 나서고 있지만 결국엔 재고와 경제적 손실만 남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재고 부담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공간은 최소 주문 수량을 정해두지 않았다. 단 한 개의 작품도 제작할 수 있다. 공공공간은 굿즈 제작에 쓰일 재료를 미리 구비해두고, 소비자들의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이다. 덕분에 폐기물도 최소화할 수 있다. 신윤예 대표는 “리스크는 회사에서 최소화할 테니 작가들은 작품에만 집중하라는 의도”라며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많아질수록 회사가 원재료를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위드굿즈에 등록된 작가는 약 6000명에 육박한다. 이들이 내놓은 굿즈만 6만3000여 종에 이른다.

위드굿즈에서 굿즈를 판매하는 한 작가가 지난해 6월 공공공간 사무실에서 스마트폰 케이스를 직접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원데이 클래스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운영되지 않는다. /공공공간 제공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윤혜민(26)씨는 전업 일러스트 작가다. 고래를 테마로 우주, 바다, 하늘 등을 표현하는 작법이 특징이다. 팬층도 두꺼운 편이다. 그는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2015년 당시에는 고래를 소재로 삼은 작가가 드물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받았던 것 같다”고 했다. 굿즈 판매는 물론 온라인 강사로도 활동했다. 문구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난해 오프라인 활동이 끊기면서 소득도 바닥을 쳤다. 윤씨는 “매년 두 번 열리는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나가서 엽서, 노트 등을 판매하면서 소득을 올렸지만 지난해엔 행사가 모두 취소되면서 굿즈 판매를 거의 못 했다”며 “작가들에게 오프라인 행사는 여러 사람을 만나 협업을 꾸리는 기회이기도 한데 그 길이 다 막힌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수입원을 찾던 윤씨는 지난 1월 위드굿즈의 문을 두드렸다. 지금까지 플랫폼에 소개한 굿즈는 23종이다. 윤씨는 “판매량은 적지만 꾸준히 굿즈를 팔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창업 10년째를 맞은 공공공간은 초기에 봉제 소상공인들의 소득 증대를 돕던 사업으로 출발했다. 미션을 달성하려면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이 필요했다.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소규모 사회적기업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브랜드가 필요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신윤예 대표는 신인 작가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생활비를 벌어보겠다고 혼자 굿즈를 제작하고 판매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동료 작가들을 숱하게 봤다”며 “작가들이 본인의 그림으로 개인 굿즈 브랜드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여기에 제조업 소상공인들의 물건을 활용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2018년 한 해간 시범 사업으로 운영한 위드굿즈는 이듬해 정식 출시됐다.

현재 공공공간은 위드굿즈의 매출을 늘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작가와 소상공인에게 더 많은 소득이 돌아가도록 하는 전략도 구상 중이다. 지난 9월부터는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그로스업 지원 사업’에 선정돼 소비자 패턴을 분석해 서비스를 개선하는 마케팅 기법인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컨설팅을 받고 있다. 신윤예 대표는 “지금까지 작품을 팔아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예술인이 상위 1%에 불과했다”며 “앞으로는 모든 예술가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주 소득원이 될 수 있는 굿즈 플랫폼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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