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한국모금가협회 공동기획]
기부금품법 개정, 무엇이 문제인가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금단체 전문성 높이려면 운영비 사용 제한 풀어야”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기부자가 신바람 나도록 오히려 ‘인센티브’ 지급”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불법 모금서 국민 보호하는 본연의 목적 달성을”
양용희 한국비영리학회장
“다양한 NGO 공감대 이룬 ‘자율 규제’ 유도해야”
국내 기부 문화 형성의 근간인 ‘기부금품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부 통합 관리 시스템의 법률 근거 마련 때문에 개정안이 늦어도 연내에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15년 만에 이뤄질 법 개정에서 정작 핵심 내용은 빠졌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경쟁적인 의원 입법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현재 국회 의안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올라온 기부금품법 개정안은 총 20건에 이른다. 한 달에 약 2건씩 올라온 셈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25건, 20대 국회 26건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한국모금가협회와 공동으로 비영리 분야 전문가 4인이 바라보는 현행 기부금품법의 문제와 개정안의 쟁점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그래피서울에서 진행된 좌담회는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가 진행하고, 양용희 한국비영리학회장,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가 참석했다. 좌담은 약속된 시간을 넘어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현실성 떨어지는 법… 현장에 맞게 바뀌어야
황신애=기부금품법 개정의 명분은 투명성 강화다. 업계에서는 20건의 개정안을 살펴봐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현재로서는 행정안전부에서 촉탁해 상임위 의원을 통해 내놓은 ‘정부안’을 중심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복잡하고 모호한 현행 조항들은 놔둔 채 이중 규제에 처벌만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기부 투명성은 고사하고 현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거다. 일각에서는 기부금품법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양용희=우리나라 기부금 관련 법률의 역사를 따라 올라가면 1949년 ‘기부통제법’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게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무분별한 모금이 횡행하자 이를 막는다는 취지로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이 나왔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 모금 행위를 권장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고 금지하는 거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를 완화해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거쳐 지금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까지 왔다. 이러한 흐름에서 아쉬운 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요소가 터질 때마다 법 개정이 고개를 든다는 점이다. 일례로 박근혜 정권 때 논란의 핵심이었던 미르재단은 설립 신고 하루 만에 인가가 떨어졌다. 규제가 약해서 그랬나? 아니라고 본다.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사전에 관리·감독할 수 있는데, 그걸 소홀히 하다가 사고가 나면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황신애=기부금품법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애초에 기부 활성화보다는 규제를 목적으로 제정됐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도 비슷하다. 부정적인 이슈가 터졌을 때 이를 개선하려면 행정부처에서 조치하고 감당해야 하는데, 해당 부처의 업무 담당자는 1~2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전국 NGO의 투명성을 관장할 수 있겠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NGO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진다. 이번에 나온 개정안들에도 이러한 행정적 보완 장치는 담겨 있지 않다.
이희숙=기부금품법이 현실 세계와 다소 동떨어져 있는 지점이 가장 큰 문제다. 현행 기부금품법에 따라 모집 등록을 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집행을 하기에는 현실적인 기부 수요를 못 따라간다. 그래서 법에 적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모금하는, 즉 법을 피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걸 해결하려면 왜 기부 수요와 사용 방법을 법에 반영하지 못하는가 하는 관점으로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간 모금 단체 측에서 정치권으로 의견을 보냈지만 국회는 움직이지 않았고, 개정안이 발의되더라도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부정적 이슈가 생기면서 여론이 안 좋다는 이유로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예전보다 형사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행정 절차를 복잡하게 하는 안을 발의한다. 이렇게 되면 기부금품법은 현실과 더 멀어지게 된다.
박훈=기부금품법의 규제 일변도는 세법과 비교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세법의 경우 투명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 구조를 갖는다. 하나는 성실 납세자에게 혜택을 주는 구조, 또 하나는 조세를 회피하는 사람을 잡는 구조다. 그런데 기부금품법 역시 투명성 강화라는 같은 명목을 내걸지만,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만 흘러가는 상황이다.
이희숙=기부자들 입장에서는 기부금품법에 어떤 규제가 있고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지 사실 잘 모른다.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여론이 좋지 않고 시민도 규제 강화를 원한다는 논리만 힘을 얻기 때문이다. 현행 기부금품법의 문제점과 기부 활성화를 위한 방안에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측면이 있는데 이에 대한 홍보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석하는 사람 따라 달라지는 모호한 규정… 정리 필요해
황신애=그렇다면 기부 활성화를 발목 잡는 대표적 규정은 무엇이 있나.
이희숙=현행법에는 기부금 1000만원 이상을 모집하려면 사전에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기부금 사용 목적이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는데, 과거에 만들어진 규정이라 시대 변화에 맞춰 발생한 다양한 기부 수요를 다 반영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모집 등록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즉 1000만원 이상 모금이 될 거 같으면 계좌를 닫아야 한다. 행여 1000만원 이상 모금을 진행하게 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위험을 단체가 감수해야 하는 거다. 모금 활성화에 굉장히 역행하는 규정이다.
황신애=현장에서는 소속 회원을 상대로 한 기부금품 모집은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한 혼선도 크다. 이를테면 대학이 동문이나 구성원을 대상으로 기부받으면 사전 등록하지 않아도 되는데, 구성원을 어떻게 보는지는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법에는 명확한 기준이 나와있지 않다는 거다.
박훈=현행법상 기부금품은 불특정 다수에게 모집하는 거로 규정돼 있고, 회원들이 내는 회비에는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면 안 된다. 그런데 모금 단체들은 회원이라는 이름으로 모금을 하고 있고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개념이 섞여버리는 거다. 기부는 결국 세금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또 다른 이슈가 발생한다.
양용희=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NGO들의 한 해 모금액 가운데 회원 비중이 상당하다. 일반적으로 사단법인이나 공익법인에서 회원이라고 할 때는 법인의 의사 결정 구조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본다. 모금 단체에 회원으로 기부하는 사람들이 의사 결정 구조에 참여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국내 기부 규모는 10조원대라고 하면서 기부금품법에서 규율하는 금액은 1000억원 수준밖에 안 되는 차이가 나는 거다.
박훈=정리하면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비영리법인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 이건 기부금 영수증 대상이 아니다. 또 하나는 법인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않지만 회원이라는 이름으로 내는 기부금. 이 역시 기부금품법 대상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회원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서 모금하는 기부금. 이것만 현재 기부금품법에 따라 모집 등록을 하고 관리받는 영역이다. 이 세 유형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희숙=한편으로는 법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행안부의 유권해석 등을 참고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각 주무 부처나 지자체마다 달리 해석하는 대목이 있어서 현장의 혼선이 계속되기도 한다.
박훈=모호한 규정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혼선을 해소할 만큼 책임감 있게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게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니까 다들 명확하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오로지 모금 단체가 불확실성을 짊어져야 하고, 기부에 대한 불확실성은 결국 기부 문화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핵심은 ‘자율 규제’… 공익법인 전담하는 독립 기구 마련해야
황신애=기부금품법 개정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이 나왔는데, 현재 발의된 법안들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내용 중 하나가 바로 기부금 사용에 대해 별도 감독하겠다는 거다. 국세청에서 공익법인의 기부금을 관리하는 가운데 기부금품법상 감독 수준을 강화하면, NGO 사이에선 이중 규제 논란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희숙=기부는 기부금품법과 세법을 동시에 적용받게 된다. 단체 처지에서 이미 세법상 허용되는 부분이 기부금품법에서는 위법이 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건비다. 공익법인 회계 기준을 보면 인건비를 목적 사업 비용에 넣을 수 있도록 돼 있는데, 기부금품법상에는 모두 모집 비용에 포함하도록 하고 그 비율도 정해놓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부금품법이 세법을 따라가는 방향으로 개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훈=맞는다. 규제를 하려면 관리·감독 책임까지 생각해야 한다. 일례로 국세청에서 공익법인에 부과한 가산세 추이를 살펴보면 2016년 7억원, 2017년 85억원, 2018년 375억원, 2019년 314억원이다. 가산세가 갑자기 늘었다는 건 공익법인들이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법은 그대로인데 갑자기 관리·감독을 세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규제라고 하는 건 관리·감독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해야 하고, 그 기준을 정했다면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양용희=국내 기부금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해서 논의할 때 해외 사례를 많이 참고하게 된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 기부 문화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나라의 법을 살펴보면, 기부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세금의 주체는 납세자고, 기부의 주체는 기부자다. 해외의 법은 철저히 기부자 관점이다. 기부자가 모금 단체에 기만당하거나 사기당하지 않도록 모금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처럼 모금 단체의 모집 비용을 일일이 규율하는 조항은 찾아보기 어렵다. NGO의 공익성만 따지고, 기부를 할지 말지는 기부자의 판단에 맡기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에는 기부자가 없다. 정부와 모금 단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하나하나 규제하려고 한다. 그런 방식의 규제는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기부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만 하면 된다. 그게 기부자를 존중하는 일이다.
이희숙=덧붙이면 미국 법원에서는 모집 비용을 규제하는 걸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로 판단하고 있다. 핵심은 기부금을 모집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설명한 대로 모금한 돈을 사용하고 있느냐만 따지는 거다. 기부자가 돈을 내놓는 건 그 목적에 사용하는 걸 동의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유롭게 기부한 돈을 두고 정부가 사업비와 모집 비용 사용 비율까지 정해놓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박훈=정부 규제에 대한 비판만큼이나 NGO와 기부자의 관계 정립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이번 개정안에도 포함된 쟁점 중 하나인데, 기부자가 모금 단체에 정보 요청을 했을 때 장부를 공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여기에 대해 단체들은 정보 공개 요청에 응하는 게 맞지만, 모든 정보를 내보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나오면 단체를 잠재적인 범죄 집단으로 의심하는데, 주식회사도 주주에게 기업의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요건에 맞춰 제한적 정보를 제공한다. 모금 단체와 기부자의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NGO 차원의 자율 규제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양용희=사실 법 개정보다 자율 규제가 핵심이다. 모금 규모가 큰 단체에서는 해외 법과 제도를 연구하고 널리 공유해야 한다. 투명하게 일을 잘 해낼 때 신뢰받을 수 있다. 정부나 기부자들이 ‘내가 낸 기부금 어디 썼느냐’는 관점을 뒤집지 못하면, 규제 강화 목소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황신애=기부금품법 개정이 지난 10여 년간 왜 계속 공전하고 있는지 주요 쟁점을 쏟아내 봤다. 결국 통합적 목표가 생기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도 동시에 든다.
박훈=부처마다 우선순위가 있는데, 기부 관련해서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다는 곳은 없다. 청와대나 총리실 직속으로 일원화된 기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권한을 주고 책임도 지게 해야 한다.
이희숙=지금처럼 부처별로 모집 등록하는 방식 말고, 호주의 자선위원회처럼 전담 조직을 마련하면 좋겠다. 그래야 중복 규제도 사라진다.
양용희=아예 민간 조직으로 나오는 것도 방법이다. 여러 이해관계자의 합의 없이 법 개정을 진행하지 않았으면 한다. 쫓기듯이 법을 바꾸려 들으면 더 큰 부작용만 일으킬 수 있다.
정리=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