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1일(토)
선진국엔 없다는데… 재활용 힘든 ‘선거 현수막’ 꼭 써야하나

선거용 현수막 폐기물 처리 문제

업사이클링해도 폐기물량 감당 못해
주요국, 스티커 부착 등 홍보법 달라
한국, 구시대적 선거 문화 바뀌어야

현수막 폐기물 문제는 매년 선거 때마다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7일 치러진 재·보궐선거 당시 거리에 내걸렸던 현수막 1만8000여 개는 그대로 창고에 처박혔다. 수거된 폐현수막은 재활용 업체와 닿지 못하면 그대로 소각된다. 대부분 플라스틱 합성수지 재질에 유성 잉크로 실사 출력하기 때문에 매립해도 썩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 유럽 등 세계 주요국에서는 거리 현수막이나 벽보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공직선거법에는 선거용 현수막의 게시 기간, 규격, 수량 등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지만 해외에는 이런 규정조차 없는 곳이 많다. 선거 현수막을 사용하지 않는 게 이 나라들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선거에 꼭 필요한 정보도 담지 못하고 불필요한 폐기물만 발생시키는 선거 현수막은 퇴출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청 관계자들이 선거 현수막을 걷어 구청 보관 장소에 쌓고 있다. /연합뉴스

엄격한 선거법이 오히려 폐기물 발생시킨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 현수막은 선거구 내 읍·면·동 수의 2배까지 허용된다. 서울시의 경우 행정동이 425개 있기 때문에 후보당 현수막을 850개까지 내걸 수 있다. 후보 15명이 현수막을 최대로 걸었을 때 1만2750개가 사용된 셈이다. 선거 이후 당선 혹은 낙선에 대한 인사 목적의 현수막도 후보별로 1장씩 걸 수 있다. 이번 보궐선거 후보의 캠프 관계자는 “선거법에서는 후보자가 지정한 사람만 공개 연설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 홍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썬 현수막이 매우 중요한 홍보 수단”이라며 “자금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현수막을 찍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선거가 끝나면 현수막은 후보자 측에서 즉시 철거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빠른 수거가 이뤄지지 않아서 구청 직원들이 직접 현수막 수거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현수막은 13만8100개에 이른다. 환경부는 당시 현수막 발생량 9220t 가운데 33.5%인 3093t을 재활용했다고 밝혔다. 나머지는 소각됐다. 코로나 확산 이후 처음 치러진 2020년 4·15 총선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은 3만5100개다. 폐기물 1739t 가운데 407t이 재활용됐다. 재활용률은 23.4%로 지방선거 때보다 더 떨어졌다.

문제는 환경부의 재활용률이 실제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폐현수막 재활용 방법은 ▲태워서 열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과 ▲지갑·에코백·백팩 등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전환하는 등 두 가지가 있다. 업사이클링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을 운영하는 박미현 대표는 “선거용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보다 질이 낮고 색깔도 화려하기 때문에 활용도가 떨어진다”면서 “특히 후보자 얼굴이 인쇄된 부분은 그대로 쓰기 어려워 폐기되는 물량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경부에서 집계하는 재활용 통계는 재활용 기업에 보낸 물량 전체를 잡기 때문에 실제 재활용률은 더 떨어질 것”이라며 “현수막은 재활용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 아예 발생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현수막뿐 아니라 그 외 선거 폐기물도 상당하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선거공보물 4억5000만부와 벽보 64만장이 만들어졌고, 투표자에게 개별 비닐장갑이 지급됐다. 총선 투표자는 2912만명이다. 내년에 잇따라 치러지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도 대량의 폐기물 발생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김미화 이사장은 “단순히 현수막을 에코백으로 재활용한다고 해도 폐기물량이 워낙 많아 처리하지 못하고 근본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현수막 사용을 최소화하는 건전한 선거 문화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해외 선거운동, 길거리보다 미디어 활용

선거 문화가 발달한 미국이나 유럽에는 거리 현수막이 거의 없다. 선거 홍보물에 대한 별다른 규정이 없어서 오히려 현수막보다 효과적인 선거 운동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현수막은 인쇄·시설물에 관한 선거운동 수단 중 하나로 분류되는데 독일, 영국, 호주 등 세계 주요국은 선거법에 선거운동에 대한 정의를 두고 있지 않다”면서 “세부 규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별로 다양한 방식의 선거 문화가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거리에 현수막을 거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있다. 도시의 경관을 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리 홍보 수단으로는 주로 선거 부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에서는 선거 부스에서 정당 로고가 새겨진 볼펜이나 사탕, 풍선 등 홍보물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선거 홍보에 관한 세부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현수막에 대한 규정은 없다. 벽보는 허용하지만 물량 자체가 많지 않다.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홍보 방식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홍보 비용에 대한 규정은 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수막은 물론 선거 벽보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선거운동원이 주도하는 홍보 방식이 아닌 유권자들이 직접 지지하는 후보를 알리는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자 지지 스티커를 승용차에 부착하거나 집 앞마당에 간판을 세운다. 이는 기간에 대한 제한 없이 상시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독일의 경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활용한다. 특히 독일 정치권은 이미 10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정책 홍보, 활동 보고, 자료 배포 등을 하면서 온라인 선거운동이 일반화했다. 선거운동에 대한 금지 규정이 없는 스위스, 스웨덴 등도 SNS를 통한 선거운동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부터 온라인 선거운동을 허용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김미화 이사장은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70~80년대의 선거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는 현수막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각 정당에서 온라인 채널을 활용한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면 좋겠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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