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일자리 리포트] ③좋은 일자리 실험들 <끝>
‘사단법인 마을’이 위탁 운영하는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비정규직 없는 일터’다. 지난 2016년 설립 당시부터 ‘비정규직 제로’와 ‘좋은 일자리’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도 육아휴직 대체 인력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원 30여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홍두나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장은 “위탁 계약 주체인 서울시 규정 범위 안에서 인건비를 집행하기에 아주 넉넉한 수준의 급여나 복지를 제공하지는 못한다”면서도 “일자리가 안정적이고 개인의 성장이나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고, 조직의 노동 환경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를 갖추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비영리의 ‘좋은 일자리 만들기’ 실험이 시작됐다. 좋은 인재가 장기 근속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드는 게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단체가 도입한 제도는 일정 기간 근무하면 유급휴가를 주는 ‘안식월’ 제도다. 아름다운재단은 3년과 6년 근속 직원에게 각 2개월씩, 9년 이상 근속하면 반년의 유급휴가를 준다.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는 5년 이상 근속 시 1개월, KCOC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와 발전대안피다는 3년 근속 시 각각 3주와 1개월의 유급휴가를 준다.
조금은 특이한 복지제도를 도입한 곳도 있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지난 2019년 ‘휴가 기부제’를 만들었다. 휴가 기부제는 직원들끼리 휴가를 나눌 수 있는 제도다. 양동화 지구촌나눔운동 개발교육팀장은 “업무량은 많은데 연차가 낮거나, 병가나 출산으로 추가 휴가가 필요한 동료를 돕는 데 주로 쓰인다”고 했다. 상급자가 강압적으로 휴가를 뺏을 수 없도록 감시하는 제도도 만들었다. 휴가 기부는 소속 팀장이 아니라 휴가가 강압적이지 않은지를 확인하는 전담 ‘와처(Watcher)’가 승인한다.
업무와 사생활을 분리해 휴식을 보장하는 곳도 있다. 환경단체 ‘생명의숲’은 조직 내 의사소통을 카카오톡이 아닌 슬랙으로 단일화하고 8시 이후엔 모두 알람을 끄도록 했다. KCOC도 슬랙을 도입했다. 해외와 소통할 일이 많은 국제개발협력 업무 특성상 카톡으로 업무를 진행하면 해외 활동가와 국내 활동가 모두 업무 외 시간에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들은 슬랙 도입 후 “업무 외 시간에 온전히 쉴 수 있어 좋다”며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좋은 일자리의 핵심 조건 중 하나인 ‘적정한 급여’ 논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비영리단체 활동가라면 일정 수준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앞선 세대와, 노동의 대가를 적정한 임금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2030 활동가 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한 인권단체에서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젊은 활동가와 이를 불편해하는 선배 활동가가 대립하는 일이 있었다. 이 단체에 소속된 활동가 A씨는 “인권을 보호하자고 하면서 적정 수준의 임금을 달라는 요구를 불편해하는 선배들을 보며 크게 실망했다”며 “적정한 보상 얘기를 쏙 빼고 어떻게 ‘존엄한 일터’를 만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류홍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장은 “비영리가 추구해야 할 ‘좋은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합의해 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시민사회의 과제가 될 것”이라면서 “비영리의 주된 자금원인 ‘정부보조금’과 ‘후원금’에서 인건비 지출을 할 수 있게 연대회의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