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9일(화)

“친부모 품에서 자랄 수 없는 아이들, ‘사랑’으로 키웁니다”

“친부모 품에서 자랄 수 없는 아이들, ‘사랑’으로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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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홈으로 네 자매 키우는 백명옥씨

“저 집 애들 부모가 얼마나 유난인지 몰라요.” 동네 사람들이 말했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선 서울의 작은 골목에 있는 ‘딸부잣집’ 얘기다. 그곳에 여덟 살, 여섯 살, 세 살 쌍둥이 네 자매가 산다. 빠듯한 수입에 엄마는 10년 동안 옷 한 벌 제대로 산 적이 없다. 신발은 낡아 여기저기 해지고 터졌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겐 부족함이 없이 모든 걸 해준다. 영어, 바이올린, 발레 등 사교육도 시키고 간식 하나까지 좋은 재료로 만들어 먹일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평범하고 화목한 보통 가정의 모습이지만 아이들의 부모는 호적상 부모가 아니다. 흔히 그룹홈으로 불리는 ‘공동생활가정’이다. 친부모가 키울 수 없게 된 아이들을 집과 같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곳이다.

이른바 ‘정인이 사건’으로 불리는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사건으로 전국이 들썩거린 지난 8일 그룹홈 엄마 백명옥(64)씨를 만났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을 쓸었다. 자신을 친엄마로 알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봐 한 번도 언론에 나선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냈다. “우리 아이들은 여기가 그룹홈인 걸 몰라요. 어릴 땐 티없이 자랐으면 해서요. 나중에 알게 돼도 ‘난 참 많이 사랑받았다’ 하고 이겨낼 거라 믿어요.” 백씨의 요청에 따라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엄마의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백명옥씨가 운영하는 그룹홈 현관에 가족의 신발이 놓여 있다. 알록달록하고 깨끗한 아이들의 신발 사이에 해진 엄마의 신발이 눈에 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온몸 까맸던 막내, 웅크리고 있던 셋째

딸부잣집에서는 현관문 밖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돌도 되기 전에 그룹홈에 왔다. 그룹홈은 법률상 아동복지시설로 분류되지만, 엄마는 이곳을 시설이 아니라 ‘집’이라고 불렀다.

“197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일했는데 그러면서 아이들에겐 ‘가정’이 필요하단 걸 알게 됐어요.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시설에선 아이들 마음에 생채기가 나더라고요. 가정은 아이가 주인공인 곳인데, 시설에선 어릴 때부터 수십 명 중 한 명으로 자라니까요.”

그러다 2010년 그룹홈을 설립했고 2011년 첫 아이를 받았다. 처음 3년간 학대·방임 가정 아이 13명을 키웠다. 일부는 원가정으로, 일부는 2014년 남녀 아동 분리가 법적 원칙으로 정해지면서 다른 그룹홈에 갔다. 이후 평생 품을 아이들을 키우기로 결심하고 원가정이 없는 ‘베이비박스 출신’ 아이들을 받았다. 평생 모은 돈을 털고 빚까지 내서 아이들과 쭉 살 집도 구했다.

10년간 아이를 키우느라 목이 다 쉰 엄마는 “하루도 잠을 푹 잔 적이 없고 여행은 사회복지사 연수로 제주도 3일 간 게 전부”라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말을 들으면 힘든 게 싹 잊힌다”며 웃었다.

“지금은 상상이 안 가지만 처음엔 얘들도 상처받은 티가 났어요. 막내는 몸무게 2.8㎏에, 온몸이 새카맸어요. 의사 말로는 친모가 임신 사실을 숨기려고 복대를 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고 했어요. 셋째는 돌도 안 된 애가 팔을 접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몇 달을 그러고 있었어요. 어린 게 여러 시설을 돌다가 긴장한 거죠. 그런 애들이 이렇게 달라졌어요. 막내는 네 딸 중에 피부가 가장 하얗고, 셋째는 저렇게 팔을 휘두르며 뛰어다니는 개구쟁이가 됐잖아요(웃음).”

아이들이 사회복지사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재정 빠듯… 노후 자금 헐어 양육

엄마는 최근 벌어진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남 일 같지 않다. “우리 딸이 정인이였을 수도, 정인이가 우리 딸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룹홈 정원은 7명이다. 제도상으론 3명의 아이를 더 키울 수 있다. 엄마는 수년 전부터 서울시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막내 삼을 아이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아이를 더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행 제도상 원가정 복귀가 최우선, 그다음은 입양이에요. 호적상 가족이라야 정상적인 양육 환경이고, 그룹홈은 잠시 스쳐가는 시설이라고 보는 거예요. 원가정에 돌아간다고 아이가 무조건 행복한 게 아닌데도요.”

2019년 기준 아동학대 가해자의 72.3%가 친부모다. 백씨의 집에 있다가 원가정으로 돌아간 아이들에게서 “엄마 집에서 다시 살고 싶다”는 전화가 오기도 하고, 아이를 데려간 친부모들에게서도 “아이를 다시 돌려보내고 싶다”는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잘 못 지낼 게 눈에 선해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원가정 복귀라는 제도가 없었으면 그 애들을 계속 제 자식처럼 키웠을 거예요. 양육 환경이 아니라 가족 형태로 정상, 비정상을 구분하니 결국 아이들만 상처받게 되는 거예요.”

그룹홈은 1년에 한 번씩 아동학대 전수조사를 받는다.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지자체, 사회복지기관들과 연계돼 있어서 재정 상황이나 교육 프로그램, 아이들의 발달 상태 등을 상세히 보고하고 공유해야 한다. 지원금이나 후원금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 엄마는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돈은 십 원 한 푼까지 모두 아이들 위해서만 쓴다”고 했다.

재정은 늘 빠듯하다. 그룹홈 운영에 쓸 수 있는 돈은 매달 300만원가량. 아이 한 명당 나오는 생계 급여 50여만 원에 하루 1500원의 간식비, 시설 운영비로 나오는 30만원을 포함한 돈이다. 사회복지사 2명의 인건비는 정부가 지원해준다. 백씨는 “아이들 정서 발달에 혼란을 줄 까봐 후원도 가려 받는다”고 했다.

“아이들을 불쌍해하면서 아무때나 방문하거나, 과도한 선물을 주면 아이들의 안정적인 인성 발달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양육엔 사비까지 들어간다. 부부 생활비와 모자라는 양육비는 남편이 벌어오는 약간의 수입으로 충당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가 영어를 아주 좋아하는데, 한 달 학원비만 30만원이에요. 생계급여의 절반이 넘어요. 감사하게도 소수지만 양육 철학을 이해하는 후원자 분들이 계세요. 덕분에 아이 학원도 보내고, 과일도 사 먹입니다(웃음).”

요즘 엄마는 부쩍 건강을 챙긴다. “나이가 많은데, 어린 아이들이 아프거나 하면 둘러업고 뛰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우리 애들 보란 듯이 잘 키울 거예요. ‘보통 가정’이 아니어도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저렇게 잘 클 수 있구나 하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겠어요.”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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