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월)

체계적인 시스템이 ‘리더 봉사자’ 만든다

선진국 사례

1987년, 미국 직장인 몇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평일 점심 또는 저녁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봉사를 하려다가 몇 차례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민간단체 ‘핸즈온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그리고 바쁜 도시인들이 하루에 단 1시간이라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봉사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은 점심 시간을 활용해 뮤지컬 극단의 분장을 돕는다. 3세 아이들은 학대받은 길거리 고양이를 30분 동안 쓰다듬어준다. 고등학생은 하굣길에 3세 아동들이 돌본 고양이를 독거노인에게 선물한다. 모두 쉽고, 재미있고, 보람도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시민의 엄청난 참여를 이끌어냈고, 핸즈온 네트워크는 미국 전역의 250개 자원봉사센터로 확대됐다.

짧은 시간, 일회적인 봉사가 이뤄지려면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핸즈온 네트워크는 봉사자와 수혜자를 연결하는 ‘리더 봉사자’를 세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 반도체회사 퀄컴의 한 사회공헌 담당자는 매주 수요일 2시간 동안 ‘푸드뱅크(Food Bank·개인이나 기업이 기부한 식품을 복지 소외계층에 전달하는 일종의 음식물 중개소)’의 ‘프로젝트 리더’가 된다. 그는 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한다. 봉사자들이 만든 식료품 바구니를 받기 위해 다음 날 새벽부터 줄 서는 소외된 이웃이 많다는 것. 20명이 2시간 동안 만든 바구니가 600명의 일주일 식량이 된다는 것을 전한다. 그 후엔 봉사자들에게 세부 역할을 정해준다. 바구니 옮기기, 견과류 포장하기, 바구니에 오렌지·빵·통조림 담기 등 역할도 다양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식료품 바구니는 금요일 봉사자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직접 배달한다. 세밀하게 짜인 봉사자의 활동이 하나로 연결돼 수혜자에게 전달되는 것. 처음엔 2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재미와 보람을 발견한 봉사자들은 1년, 5년, 10년 넘게 꾸준히 참여한다. 그리고 ‘리더 봉사자’가 되어 새로운 봉사자들을 교육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미국에는 이렇게 수많은 자원봉사 리더들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봉사자와 수혜자를 매칭하는 중간 기관들이 다양한 교육, 컨설팅, 네트워크 모임을 제공해 각 복지단체가 자원봉사 리더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봉사자도 수혜자도 모두 만족하는 시간. 이는 둘 사이를 연결하는 튼튼한 징검다리가 있어야 가능하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