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 양성 계획 좋지만… 기대보다는 불안함 앞서는 현실

ODA와 청년 일자리 문제
“최소 1만명 인재 키운다” 새 정부 인수위 계획에
“고용문제 연계는 위험… 비정규직 양산할 수도” NPO 단체들 의견 내놔
실업률 집착한 정책보다 전문성 활용할 무대 필요
현지 교육 프로그램 개발 기회 주고 경쟁력 키워야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인재 10만명 양성’ 정책을 발표했다. 2013년까지 약 5000억원을 투입해 해외 취업자 5만명, 해외 인턴 3만명, 해외 봉사 2만명 등 1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목표 인원은 6만484명으로 당초 목표보다 38.2% 줄었다. 지원비를 받고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중도 탈락하는 비율도 22.9%에 달했고, 해외 건설현장 근무 인원은 555명에 불과했다. 단기 성과 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야심 차게 내세운 공약이 흐지부지된 것. 지난달, “수혜국에 청년들을 프로젝트 매니저로 파견해 5년간 최소 1만명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새 정부 인수위 계획이 알려졌다. ‘매력 한국’과 ‘일자리 외교’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 공인 전문가 양성 제도’를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더나은미래’가 만난 국제개발협력 NPO 23곳 단체들은 “또 다른 청년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있다”며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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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와 청년 일자리 연계…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ODA와 일자리 창출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본다는 건, 정부가 국제개발 흐름을 잘못 알고 있다는 증거다. ODA는 개발도상국의 니즈(Needs)를 찾아, 현지인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ODA를 고용 창출과 결부시키는 건 현지에 한국인을 고용하고, 한국이 개발을 주도하겠다는 것이 된다. 고용은 한국의 문제고, ODA는 해외 현장의 문제다”(G단체 관계자).

지난 2011년 부산에서 개최된 세계개발원조총회(HLF4)를 기점으로 국제원조는 ‘원조효과성’에서 ‘개발효과성’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뤘다. 그동안 ODA가 도움을 주는 나라 중심의 ‘단순 원조’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현지 중심으로 서로 협력해 ‘지속가능한 개발’을 이루자는 것이다. 한국 중심의 ‘일자리 외교’는 그런 의미에서 현장과 파트너 국가를 고려한 철학이 반영되기 어렵다. H단체 간부는 “정부에서 청년 실업을 생각했다면, ODA 예산이 아니라 고용노동부 예산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개발도상국의 빈곤 해결을 위한 ODA 예산을 한국 청년 인건비로 다시 환수하는 건, 국제사회로부터 질타받을 수 있는 부끄러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숫자’에 집착하는 정책, 이젠 그만

매년 2만명의 봉사자와 청년 인턴이 해외로 파견되고 있다. 그중 20대가 83%, 30대까지 포함하면 90%가 넘는다(2011년 KOICA 통계자료). 반면, KOICA에 등록된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수는 약 2662명(2010년 기준)에 불과하다. 국제개발을 꿈꾸고 해외로 나가는 청년들은 늘고 있는데, 막상 돌아오면 실업자가 된다. 국제개발 전문가들은 “단기 성과, 숫자에만 집착한 정책이 낳은 그림자”라고 입을 모은다. 새 정부 인수위가 내놓은 ‘1만명 글로벌 인재 양성’ 정책에 대한 우려도 내놓았다. K단체 관계자는 “1만명이라는 수치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면서 “글로벌 인재 양성 계획을 세우기 전에, 국내 NPO나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프로젝트 매니저수가 몇 명인지 사전 조사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M기관 실무자는 “사실 코이카와 KCOC(국제개발협력민간단체협의회)가 파견하는 이들만 매년 1000명을 훌쩍 넘는다”면서 “이들 수치를 더한다면, ‘1만명 인재 양성’은 그리 대단한 계획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률 의식한 제도, 갈 곳 잃은 청년들

코이카는 지난 2011년부터 ‘ODA 청년 인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청년 인재를 국제개발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한 정부 지원 사업이다. ‘ODA 인턴’은 개발원조사업에 참여하는 기업, NPO, 연구소에 채용돼 1년간 실무 경험을 쌓는다. 그러나 심층인터뷰에 응한 개발협력 담당자들은 “ODA 인턴 제도는 실업률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국제개발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왜 일까. T단체 관계자는 “졸업 후 고용 보험에 6개월 이상 가입된 청년은 ODA 인턴으로 채용할 수 없고, 1년 후 ODA 인턴과 재계약도 안된다”면서 “매년 청년 일자리를 늘렸다는 증거용 ‘머릿수 채우기’ 아니냐”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각 기관에 파견된 ODA 인턴은 총 431명. ODA 인턴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채용된 청년은 손에 꼽는다. H기관 실무자는 “ODA 인턴의 정규직 전환 시, 해당 기관에 어떠한 지원도 없다”면서 “재정난, 인력난이 심한 NPO로서는 뛰어난 인재를 놓친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인수위가 구상 중인 ‘국제공인 지역전문가 양성 과정’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H단체 담당자는 “해당 과정을 이수하지 않으면 전문가가 아니란 건데, 오히려 청년들에게 불필요한 교육 과정을 강요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국제 아동보호 단체 실무자는 “자격증, 시험과 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국제개발 전문가를 키울 수 없다”면서 “오히려 현장에 나가 3년 이상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다 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5년 후 바라보는 장기적, 총체적인 제도 필요

개발협력 NPO 담당자들은 “적어도 5년 이후를 대비하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A단체 담당자는 “현지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려면 개발이론 교육, 현장 경험, 선배 지역 전문가로부터의 노하우 전수 등 총체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1년짜리 과정으로는 개발협력의 전반을 배울 수 없다”고 말했다. 개발협력 NPO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본질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H기관 관계자는 “국제개발을 꿈꾸는 청년들의 최종 목표는 개발협력 NPO의 사업 현장”이라면서 “시민사회가 살아나면 저절로 청년 일자리도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T단체 담당자는 “코이카가 지난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산학협력사업으로만 별도로 180억원 예산을 편성했는데, 민간단체 지원은 매년 100억~150억원에 그친다”면서 “ODA 예산으로 단기 고용을 할 것이 아니라, NPO와 협력해 현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도 “다문화 2세가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궁극적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의료, 환경, 농업 등 분야별 세부 전문가를 키워야 장기적으로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된다”, “현장을 경험한 청년 인재들의 사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NPO들이 상시 확인하고 고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유진 기자

최태욱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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