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8일(월)
“광장으로 나온 ‘매드 프라이드’, 정신장애인 차별 없애는 마중물 될 것”
25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난 정신장애인 김미현(왼쪽)씨와 정신과 전문의인 장창현 느티나무의원 원장은 정신장애인의 해방을 상징하는 조형물 ‘마르코 까발로’의 마지막 도색 작업에 한창이었다. 파란 목마인 마르코 까발로는1973년 이탈리아 북부 트리에스테주에서 정신장애인, 의사, 간호사 등이 함께 퍼레이드할 때 처음 등장했다. ⓒ장지훈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축제가 오늘(2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로 공원에서 개최된다. 매드 프라이드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행사로 정신장애 당사자와 비당사자가 함께 참여한다. 정신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자리다. 1993년 캐나다에서 처음 열린 것을 시작으로 현재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20여개 국가에서 열리고 있다. 축제는 정신장애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네트워크 행사, 정신장애인 예술가 작품 전시·판매, 연극·공연 등으로 채워진다. 화려하게 치장한 참가자들이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상징하는 병원 침대를 밀면서 행진하는 ‘배드 푸쉬(Bed Push)’가 백미다.

축제 전날인 25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매드 프라이드 조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정신장애인 김미현(43)씨와 장창현(37·정신과 전문의) 느티나무의원 원장을 만났다. 이들은 정신장애인 예술창작단 안티카의 심명진 대표, 공인인권법재단 공감의 조미연 변호사, 정신장애인 박목우씨 등 10여명과 지난 6월부터 축제를 기획했다.

광장으로 나온 정신장애인… “설렘과 두려움 공존”

매드 프라이드는 안티카가 주최·주관하는 축제다. 김씨도 지난해 여름부터 안티카 소속으로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1999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 과거 수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만큼 삶을 비관했으나, 현재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해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한다. 정신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팟캐스트 ‘텐 데시벨(10 decibel)’의 제작자이자, 시집을 두 권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텐 데시벨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라고 한다. ‘정신장애인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는 의미를 담았다.

“설렘과 두려움.” 김씨는 매드 프라이드를 앞둔 심경을 두 단어로 요약했다. “정신장애인들이 처음으로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내고, 평범한 시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라 기대된다”면서도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지 않을지, 날선 말로 상처주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매드 프라이드에서 ‘거리로 나온 하얀방’이라는 연극에 배우로 참여한다. 강제입원과 강제치료, 차별적 시선과 편견 등으로 고통받는 정신장애인들의 이야기다.

“스물 세살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세상이 끝난 줄 알았어요.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죠.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네가 마음이 약해서 몹쓸 병에 걸린 거야’라고 말했어요. 세상이 무서웠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왜 그랬나 싶어요. 정신장애인이 죄인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먼저 ‘커밍아웃’해요. 매일 약을 먹어야 하지만, 나 역시 시를 사랑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대화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라고요.”

정신장애 예술창작단 ‘안티카’ 단원들이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2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로공원에서 열리는 ‘매드 프라이드’에서 이들은 연극 ‘거리로 나온 하얀방’을 무대에 올린다. ⓒ안티카

“정신장애인에게 광장을 허하라”

매드 프라이드 준비위원회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광장’과 ‘행진’을 고집했다. 정신장애인 단체 내부에서도 “거기로 나서는 것이 오히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 정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정신장애인이 스스로 떳떳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장 원장은 “정신 의료 분야의 국제적인 추세는 ‘탈원화’이고, 우리나라도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제정을 계기로 이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넓은 광장에서 이들의 이야기부터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6년 시행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조현병·공황장애 등 17개 주요 정신질환의 평생유병율은 25.4%에 달했다. 우리 국민 4명 가운데 1명은 죽기 전까지 정신질환을 겪는다는 이야기다. 조현병의 경우에도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1%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장 원장은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들을 정신병원·요양원 같은 수용시설로 밀어 넣고 애써 외면했지만, 마음의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며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 만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모두 박탈되는 사회는 모든 시민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미현(왼쪽)씨와 장창현 원장이 매드 프라이드 축제에 사용할 소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눈동자는 정신장애인들이 느끼는 차별적 시선을, 꽃봉오리의 암술과 수술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뜻한다. ⓒ장지훈 기자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매드 프라이드 주최 측은 이번 축제가 정신장애 당사자와 비당사자가 연대하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조현병 등 일부 정신장애가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 ‘사회적 낙인’을 지우는 것도 목표다. 대검찰청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1.4%인데 반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0.1%에 불과했다. 전체 범죄자 가운데 조현병 환자는 0.04% 수준이다.

김씨는 “극히 일부의 경우가 마치 전체의 이야기처럼 왜곡돼 퍼져 나간다”며 “다르 사람들이 나를 보고도 ‘무섭다’고 생각할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같은 마음을 담아 지난 6월 ‘그림자 속 낮길’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했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그림자 속에서 살아갈 것을 강요당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뜻이다.

장 원장은 “매드 프라이드가 정신장애인만의 하루짜리 축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연대와 포용의 가치를 전달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줄 것을 당부했다. 그가 내민 매드 프라이드 축제 안내 브로슈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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