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4일(일)
‘학교숲운동’ 20년… 나무도, 아이도 훌쩍 자랐습니다

화랑초 학교숲을 가보니

지난 18일 서울 노원구의 화랑초등학교 학교숲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화랑초는 산림청, 생명의숲, 유한킴벌리가 1999년 시작한 ‘학교숲운동’에 첫해부터 참여해 20년 동안 꾸준히 숲을 가꿔왔다. ⓒ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초등학교. 2교시를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우르르 뛰쳐나온다. 화랑초에만 있는 특별한 ‘중간 놀이’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교 건물 주변을 에워싼 숲속으로 흩어진다. 나비를 쫓아 숲길을 누비고,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장난감 삼아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책을 읽고, 나무 그늘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 시간을 갖는다. 도심 속 학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 ‘화랑초 학교숲’에서 날마다 펼쳐지고 있다.

 

20년 맞은 ‘학교숲운동’… 묘목이 거목으로

화랑초 학교숲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학교숲운동’의 대표 성공 사례다. 학교숲운동은 이름 그대로 학교 안의 여유 공간이나 운동장 일부, 건물과 건물 사이 등 자투리땅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산림청, 사단법인 생명의숲, 유한킴벌리 주도로 1999년 시작됐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였다. 김재형 생명의숲 더불어숲팀장은 “자연과 접촉이 없는 아이들은 생태학적 지식은 물론 자연과 교감하는 감수성이 부족한 ‘생태맹’이 되기 쉽다”면서 “학교에 숲이 있으면 아이들이 등·하굣길이나 쉬는 시간에 일상적으로 자연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환경 친화적 태도를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입구 쪽 운동장 일부를 활용해 조성한 생태공원에서 출발한 화랑초 학교숲은 20년 동안 천천히 몸집을 불려 현재 3000㎡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숲’으로 성장했다. 전체 학교 부지 1만4000㎡의 20%를 웃도는 규모다. 학교숲의 가치를 체감하고서 학교 측이 꾸준히 숲을 가꿔온 결과다. 1999년 평교사로 학교숲 조성에 나섰던 우명원(59) 화랑초 교장은 “초창기에는 ‘학교에 웬 숲이냐’ ‘그럴 땅이 있으면 건물을 더 짓고 운동장을 넓히자’는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면서 “학교의 미래 모습을 생각해서라도 시간이 갈수록 낡아지는 건물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숲을 조성해야 한다고 동료들을 열심히 설득했다”고 말했다.

학교숲 조성 첫해에 심었던 나무들은 어른 키 높이의 묘목에서 고개를 한껏 젖혀야 끝이 보이는 거목이 됐다. 숲을 이루는 수종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주변에서 날아온 풀씨들이 학교숲에 뿌리 내린 덕분이다. 숲이 우거지니 곤충과 새들도 둥지를 틀었다. 우명원 교장은 “도심에서 듣기 어려운 풀벌레 소리, 각종 새소리가 학교숲에서는 항상 울려 퍼진다”며 “여기에 아이들 웃음소리까지 더해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고 말했다.

 

 

숲이 곧 교실… 자연스럽게 생태 감수성 키우는 아이들

화랑초는 지난해 학교숲에서 아이들이 더 많이 뛰어놀 수 있도록 20분의 중간 놀이 시간을 도입했다. 숲에서 뛰어노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곧 생태 수업 시간이기 때문이다. 동식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생태 감수성을 키우고 생명의 소중함을 배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풀이 난 곳보다는 흙 위로 걷고, 꽃이나 나뭇가지도 함부로 꺾지 않는다. 홍성미(45) 1학년 4반 담임교사는 “수업 중 교실에 벌레가 들어오면 아이들이 먼저 ‘죽이면 안 돼요! 숲으로 돌려보내야 해요’라고 한다”면서 “학교숲에서 각종 벌레를 만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벌레를 학교 안에서 함께 사는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규 교과목 수업도 학교숲을 교실 삼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13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교육과정에서 바른생활, 슬기로운생활, 즐거운생활이 봄·여름·가을·겨울 등 계절을 주제로 한 4개 통합 과목으로 편성되면서 학교숲의 학습 가치가 더욱 커졌다. 우명원 교장은 “사계절의 동식물에 관한 수업을 할 때 학교숲에 나와서 직접 아이들이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지면서 오감으로 사계절의 생태를 배우니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활용한 수업보다 학습 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협동’ ‘가족’처럼 추상적인 개념도 아이들은 학교숲 안에서 체득한다. 벌이 꽃의 꿀을 빨면서 자연스럽게 꽃가루를 나르는 모습을 보며 협동의 의미를 깨치고, 무리지어 다니는 곤충이나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풀들을 가족으로 묶어보는 식이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숲을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관찰하니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도 높아지고 선생님과의 접촉도 늘어난다. 홍성미 교사는 “아이들이 뭔가 발견하면 ‘선생님, 이건 뭐예요?’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하며 저를 계속 찾는다”면서 “아이들과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참여 학교 10곳에서 770곳으로 늘어… 학교숲에 대한 환경 연구도 진행 중

화랑초 등 서울·경기 지역 학교 10곳에서 시작된 학교숲운동은 현재 전국 17개 시·도 학교 770곳이 참여하는 대규모 운동으로 확장됐다.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이 주도하는 녹색학교사업,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청주시의 학교공원화사업 등 비슷한 프로젝트도 여럿 생겼다. 경상남도·광주광역시·전라북도·충청북도교육청은 학교숲 조성과 관리에 관한 별도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지난 20년간 학교숲 ‘조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학교숲을 만들어 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두거나, 건물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없애버리는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인호 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는 “개별 학교에 학교숲 관리를 맡기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지자체·교육청·학교와 협력하는 학교숲 조성·관리 전담 중간 지원 조직을 도입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숲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연구도 축적돼야 한다. 손승우 유한킴벌리 커뮤니케이션&CSR 본부장은 “전문가들과 함께 ▲학교숲이 학교 구성원과 지역 주민에게 주는 만족감 ▲교육적 효과 ▲폭염·미세 먼지 대응 효과 등 학교숲의 사회·환경적 임팩트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보다 나은 학교숲 모델을 전파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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