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이재혁 교수의 CSR 전략-⑩] 기업경영의 절차적 공정성

한국이 세계 최강인 스포츠 종목은 무엇일까? 의심할 여지 없이 양궁이다. 1984 LA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한국은 세계선수권을 포함한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의 대부분을 쓸어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양궁이 이토록 경쟁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justice)’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선수 선발을 포함해 행정상의 절차에 공정성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절차적 공정성을 통해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목표 달성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기업에서도 절차적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채용과정에서의 불합리한 차별을 막기 위해 입사지원서에 출신 학교나 지역, 가족관계 등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블라인드(blind)’ 채용이 그 예다. 그렇게 입사를 해도 일명 ‘360도 평가라 불리는 다면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상급자뿐 아니라 동료, 부하직원, 내외부 고객의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반 회사원이 임원이 되는데 평균 24년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적 공정성이 재벌총수의 자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100대 그룹 총수 일가 자녀는 평균 5년 만에 임원이 되는초고속 승진을 기록하고 있다. 그룹 내 근무 경력이 전혀 없이 바로 임원이 되는신입사원 임원도 있다.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런 예외적인 상황이 점차 관행으로 굳어지는 상황이 문제다. 취준생들에게 쓸데없는 스펙을 쌓지 말고 제대로 실력을 키우라고 조언하는 기성세대의 말이 허망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청소년들의 꿈은 재벌 2세가 되는 것인데 부모가 재벌이 아니어서 불행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재벌그룹에서 자행되고 있는 자녀들의 초고속 승진 및 경영권 승계는 한국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더 이상 그들만의 이슈가 아니다. 역량검증도 없이 자리에 오른 그들에게 중요한 의사결정 권한이 주어졌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그 부정적 영향은 회사의 종업원, 계열사, 협력업체, 주주,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주요그룹 오너 2~3세의 갑질은 이제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오너일가 자녀들에게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는 내부거래는 여전히 성행한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 2018년 국가경쟁력 평가결과에 따르면, 평가대상이 된 총 63개 국가 중 한국은경영자에 대한 신뢰도’, ‘감사 및 회계 업무 수행’, ‘이사회의 경영 감시에서 모두 62위를 차지했다.

기업 경영활동의 절차적 공정성은 ESG (Environment·social·governance), 즉 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 기업이 수립하고 실행하는 의사결정의 정당성 여부로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주주권리보호, 이사회 구성 및 운영, 기업관련 사항의 공시 여부와 밀접히 연관돼 있는 지배구조 측면의 공정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 2018년 기업 지배구조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 주요 12개국 중 9위에 그쳤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중국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3곳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8년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소수재벌그룹의 경제 지배력 확장, 지배주주 및 계열사가 보유하는 지분의 상승 등을 언급하면서 기업지배구조의 전반적 개선을 권고하였다. 이와 함께 새로운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극적인 이행 등을 통해 기관 투자가, 특히 국민연금기금의 모니터링 역할을 강화하라고 권고하였다.

20년 전 우승한 사람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올림픽 대표선수가 될 수 있을까? 워런 버핏(Warren Buffett)부모가 무언가를 성취했기 때문에 그 자식에게 유리한 지위를 주는 것은 사회의 경쟁력을 저해한다고 경고했다. 시시각각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치열한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경영과 관련된 절차적 공정성은 더욱 절실하다.

2001년 9월부터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 미국 Ohio State University 에서 경영학 박사학위 (Ph.D.)를 취득했고, San Jose State University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사회적기업센터 소장, 고려대학교 중남미연구소 위원, KOTRA 글로벌CSR사업 심의위원,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전략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CSR 및 글로벌 관련 이슈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IGI (Inno Global Institute)의 대표를 맡고 있다. 중국 내 다국적 기업과 중국기업들을 대상으로 CSR Ranking을 조사 분석하여 그 결과를 경제지에 2001년부터 매년 발표했다. 2015년부터는 평가대상 기업을 한국, 일본, 중국 및 주요 아세안국가의 대기업들로 확대하여 그 랭킹을 발표하고 있다.
CSR 및 지속가능성에 관한 저서로는 “The Role of corporate sustainability in Asian development: A case study hand-book”(2017년)”, “Green leadership in China: Management strategies from China's most responsible companies”(2014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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