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옥상텃밭 가꾸며 이웃과 소통… 회색빛 도시가 웃는다

더불어 사는 사회 일구는 ‘도시농업’
집 안에서 텃밭 가꾸는 전 세계 도시농부 8억명
세류1동 주민센터는 옥상 재배 시작하면서 떠난 주민들과도 화합
SK청솔노인복지관은 직접 키운 유기농 야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

미상_그래픽_도시농업_새싹물주기_2012최근 ‘도시농업’이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 텃밭, 옥상농원, 상자 재배, 베란다 텃밭 등 다양한 형태의 ‘씨티팜(City Farm)’이 등장하고 있다. 몬트리올에는 약 8200곳의 텃밭이 있으며, 뉴욕에는 옥상 텃밭을 둔 빌딩이 600개에 달한다.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 ‘도시농부’의 수가 8억명에 육박할 정도로, 다양하고 생산적인 여가활동에 대한 도시인의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도시농업은 사회의 변화와 도시인의 욕구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발전돼왔다. 안전한 먹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소비하던 초기 도시농업의 ‘생산적’ 역할은 점차 사회가 요구하는 경제적·생태적 기능으로 확대됐다. 농업진흥청 도시농업연구팀 정명일 박사는 “옥상텃밭과 벽면녹화를 병행하면 냉난방비를 30%까지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배 면적 100㎡(30평)당 성인 2명이 1년간 호흡할 수 있는 산소를 제공한다”면서 삭막한 도시환경 개선에 기여한 도시농업의 역할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요즘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21세기 도시농업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언급했다. 자기 먹거리만을 재배하던 개인적 활동에서 이웃과 함께 가꾸고 나누는 공동체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세류1동 주민센터는 지난해 4월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방문객이 없어 한가롭던 이곳에 주민들이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 번도 오지않던 주민들이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민센터에 얼굴을 보인다. 한천희 동장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옥상에 50평 규모의 정원을 만들고 개방 운영했습니다. 주민들과 텃밭을 가꾸고 친환경 채소를 함께 재배하면서 더불어 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세류 1동 주민센터에 생긴 옥상정원은 뿔뿔이 흩어졌던 주민들이 다시 모이고 화합하는 계기가 됐다. /세류1동 주민센터 제공
세류 1동 주민센터에 생긴 옥상정원은 뿔뿔이 흩어졌던 주민들이 다시 모이고 화합하는 계기가 됐다. /세류1동 주민센터 제공

세류1동에 가장 필요한 건 ‘소통’이었다. 이곳 인구 수는 총 4000여명, 그 중 이주 외국인이 약 2000명으로 총 주민 수의 절반을 차지한다.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가난한 동네라는 인식 때문에 주민들은 마을에 애착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 2006년, 세류1동이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노후·불량 건축물 밀집지역에 대한 개발사업)로 선정되면서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동네를 떠나버렸다. 변화가 필요했다.

“모든 과정을 주민들과 함께했습니다. 옥상정원을 가꿀 ‘텃밭지기’ 13명을 모집해 주민관리교육을 한 뒤 시작했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수확을 하는 과정에서 참여하는 주민 수가 점차 늘어났습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 다문화가정도 주민센터의 한글수업이 끝나고 채소를 얻으러 옥상에 들렀다가 주민들과 교류가 생겼죠. 저 역시도 주민들의 고충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옥상정원은 점차 마을 주민들의 ‘소통의 장’으로 변화해갔다. 서로 이해하고 함께하는 자리가 마련되니 세류1동을 떠나려 한 주민들도, 이미 떠나갔던 이들도 마을에 애정을 갖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상추, 가지, 방울토마토, 고추, 고구마 등 텃밭의 수확물은 도시락에 담아 독거 노인 등 어려운 이웃 92가구에 나눴다. 도움을 받은 이들은 주민센터를 찾아와 텃밭 가꾸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세류1동 주민센터가 옥상텃밭을 통해 ‘주민화합’에 성공했다면, 수원시에 위치한 SK청솔노인복지관은 ‘나눔’과 ‘주민의 자기실현’에 한 발짝 다가섰다.

지난해 9월, 35평 규모의 옥상정원을 마련한 복지관은 자원봉사자 10명을 모집해 텃밭 가꾸기를 시작했다. 정자동은 수원시 장안구에서 독거 노인 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이에 복지관은 건강한 노인에게는 자원봉사를 통한 자기실현의 장을 마련하고, 저소득 독거노인에게는 싱싱한 유기농 야채를 지원하는 ‘나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0명의 봉사자들은 내리쬐는 햇볕, 쏟아지는 빗속에서 매일 2시간씩 옥상 텃밭을 가꿨다. 문제윤(75)씨는 “내가 직접 재배한 작물이 이웃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니 힘들지 않았다”면서 나누는 기쁨을 전했다. 이들이 직접 키운 채소는 도시락에 담겨 매일 90명의 독거 노인에게 배달됐다. 야채를 전달받은 정하루자(77)씨는 “나랑 나이도 비슷한 분들이 직접 가꾼 채소라니, 믿어지질 않았다. 나도 얼른 건강해져서 텃밭에 나가고 싶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청솔노인복지관은 지난해 경험을 토대로 2012년 노인 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선발된 노인 10명은 이제 봉사자가 아닌 어엿한 직업인으로서 ‘행복 나눔 텃밭’을 가꾸고, 독거 노인들에게 친환경 야채를 전달하게 된다.

청솔노인복지관 이공택 관장은 “직접 가꾼 농산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도시농업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라면서 “올 하반기 어린이집과 연계해 어르신들이 작물 재배법을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치는 1~3세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소통’과 ‘나눔’의 장으로 변모한 도심 속 작은 농장들은 이렇게 하나둘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일궈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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