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1000만원짜리 거래에 2억7000만원 손배당한 기업, 왜?

환경규제 장벽 높아지는 수출 시장

올 초 A기업은 홍콩의 바이어에게 2억7000만원을 물어달라는 클레임을 제기당했다. A기업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금액은 1000만원이었고, 그중 순이익은 50만원에 불과한 작은 거래였기 때문이다. 속사정은 이랬다.

홍콩의 바이어는 A기업에서 납품받은 원단을 사용해 의류 완제품을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는 업체였다. 홍콩의 바이어는 A기업에 EU의 환경규제 중 화학물질 관리규정인 ‘REACH’에 걸리지 않는 수준의 원단을 판매한다는 보증서를 요구했다. A기업은 EU의 환경 규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흔히 요구하는 품질 보증서의 수준이라 생각하고 이 보증서에 사인을 했다. 하지만 최종 수입업체인 독일의 업체로부터 옷에서 특정 화학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나와 수입이 불가능하다는 통보가 왔고, 홍콩의 바이어는 이에 대한 책임 일체를 원단을 납품한 한국의 A 기업에 물어 온 것이다. A기업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국내의 전문가들과 이 문제를 상의해서 일부 진전을 보았으나, 최종적으로 순수익의 40배인 2000만원가량을 배상했다. 전체 거래 금액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상_그래픽_환경규제_장벽_2010이 사건을 상담했던 한국섬유기술연구소 이정현 팀장은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출 상대 국가의 환경 규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설혹 규제에 걸려 피해를 보더라도 자사 제품에 유해 물질이 있다는 소문이 날까 봐 쉬쉬하며 추가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업의 인식 변화 속도가 환경 규제 강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A기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선진국들은 환경 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EU는 이미 2003년 6월에 제품과 서비스의 전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영향과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통합 제품 정책(IPP)을 수립했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세부적인 이행 규정들을 마련하고 있다. 코트라(KOTRA) 통상조사팀 최원석 과장은 “EU의 규제는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뿐만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 과정을 포괄적으로 아우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규정들의 범위는 넓고도 구체적입니다. 오염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규정,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탄소 배출에 관한 규정들은 기본이고 에너지 효율 등급을 표시하는 라벨 부착 규정, 타이어 연비 라벨링 등 13개에 이르는 규정이 있습니다.”

규정 자체도 많지만, 13개에 이르는 각각의 규정들이 요구하는 개별 지침의 수준도 매우 구체적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친기업 정책을 펼쳤던 부시 정부가 물러나고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환경 규제책은 화학산업 분야에서 2가지, 전기 전자 분야에서 4가지, 자동차에서 1가지와 산업 전반에 걸친 온실가스 규제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의 경우 작년 5월 기업 평균 연비기준과 배기가스 배출량을 규제하기로 발표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미국에서 제조 및 수입, 판매되는 승용차나 경트럭은 2016년까지 기업 평균 자동차 연비를 35.5mpg(L당 15.08km)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도 이에 발맞춰 연비 개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8년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92.3%다. 무역의존도가 92.3%라는 것은 경상 국민소득 대비 수출입 비중이 92.3%란 뜻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는 대외적인 규제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환경 규제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 도건우 연구원은 “환경 규제를 통한 일련의 조치는 선진국에서 일종의 보호무역조치로 활용할 가능성도 크다”며 체계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이러한 세계 시장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지식경제부 산하 국제환경규제기업지원센터(www.kotrack.or.kr)나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 그린넷(www.greenbiz.go.kr)은 규제 대응을 위한 다양한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못지않게 기업 스스로 환경 책임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코트라 최원석 과장은 “환경 규제는 장기적인 기업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며 “기업의 최고 경영층 차원에서 환경 이슈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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