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이웃 할머니 쓰러져도 발만 동동… 보건 인력 지원 시급해

섬마을의 열악한 의료 환경
마을 주민 대부분 노인… 몸 아파도 제때 치료 못해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계속된 건의에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응급상황 대비 ‘닥터헬기’… 정말 필요할 땐 무용지물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건 헬기 아니라 보건진료소”

궂은 날씨,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가 몰아치면 섬 마을은 이내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바다 위에서 혹여 사고가 나진 않을까, 치료가 시급한 환자가 생기진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하다. 응급의료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이곳, 섬 마을 사람들은 아파서도 다쳐서도 안 된다. 2010년 12월 기준, 전국 도서의 총 개수는 3201개,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482개(면적 3681㎡)에 이른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232개 도서 주민이 작은 규모의 보건진료소도 없이 무방비인 상태로 살고 있다. 지난달 28일, 인천 낙도의 응급환자가 일몰 이후 운행하지 않는 닥터헬기(응급의료 전용헬기)를 기다리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도서 등 의료취약지역을 위해 도입된 제도마저 이들을 보호하기 어려운 상황. 섬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기자는 주민 수가 100명 이상이면서 보건기관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섬 10곳을 선정해 의료 서비스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간호사나 공중보건의 한 명 없는 섬 안에서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 달 전 병원선에서 받은 감기약과 파스 한 장뿐이었다. 편집자 주


섬 마을 사람들은 아파서도, 다쳐서도 안 된다. 응급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된 이장진 할아버지는 섬 지역의 열악한 의료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섬 마을 사람들은 아파서도, 다쳐서도 안 된다. 응급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된 이장진 할아버지는 섬 지역의 열악한 의료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생각보다 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여객선은 두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배에 올라 넘실대는 파도와 마주했다. 목포 앞바다를 30분 정도 달렸을까. 먼발치에서 반달 모양의 섬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지도만 보고 상상했을 때보다 훨씬 먼 거리였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둥그런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달리도’.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에 위치한 이 섬 마을에는 220여명(실거주자)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요 생계수단은 농업이다. 평균 연령이 80세인 이 마을에선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양식이나 조업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물을 끌어올리려면 젊은 인력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집 앞 텃밭에 깨, 고추를 심으며 소규모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섬에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부분이 많아. 아무래도 갑자기 몸이 아플 때가 제일 걱정이지. 나야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세상 떠난 친구들도 많아.”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장준(76) 할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떠올려봐야 소용없다며 고개를 젓다가도 마비돼버린 왼쪽 팔과 다리를 볼 때마다 가슴 한 편이 시큰거린다. 8년 전 오전 6시쯤, 서울에서 내려온 자녀들을 배웅하고 고추밭으로 돌아온 이장준 할아버지는 왼쪽 팔에 갑자기 힘이 빠져버리는 증세를 느꼈다. 손가락을 움직여봐도 감각이 없었다. 곧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그러나 증상은 점점 심해져 갔다. 뇌졸중이었다. 119를 불렀지만 목포 선착장에 응급차를 대기시킬 테니, 배를 타고 섬 밖으로 나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첫 배는 9시에 있었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기 때문에 개인 배를 소유한 이웃도 없었다. 뇌졸중 응급 환자의 적정처치시간은 3시간이다. 마비가 시작된 지 5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한 이장준 할아버지는 의무실에 들어가 정신을 잃었다. “너무 늦었다고 하더라. 보건 인력이라도 있었다면 증세를 빨리 파악하고 응급처치라도 해줬을 텐데 그 점이 아쉬웠다.”

달리도와 인접한 율도, 외달도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율도 김상배 이장은 올여름에 발생한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혼자 살던 할머니가 밭에서 일하다 돌아와서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폐결핵이었죠. 편지 갖다 주러 간 이웃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평소 응급헬기나 응급선을 불러도 대부분 올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런 경우 낚싯배를 불러서 환자를 후송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통 5만원에서 야간에는 10만원까지, 부르는 게 값이다. 소규모 농업 또는 양식을 하는 섬 마을 주민들의 수입은 한 달 평균 50만원, 낚싯배 이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에 위치한 달리도. 응급의료의 사각지대인 이곳 220여 명의 주민들은 보건진료소도 없이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에 위치한 달리도. 응급의료의 사각지대인 이곳 220여 명의 주민들은 보건진료소도 없이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목포시 인근 섬 주민들은 끊임없이 보건진료소의 필요성을 건의해왔다. 평소 꾸준한 진찰을 통해 주민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응급 시 진단을 내려줄 수 있는 보건인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달리도 나봉옥 이장은 “예산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면서 “목포시에 편입되다 보니 군에 속한 섬보다 오히려 지원을 못 받는다”고 전했다. 현재 일반 시 지역의 보건기관 시설 및 장비개선을 위한 국고 지원은 전무한 상태다. 2005년, ‘중소도시 보건소 신축사업’이 정부에서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사업을 판단하고 운영하게 됐기 때문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국고 지원과 달리, 이 경우 각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와 의지에 따라 보건 의료 서비스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중소도시보건소 신축사업이 지방으로 이양된 후 애로사항이 많이 생겼다. 복지부 내부에서도 다시 국고지원 사업으로 가져와 보건기관을 전반적으로 관리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 수가 적기 때문에 보건진료소를 설치해줄 수 없다는 시·군도 많았다. 전남 완도군 노화읍 방서리에 위치한 서넙도 이준철 이장은 “몇 번을 건의해도 주민수 150명이 너무 적다고 하더라. 관광객이나 낚시객 등 유동인구를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 외부인이 섬에 왔다가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법규가 걸림돌이었다. 지역보건법에 따르면 보건소는 시·군·구별로, 보건지소는 읍·면마다 1개씩 설치된다. 보건진료소는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시행규칙(농특법)에 따라 도서 지역의 경우 300인 이상 주민이 살고 있는 곳에만 설치(도서 외 의료취약지역은 인구 500인 이상)가 가능하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2월 31일 기준 300명 이상 주민을 보유한 섬은 전체 유인도서의 17.6%(85곳)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건강정책과_그래픽_의료복지_사각지대_2011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12월 8일, 농특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사실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섬 지역 주민 수가 300명이 안 되더라도 보건진료소 설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군수나 시장구청장이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후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12월 27일까지로 예정된 입법예고 기간 동안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법제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개정안이 공포된다 해도 각 지자체에서 보건의료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 역시 개선되기 어렵다.

기자가 취재한 총 10곳의 섬 마을 주민들은 “응급헬기도 좋지만 그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건 보건진료소”라며 입을 모았다. 고파도의 한 주민은 “충남은 아직 응급헬기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일몰 이후에 운행하지 않는다면 그 실효성이 의문이다. 차라리 닥터헬기 운영비로 보건진료소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닥터헬기 한 대당 운영비는 연 30억원(국비 70%, 지자체 30%)으로 운항, 정비, 관제 일체는 대한항공이 수행하고 있다. 반면, 필수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갖춘 보건진료소를 설치하는 비용은 약 2억8000만원으로, 여기에 보건진료원의 급여가 지방공무원법 기준에 따라 별도로 지급된다. 보건진료소는 보건소나 보건지소와 달리 독립회계이기 때문에 각 진료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비를 부담한다. 공공보건의료 정책 전문가인 서울대 이종구 대외정책실장은 “공공보건의료, 특히 보건시설의 경우 정부 보조금의 한도가 정해져 있고, 대폭 인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2005년 담배부담금을 공공의료로 쓸 수 있도록 법이 제정된 만큼, 부담금 내 공공의료 지원한도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근본적인 대책은 안 되더라도, 향후 10년 정도는 공공보건의료의 중요한 재원이 될 것이다”고 조언했다.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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