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주 만에 아이 낳은 필리핀 이주민 안나씨
미숙아 계속 증가하는데 뚜렷한 지원 체계 없어… 정부·민간의 관심 절실
“이렇게 살 수 있는 아기인데, 그때 정말 (아기의 생명을) 포기했다면….”
필리핀에서 온 미등록 이주민 안나(가명)씨는 눈물로 인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2009년 우리나라에 온 안나씨는 지난 7월 임신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28주4일 만에 아기를 낳았다. 경기도 외곽 공단지역에서 남편과 함께 살던 그녀는 처음에는 임신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피임을 하던 중의 예상치 못한 임신이었기 때문이다. 신발공장에서 거의 매일 야근을 해 가며 받는 급여는 월 80만원. 그중 50만~60만원가량을 필리핀의 가족에게 보내고 나머지 돈으로 우리나라에서의 생활을 이어오고 있던 그녀였다. 임신 후에도 전과 다를 바 없이 공장에 다니며 일하기를 1개월여,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한 번의 진료비도 부담인 그녀가 큰 마음을 먹고 찾은 산부인과에서는 쉬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과도하게 힘을 쓰는 육체노동과 유해한 화공약품이 임신 유지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안나씨의 출산을 돕기 위해 여러 민간단체를 찾아다닌 김태근(42) 신부는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하겠다는 걸, 아기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설득해 낳았지만 이제는 병원비 해결이 걱정”이라며, “정부 지정 병원 등을 이용할 경우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치료 시설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그 대상자가 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이런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지원은 사실상 민간의 관심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안나씨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 반가량 걸려 힘들게 찾아간 대형 병원에서 7시간여를 기다린 후에 들은 답은 미숙아를 위한 산소 호흡기 시설이 모두 꽉 차 있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이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미숙아를 출산하고 치료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안나씨는, “말이 통하지 않고 아기의 상태도 알 수 없어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치료를 받아 두어 번의 위기를 넘기고 현재는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상태로, 몸무게가 2㎏이 되면 퇴원할 예정이다. 안나씨는 병원비를 아끼기 위해 출산 다음 날 퇴원해, 병원 휴게실 의자에서 잠을 자가면서 아기 옆을 지켜오고 있다. 때에 맞춰 모유를 제공함으로써 아기의 회복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서다. 정성을 들이는 대로 아기는 점점 건강해지고 있지만, 2000만~2500만원가량으로 예상되는 병원비 문제로 여전히 부부는 근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들에게만 미숙아 출산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송월(32) 강남성심병원 사회복지사는 “지역 내 중국인 집성촌이 있어 다문화 이른둥이 사례가 다수 있다”며 “합법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거주하던 중 뜻하지 않게 임신이 된 상태에서 남편 쪽의 거주 기간이 만료돼 임신한 여성이 홀로 남아 일하던 중 미숙아를 낳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2004년부터 6년째 저소득가정의 미숙아를 지원해 온 아름다운재단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팀에서는 2008년부터 이주노동자 가정의 미숙아 지원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온주(38)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팀장은 “별도로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 홍보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점점 늘어나는 걸 보면 우리 사회의 다문화 가정 증가 추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의 외국인 지원 건수는 2008년 12건, 2009년 17건, 2010년 28건, 2011년 상반기 10여건으로 매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에서는 미숙아 치료 중 사망한 아기의 병원비를 지불하지 못해 시신을 찾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가정에 시신 인도를 위해 입원비를 지원한 경우도 있다.
한국이주민건강협회의 2000년부터 10년간의 이주 아동 지원 통계를 보면 미숙아 치료 건수가 22.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주민건강협회는 “간혹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들의 경우 부모들이 경제, 생활 여건상 자녀들의 치료를 포기하고 본국으로 보내 버리는 사례도 간혹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란(40) 사무국장은 “우리나라가 참여하고 있는 유엔 아동권리 협약에서 생명권에 대해 명기하고 있다”며, “아동의 문제는 비자발적이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보호해 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장지영(36)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른둥이의 경우 퇴원 후 사후 관리가 매우 중요한데, 다문화 이른둥이는 이 부분에 대해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라며, “정말 걱정이 돼 직접 전화를 해도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거나 주거지가 불안정해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토로했다. 장 교수는 “다른 병원에서는 의사가 직접 트위터에 지원 요청을 해 일반인들의 기부로 아이를 살린 경우도 있는데, 이처럼 지금 당장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민간 차원의 관심과 기부 환경 조성 역시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