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체인지온 컨퍼런스’ 현장
올해로 17번째, 비영리 활동가 400여명 참석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 사회적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무게를 짊어진 비영리 단체들은 보람보다 피로를 먼저 마주하곤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비영리 활동의 본질을 되찾고자 다음세대재단과 카카오임팩트는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제17회 체인지온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체인지온 컨퍼런스는 비영리단체들이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는 ‘사랑: 해방의 씨앗’이다. 사랑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사랑의 탄생, 기술과 사랑, 이해와 공감으로 확장되는 사랑의 의미를 탐구했다. 약 400명의 비영리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랑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비영리 활동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로 기획됐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이사는 “비영리 활동의 근간인 ‘사랑’이라는 가치가 언제부터인가 담론에서 사라진 것 같아 이번 주제로 과감히 선택했다”며 “경쟁과 성장이 강조되는 시대 속에서도 본질적 가치를 놓치지 않고, 비영리 단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정립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컨퍼런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사랑의 기원을 자연사(自然史)적 관점에서 살펴봤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은 사랑과 죽음의 탄생 과정을 설명하며, “무성생식에서 유성생식으로 변화하면서 사랑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영리 단체들도 사랑과 공생의 철학을 통해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랑의 확장에 대해 논하며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랑의 의미를 짚었다. 노 교수는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지만, 오히려 관계가 한 계절도 지속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사랑을 ‘소비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쉽게 대체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적 영역을 넘어 사회적 사랑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노 교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랑이 ‘돌봄’이라는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며 “지배와 독점에서 벗어나 모두가 수평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를 돌보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기술이 사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방법을 논의했다. 류석영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이자 카카오임팩트 이사장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AI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카카오임팩트와 카이스트 학생들이 비영리 단체와 협력해 진행한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했다.
류 교수는 “기술이 발전하며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며, “단순히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이 사회정의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일 모두의연구소 대표는 AI 기술을 활용한 사회혁신 사례를 소개하며 기술과 비영리 활동의 접점을 조명했다. 김 대표는 구글의 ‘AI For Social Good’과 모두의연구소가 카카오임팩트와 함께 진행한 ‘테크포임팩트’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AI를 활용해 ▲헬스케어 앱 개발 ▲느린학습자를 위한 교육 콘텐츠 제작 ▲농난청인의 소통을 돕는 기술 등을 구현한 사례를 소개했다.
김 대표는 “비영리 단체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활동에 기술을 접목하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개발자와 기술자들이 비영리 단체와 협력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해방을 위해 사랑하자’를 주제로 세상이 주목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 연사들의 이야기가 채워졌다. 이길보라 영화감독은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주제로 알려진 자신의 삶을 공유했다. 그는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 자녀, 이른바 코다(CODA)로 성장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를 연결하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되돌아봤다.
이 감독은 “코다로서 농인과 청인 사이의 이중문화를 경험하며, 다문화 가정과 영케어러 등 다양한 소수자 정체성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공감과 연결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더 넓은 사회로 해방과 연결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르포작가 은유는 저서 ‘해방의 밤’에서 다뤘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인 경험을 나눴다. 은유 작가는 “개인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며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나누는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해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기용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