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과 정부의 소통은 시대를 거치며 진화해 왔다. 첫 번째 시기는 정부 홍보의 태동과 민주적 전환기를 거친 ‘공보의 시대’다. 1945년 11월 미 군정기 공보과가 신설된 이후 공보는 1997년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두 번째 시기는 적극적으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한 ‘국정 홍보의 시대’다. 언론뿐 아니라 대국민 직접 홍보가 적극적으로 모색된 시기로, 뉴미디어 등 다채널 시대에 맞는 다각화된 홍보가 시도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열심히 국민에게 정책을 알리면 정부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호소형 소통의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 정부의 대국민 소통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직면한 새로운 소통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현 시기는 ‘국민중심 소통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국민중심 소통이란, 국민에게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다. 쟁점이 내재한 정책은 시간을 갖고 국민과 대화하며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위 광고홍보전문가가 제작해 화려한 문구로 치장한 정책 광고를 집행하는 것보다 국민이 만들어 낸 투박하지만, 공감이 가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인 소통이 될 수 있다. 소통의 패러다임이 정부 주도에서 민관 협력,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서, 듣고 동참하도록 하는 소통으로 변화된 것이다.
국민을 수동적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되며 시민의식을 기반으로 실천 의지를 고취하는 협력의 동반자로 받아들여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만 창의적인 국민 공감형 소통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정책은 국민의 일상 속 문제를 다루는 해결책이다. 정부는 큰 의제를 제시하고 소통의 동기를 유발해내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응답하면서 생성되는 생활 문화 콘텐츠들이 공유될 때 정책 홍보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불가피하게 정부가 특정 정책 과제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일방적인 소통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정책까지 일률적인 행동을 요구하며 거창한 구호를 외칠 필요는 없다. 일상을 다루는 연성 정책 홍보만이라도 현시점의 소통 패러다임에 부합되는 시도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한 예로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 중 하나인 ‘일·가정 양립 문화 확산’을 홍보한다고 가정해 보자. 일·가정 양립 의식 확산, 여성과 남성의 조화로운 역할 분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가장 좋은 메신저는 정부가 아닌 직장 동료, 이웃, 다시 말해 국민이다. 매주 수요일 정시 퇴근을 독려하는 호소도 좋지만 각 가정에서 자녀들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의 가족 시간표를 만들어 보도록 하면 어떨까. 정부의 소통은 동기를 유발하고 동참을 기다리며 사례를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많은 가족이 각자 창의적으로 만들어 보는 퇴근 이후 행복 시간표를 국민과 공유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공감 콘텐츠다. 자유학기제라는 정책 브랜드를 알리기보다 본질적인 활동에 집중해 도서(島嶼) 지역 중학교에 제조업 혁신을 이끄는 3D 프린팅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 소통이다. 도서 지역 중학교 학생이 자유학기제를 통해 3D 프린터로 만들어낸 작은 결과물이 때론 가장 창의적인 국민 공감형 소통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행복 캠페인은 변화된 소통 패러다임에 맞춰 단기간의 소모적 계몽 캠페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소통 패러다임이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보편적인 소통 방식과 세상을 보는 눈높이를 의미한다. 시대를 거치며 정부 소통의 패러다임이 진화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런 국민의 눈높이를 배려하자는 것이다. 이 작은 배려 차원의 소통이 국민 행복 캠페인을 통해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