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7일(목)

법이 풀지 못한 숙제… 대화로 어루만지세요

한국비폭력대화센터 대표 캐서린 한
美 이민 중에 알게 된 비폭력대화, 경찰·대학 등 소통 필요한 곳 전파
‘관찰, 느낌, 욕구, 부탁’ 4가지 훈련 부녀지간, 친구처럼 친밀하게 바꿔
“내면의 욕구에 귀기울여야 원하는 변화 만들 수 있어”

2014년 어느 겨울, 20대 여대생 A씨가 화물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편의점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나서던 길이었다. 사고 시각은 새벽 5시. 화물 트럭 운전사 B씨는 검은 옷을 입고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A씨가 골목에서 나오는 모습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매일 12시간 이상의 운전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고였다.

캐서린 한 한국비폭력대화센터 대표는 현재 국제평화단체 CNVC(The 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비폭력대화는 전 세계 65개국에 퍼져있으며 기업 리더십 교육, 부모교육, 재소자 교화 프로그램 등 다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오민아 더나은미래 기자
캐서린 한 한국비폭력대화센터 대표는 현재 국제평화단체 CNVC(The 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비폭력대화는 전 세계 65개국에 퍼져있으며 기업 리더십 교육, 부모교육, 재소자 교화 프로그램 등 다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오민아 더나은미래 기자

“A씨의 아버지는 합의 과정 중 B씨로부터 ‘죽은 딸로 장사한다’는 말까지 들은 상태였습니다. B씨의 휴대전화에는 ‘널 감옥에 보내고 네 딸에게도 똑같이 해주마’라는 A씨 아버지의 문자가 저장돼 있었죠. 사건보다 더 끔찍한 갈등이 6개월째 계속되고 있을 때 제가 개입하게 됐어요.”

법으로도 풀지 못한 양측의 갈등을 대화로 풀어낸 사람이 있다. 지난 10년간 ‘공감과 소통의 힘’으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캐서린 한(71) 한국비폭력대화센터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한 대표는 그동안 유가족에게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던 A씨의 이야기를 꺼냈고, A씨의 아버지는 6개월간 가족 앞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처음으로 보였다. 한 대표의 설득에 이끌려 마지막 본 조정에도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B씨에게는 유가족에게 제대로 그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법을 선보였다. 공감과 비폭력 대화의 힘일까. 본 중재날 A씨의 아버지는 B씨의 처진 어깨를 감싸 안았다. “가장이 힘들다고 술만 먹고 그래서야 되겠소. 정신 다잡으시오.” B씨 역시 눈물을 흘리며 A씨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습니까. 제가 죽어서도 따님을 만나면 사과하겠습니다.” 재판정은 울음바다가 됐고 결국 두 가족은 극적으로 합의를 마쳤다.

◇갈등 푸는 비폭력 대화의 힘

40여년 전 마셜 B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urg)박사가 처음으로 주창한 비폭력 대화는 비판이나 비난 없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화 방법이다.

한 대표는 2000년부터 마셜 박사와 함께 국제 평화 단체인 CNVC(The 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독일·인도·스위스·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비폭력 대화를 알리던 그는 2004년 마셜 박사의 저서 ‘비폭력 대화’를 우리말로 옮기며 한국에 비폭력 대화를 처음으로 소개했다.

지난 7월 JSA에서 진행된 비폭력대화 강의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지난 7월 JSA에서 진행된 비폭력대화 강의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1995년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걸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내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에 비폭력 대화를 소개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고 2003년 귀국해 책 번역을 시작으로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2004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비폭력 대화 시범 강의를 시작한 한 대표는 2006년 정식으로 한국비폭력대화센터를 설립했다. 경찰, 군대, 대학교, 장애인 복지 시설, 북한 이탈 여성 지원기관 등 소통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2013년부터는 부천지원과의 업무 협약을 시작으로 비폭력 대화를 활용한 ‘회복적 정의’ 실천에도 앞장서는 중이다. 회복적 정의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사법 처리나 응징을 넘어 피해의 회복을 우선시하는 정의를 말한다.

“만약 법대로 B씨가 감옥에 가거나 유가족에게 엄청난 합의금을 주는 것에서 사건이 종결됐다면 두 가족의 마음에 난 상처가 지금처럼 치료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 사회는 여태껏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를 따지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고 있는 오늘날 서로의 가슴을 잇는 비폭력 대화가 더욱 필요한 이유죠.”

◇’관찰·느낌·욕구·부탁’의 마법… 사회적 트라우마 감싸는 치료제 되길

누구나 일상에서 ‘비폭력 대화’를 활용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한 대표는 “다르게 듣고, 다르게 말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미리 평가하지 말고 상대와의 대화 속에서 어떤 말이 오고 가는지 ‘관찰’한다. 둘째, 상대의 말을 듣고 자기 안에 일어나는 ‘느낌’을 확인한다. 셋째, 느낌의 원인, 즉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마지막 넷째, 파악한 욕구를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부탁한다.

지난해 9월 대전가정법원에서 열린 비폭력대화스쿨 현장의 모습.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지난해 9월 대전가정법원에서 열린 비폭력대화스쿨 현장의 모습.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제공

“제가 맡은 사례 중에 외동딸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계셨어요. 대학에 간 뒤로는 집에 와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는 딸에게 상처를 받은 거죠.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진 건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꾸준히 비폭력 대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과일 가져왔는데 나와서 먹어’라고 했을 때 딸이 ‘싫어’라고 하면 ‘기분이 안 좋니?(관찰) 네가 차갑게 거절하니까 엄마가 좀 슬퍼.(느낌) 엄마는 딸이랑 다시 친해지고 싶은데(욕구) 같이 과일 먹으면서 엄마한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줄 수 있을까?(부탁)’라고 네 단계에 걸쳐 말하도록 연습한 겁니다. 처음부터 딸의 태도가 바뀌진 않았어요. ‘나 지금 피곤해. 엄마랑 얘기할 시간 없어’라고 했죠. 여기서 공감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많이 피곤하니? 그럼 들어가서 쉬어. 하지만 엄마도 외롭고 섭섭하니까 다음번에 네 마음이 편해지면 그때 엄마랑 같이 이야기해 줄래?’ 비폭력 대화 훈련을 시작하고 석 달 뒤 어머니가 제게 ‘같이 영화보자’는 딸의 문자를 보여주며 눈물을 흘렸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요?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와 같이 유럽 여행을 떠났다고 하네요(웃음).”

그는 “비폭력 대화로 사람과 사람의 내면을 이어줄 수 있듯 그룹이나 공동체도 마찬가지”라면서 “사회적 트라우마를 비폭력 대화의 방식으로 치료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8차례 정도 애도 서클을 운영했어요. 슬픔이 온 나라를 덮었던 시기였습니다. 진실이 감춰지는 사회가 실망스러워서, 아이들의 안전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이 부끄러워서…. 그 슬픔의 이유는 결국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사회, 진실한 사회, 신뢰하는 사회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나 한 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막연히 분노하거나 무기력하게 회피하지 마세요. 나의 느낌을 관찰하고 욕구를 구체적으로 표출하세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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