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임팩트 ‘테크포임팩트’
기술로 사회문제 해결하는 과정
카이스트 학부 수업으로 개설
“인권활동가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전국 성인 평균의 2배, 우울 수준은 6배 높습니다. 번아웃에도 취약하죠. 활동가들의 심리 문제는 소속단체와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저희 팀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면서 마음건강을 돌아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습니다.”
지난 1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전산학부 ‘테크포임팩트 전산학 특강’의 마지막 수업. 수강생 박혜수(24)씨가 팀원 5명과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앱) ‘모디(MODI)’를 소개했다. 모디는 심리 상태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인권활동가들을 위해 만든 ‘감정 다이어리’ 앱이다. 활동가들은 매일 자신의 기분을 기록하면서 마음건강을 점검하고, 힘들 때는 전문가 연계도 받을 수 있다. 서로 정서적 지지망이 되어 주는 커뮤니티 기능도 넣었다.
개발 과정에서는 인권활동가를 대상으로 마음건강 검진, 번아웃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뜻밖의상담소’의 김지연 공동대표와 카카오페이에서 일하는 박세란 개발자의 도움을 받았다. 앱은 이번 달 말 최종 배포할 예정이다. 이날 수업에서는 모디 팀을 포함해 총 9개 팀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테크포임팩트 전산학 특강’은 카카오임팩트가 기획한 ‘테크포임팩트 캠퍼스’의 첫 번째 사업이다. 사회혁신조직과 기술 역량을 가진 조직이 만나 더 큰 임팩트를 창출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카카오임팩트가 지원하는 사회혁신가인 ‘브라이언펠로우’들은 각자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카이스트 전산학부 학생들과 공유했다. 학생들은 카카오 그룹 소속 개발자들의 조언을 받아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 솔루션’을 개발했다. 펠로우로는 김지연 뜻밖의상담소 공동대표 외에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 ▲김미영 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장수진·김미연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당사자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건 당뇨인 혈당 관리를 돕는 ‘데이스카우트(DAYSCOUT)’ 앱이었다. 팀을 대표해 발표자로 나선 최우정씨는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건 삶의 큰 즐거움인데, 당뇨 환자들은 음식이 혈당을 얼마나 상승시키는지 정확한 정보가 없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주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데이스카우트 앱은 음식 이름을 검색하거나 제품 바코드를 스캔하면 영양성분 단위를 하루 권장량 비율(%)로 계산해 보여준다. 이용자는 영양 성분표마다 다르게 표기된 단위를 일일이 환산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당뇨인이 작성한 후기를 통해 이 음식이 혈당을 얼마나 높이는지 경험적인 정보도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는 커다란 글자로 표기된다. 합병증으로 시력저하가 생긴 당뇨인을 고려한 기능이다. 팀원들은 앱 개발을 위해 당뇨 환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당사자 커뮤니티를 수백 번 드나들었다. 김미영 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줘서 고맙다”며 “당뇨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학생들은 ▲무업(無業) 기간을 보내는 ‘니트족’ 청년 간의 네트워킹을 돕기 위한 소셜미디어 ▲지역별 정치인 연령 데이터 수집·가공을 통한 다양성 평가 리포트 서비스 ▲시민들이 직접 해양동물 모니터링 빅데이터를 만들 수 있는 야생 동물지도 앱 등을 소개했다.
발표가 끝나고 테크포임팩트 수료식이 진행됐다. 수업에 참관한 김주호 전산학부 교수는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설문 조사를 돌리는 등 문제 상황을 본질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이런 과정 없이는 좋은 솔루션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는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며 “한 번의 경험으로 그치지 말고, 이번 솔루션을 앞으로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도 계속 고민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수업을 처음 제안한 건 카카오임팩트 사외이사인 류석영 전산학부 교수였다. 류 교수는 “논문에 실릴만한 고도의 기술이 아닌 작은 기술로도 다른 사람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변화에 열려 있는 대학생 시기에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관심도 높았다. 정원을 훌쩍 넘긴 100여 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류 교수와 카카오임팩트 측은 이 수업을 꼭 들어야 하는 이유를 적은 ‘수강 계획서’를 받아 수강생을 선발했다. 수강생 박혜수씨는 “그동안 주로 기술력 자체에 초점을 맞춘 수업을 많이 들었다”며 “이번 수업은 기술의 영향력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기술이란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사용할 사람들과 사회적 영향력을 다방면으로 고려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카카오임팩트의 ‘테크포임팩트’ 사업은 이번과 같이 대학에서 진행하는 캠퍼스’ 트랙과 현직 개발자가 참여하는 ‘커뮤니티’ 트랙으로 나뉜다. 커뮤니티 트랙에서는 개발자 커뮤니티 기반의 성장형 교육 플랫폼인 ‘모두의 연구소’가 함께 한다. 현재 10여 명의 개발자가 3개월 전부터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와 손잡고 남방돌고래 생태계 보호를 위해 드론을 활용한 AI 비전 분석 연구를 진행 중이다. 카카오임팩트는 내년에는 더 다양한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육심나 카카오임팩트 사무국장은 “이번 수업을 통해 기술이 만드는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행은 기부나 자원봉사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휘하면서도 행할 수 있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에 이런 방식으로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내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