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기업과 사회] 공급망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RE100은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조달하겠다는 기업들의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자발적 운동이며 캠페인이다.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쓰도록 강제하는 법률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가입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고 가격이 비싼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왜 RE100에 가입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의 거센 요구 때문이다.

2020년 7월 애플은 ‘2030년까지 10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놀라운 것은 자체 비즈니스뿐 아니라 공급망과 제품 생애주기 전반에서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협력업체에 RE100 달성을 강력히 요구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연못 안의 물결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원료 채취부터 폐기까지 제품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환경적인 영향을 따지는 세상이 됐다. 전 생애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s)와 제품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추적하는 것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의 수요를 만들어 에너지 시장과 산업을 바꾸고,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급망을 통한 변화는 환경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초콜릿에 아동의 눈물이 담겨 있다면? 2021년 미국 워싱턴DC 법원에는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는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노동자들, 피고는 네슬레, 허쉬, 카길 등 식품회사들이었다. 원고들은 16세 이전부터 코코아 농장에 끌려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했는데, 피고들이 자신의 공급망이며 영향력이 지배적인 이들 농장에서 일어난 아동착취를 묵인하고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피고 회사와 그들이 일한 농장 사이에 ‘추적 가능한 연결’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네슬레는 소송이 진행되는 2022년 1월, 코코아 농장의 아동노동을 없애기 위한 획기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코코아 농가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생산성을 높이는 가지치기 등 행동을 하면 연 500스위스프랑(약 64만원)을 준다. 이는 코코아 농가의 연 평균수입의 20~25%에 해당한다. 네슬레는 이를 위해 2030년까지 13억스위스프랑(약 1조7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보다 학교에 보내면 돈을 더 벌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생산성을 높이고 환경에도 유익한 변화를 꾀한다. 네슬레는 농부와 배우자에게 각각 돈을 준다. 가사와 보육을 담당하는 여성에게도 돈을 주어 양성평등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네슬레는 이렇게 하는 것이 코코아를 지속가능하게 공급받는 길이라고 밝혔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아동노동의 총수가 1억6000만명에 이른다. 전체 아동의 10%에 이른다. 네슬레의 시도는 아동노동을 줄일 수 있을까? 가난 때문에 일터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빈익빈 부익부는 더 큰 사회문제다. 글로벌 기업의 임금은 높지만 저 멀리 공급망의 근로자는 삶을 영위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ILO의 세계임금 보고서에 따르면 3억2700만명의 근로자가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의 급여를 받고 있다. 1992년 나이키 인도네시아 하청공장의 노동자는 시간당 14센트를 받고, 150달러짜리 신발을 만들었다. 이 일이 크게 보도되고 다국적 기업 공급망의 저임금이 큰 이슈가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9년 공정노동협회(FLA)가 만들어졌다. 파타고니아, 나이키 등이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공급망 근로자도 생활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논의로 이어졌다. 생활임금은 근로자와 그 가족이 적정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게 충분한 보수를 말한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는 기업들이 모든 근로자와 가족이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공급망의 생활임금을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이를 위해 다음을 제시한다. 공급망 내의 임금 현황을 파악할 것, 협력사 선정 시 저임금 리스크를 고려할 것, 협력사가 생활임금 개념을 이해하고 관련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 등이다.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 격차도 상당하다. 경총이 대기업 임금인상의 자제를 당부하면서 내놓은 자료지만, 대기업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EU(75.7)와 일본(68.3)보다 한국(59.8)이 낮다. 최근 정부가 주도해 상생임금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고 있다는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2025년까지 1차 공급업체 전체에 생활임금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2020년 발표 당시 파타고니아 의류 하청회사의 39%만이 생활임금을 받고 있었다. 유니레버도 2030년까지 1차 공급업체의 모든 사람이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은 공급망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선도적인 기업들도 1차 공급망에 관해서만 정책을 밝히고 있고, 그 너머 말단의 공급망까지는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근로조건을 바꾸는 길은 험난하고 멀 것이다. 기업과 정부, 소비자가 모두 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나서야 한다. 파타고니아는 모든 근로자가 공정한 보상과 생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면서, 소비자들에게 아래와 같이 당부한다.

“당신들은 옷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생활임금을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를 구매(vote with their dollars, 돈으로 투표)하세요. 좋아하는 브랜드에 생활임금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세요. 더 나은 관행을 요구하십시오. 당신이 구매가 산업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what you buy is what the industry will become).”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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