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한껏 부푼 마음과 기대에 찬 눈망울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어린이날의 들뜬 분위기를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아동복지법 6조에 따르면, 어린이날은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정신을 높임으로써 이들을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보호’를 받고, 나아가 삶의 여러 가지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출생신고’가 필수적이자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어린이들에게 출생신고가 중요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출생이 등록되지 않을 경우 교육, 노동, 의료 서비스, 이동 등 삶의 다양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무국적자가 될 위험에 더욱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 제2항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출생신고’가 당연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난민의 자녀들이 그러하다.
현재 대한민국 내 외국인 자녀의 출생신고는 출신국 대사관을 통해서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본국에서 박해를 당할 위험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그들이 출신국 대사관에 찾아가는 것은 여의치 않다. 비단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본국의 출생등록 관련 법 제도상의 문제나 대한민국 내 체류 자격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본국 대사관에서 출생 등록이 거부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출생신고는 국가가 아동의 존재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해,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아이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해 아동 학대, 아동 매매 등 여러 가지 범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앞서 언급한 유엔 아동권리협약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 보편적 출생신고의 필요성을 담은 국제 인권규약들의 가입국으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출생 등록 제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는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생부의 출생신고를 제한하는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 관련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으로 출생등록권이 국적 등과 무관하게 영토 내 모든 아동에게 보장돼야 할 기본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 의미가 크다.
이에 더해 정부는 최근 ‘의료기관 출생 통보제’와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또한 미등록 이주 아동들을 포함한 모든 아동의 출생이 마땅히 등록돼야 함을 명확히 확인했다는 점에서, 어린이들의 보편적 권리를 지키는 방향을 향해 뗀 중요한 발걸음이다.
최근에 여러 난민 어린이 및 청소년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완벽한 우리말로 ‘한국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삶의 터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출생이 등록되지 않은 채로 지낼 경우 그들 앞에 놓일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아프리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일선에서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올해로 101주년을 맞은 어린이날은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매년 우리에게 아동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보라 알려준다. 앞으로 다가올 한 세기에는 출생신고라는 첫 단추를, 그 보편적 권리를 누리는 아이들이 더 많아진 어린이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마땅하고 당연하게 출생신고라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전혜경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