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오해 : 조사 또는 감사?
인권실사는 ‘Human Rights Due Diligence’를 번역한 말이다. 나는 ‘실사’라는 번역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권실사를 조사(investigation)나 감사(audit)로 오해하게 한다. ‘Due Diligence’는 직역하면 ‘적절한 성실성’이다. 미국 법률 사전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신중한 보통의 사람에게 적절하게 기대되고 일반적으로 행사되는 신중함, 행동 또는 성실성의 척도’라고 풀이한다. 일반적인 사람(선량한 관리자)이라면 기울일 주의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선관주의)라고 한다.
인권실사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Human Rights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이하 UNGPs)에서 나온 말이다. UNGPs는 기업이 인권존중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권정책을 수립하고 서약하며 ▲인권실사를 하고 ▲구제 절차 제공을 요구한다. 이 중 인권실사는 기업 활동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 방지, 완화하고 인권에 대한 영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설명하는 일련의 절차다. 인권존중을 위해 이 정도의 주의의무는 기울여야 한다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두 번째 오해 :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UNGPs가 만들어지기 전 국제사회는 ‘기업과 인권’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했다.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가 크게 문제됐기 때문이다. 처음 나온 것은 ‘유엔 기업인권규범 초안’이었다. 이 규범은 다국적기업에 국제법적 인권의무를 부과하고, 여러 집행장치를 마련했다. 40여 개에 달하는 국제인권법규를 기업이 준수하도록 했다. 인권규범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독립적인 외부 모니터링과 검증을 받도록 하며, 다른 경제주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 인권규범을 포함하도록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제 인권조약 중 기업에 직접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사국에 의무를 부과할 뿐 사적 주체인 기업에는 법적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도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2004년 초안이 유엔 인권위원회에 상정됐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여러 나라가 반대했고, 국제상공회의소 등 기업들도 강력히 반발했다. 이후 긴 논의 끝에 만들어진 것이 UNGPs다. UNGPs는 기업인권규범 초안과는 달리 법적 효력이 없는 ‘연성규범’(soft law)의 형식을 택했다. 기업에 직접 법적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 인권에 대한 높은 의무 대신에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절차와 프로세스를 제안했다. 이런 접근법은 국제사회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UNGPs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인권실사는 인권 존중을 위한 ‘최소주의적 접근’이다.
세 번째 오해 :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UNGPs의 파급력은 컸다. 국제표준화기구의 사회적 책임 관련 표준인 ‘ISO 26000’에 인권실사 프레임워크가 그대로 반영됐다.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2011년 개정 시 UNGPs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았다. 국제금융공사는 인권실사의 개념에 기초하여 ‘인권영향평가 지침’을 발표했다. ESG 공시의 국제기준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도 인권실사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GRI 기준으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내려는 기업은 이제 인권실사를 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별로 인권실사를 법적 의무로 만들기 시작했다. 2017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이 실사의무화법을 만들었다. 2022년에는 EU 차원의 법규도 마련됐다. EU 집행위원회가 마련한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이 2024년부터 시행되면 EU에서 활동하거나 EU와 거래하는 한국기업들도 인권실사를 해야 한다. 가까운 일본도 2022년 “책임 있는 공급망 인권존중 지침(안)”을 만들어 규범화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프랑스 실사법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인권실사를 하지 않는 기업에 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3개월 이내에 기업이 인권실사를 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이행명령을 구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공급망 실사의 범위를 1차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공급망에 적용했다. 아울러 이해관계자들의 정보청구권을 인정했다. 독일과 유럽은 인권실사뿐 아니라 환경실사를 함께 하도록 하여 실사의 범위를 확장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기업들은 인권실사를 자신의 공급망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실사를 거부할 수 없고, 실사 결과 인권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거래 중단도 이어진다. 이제 인권실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네 번째 오해 : 과도한 부담?
인권실사는 기업에 과도한 부담만 주는 것이라는 오해도 있다. 돈 벌기도 바쁜데 인권도 챙겨야 하나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인권실사는 오히려 기회다. 인권을 존중하는 기업에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몰리고 오랜 기간 근무한다. 소비자도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을 선호한다. 투자자들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인권을 중시한다. 반면 인권을 소홀히 하면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고, 공급망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송유관 건설 사업을 벌였다. 시민단체들은 이 사업이 인근 국립공원의 생물다양성과 수자원에 영향을 주고, 원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토탈 측은 2018년 인권실사 계획에서 이 프로젝트를 언급하지 않고 위험을 원론적인 차원에서만 다뤘다. 시민단체들은 토탈에 실사의무 이행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토탈은 국제금융공사의 기준을 준수한 환경 및 인권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이를 공개하는 내용으로 실사의무 이행계획을 보완했다. 생물다양성 정책 준수를 위해 자발적으로 사업지역 범위를 축소하고 비사용 지역에 대한 개발권리를 포기했다. 인권실사법이 바꾼 새로운 풍경이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