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주민들 아지트된 동네책방… ‘책세권’ 만듭니다”

[인터뷰] 박태숙 바이허니 대표

‘동네책방 2곳 중 1곳은 개업 2년 안에 망한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사이에 도는 말이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난 소규모 서점들은 나름의 생존 전략을 찾고 있다. 지난 2019년 문을 연 ‘책방카페 바이허니’는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주민들의 아지트다. 매일 주민 10~20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입소문을 듣고 타지에서 찾아온 이들도 있지만, 단골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바이허니에서 독서 모임, 인문학 교실, 원데이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동네 주민들은 바이허니에 모여 협동조합·소모임 등을 꾸리고 활동을 기획, 실현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박태숙씨는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에서 작은 동네책방 '책방카페 바이허니'를 운영하고 있다.
박태숙씨는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에서 작은 동네책방 ‘책방카페 바이허니’를 운영하고 있다. /박태숙씨 제공

바이허니의 책방지기 박태숙(58)씨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다. 박씨는 “은퇴를 하고 나면 책방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갑작스레 받게 된 뇌수술로 그 계획이 조금 앞당겨졌다”라며 “27년간 국어교사로 일하며 쏟은 열정과 애정을 이제는 책방에 쏟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박태숙씨를 화상회의로 만났다. 그는 화상회의를 하는 도중에 종종 핸드폰 화면을 들어 책방과 그가 좋아하는 책들을 소개했다. 작은 화면을 통해 본 책방에는 책방지기의 색깔이 짙게 묻어있었다.

논밭 옆 작은 동네책방

-대형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러들이 바이허니에는 없는 것 같은데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요(웃음). 사실 없을 때가 더 많죠. 동네책방에 진열되는 책은 오로지 책방지기의 취향대로 선정되니깐요. 과학, 예술, 생태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제가 인문에 관심이 많다보니 바이허니에는 문학 작품이 많은 편이에요. 책방 한 켠에는 울산의 지역작가들의 서적만 따로 구비해놓은 코너가 있어요. 지역작가들은 자신의 책을 보여줄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바이허니에서 맘껏 책을 홍보하라는 취지죠.”

-책방이 아담해보이네요.

“아담해서 아늑하죠. 그래도 책은 꽤 많아요. 현재 바이허니에는 5000권가량이 있습니다. 2019년에 책방을 처음 열 때는 3000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책들이 많아 수가 더 늘어났네요.”

-책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동네책방은 의류 편집샵이랑 비슷해요. 옷을 사려고 가게를 들어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의류가 많으면 그 편집샵에 자주 방문하게 되죠. 동네책방도 마찬가지로 책방지기의 취향과 독자의 취향이 일치하면 그 독자들은 지속적으로 책방을 방문하죠. 처음에는 바이허니를 방문하는 독자들의 70%가 제 지인이었어요. 마땅히 홍보할 방법이 없어 주변사람들한테만 말하고 다녔죠. 그런데 지금은 70%가 새로운 사람들 혹은 동네 주민들입니다. 다 저랑 독서 취향이 비슷한 분들이죠.”

-흔히들 책 장사는 마진이 많이 남지 않는다고들 하죠. 확보된 독자들이 있다고 해도 책방을 운영하는 데 재정적 어려움은 없나요?

“정곡을 찌르셨네요. 사실 재정적인 어려움은 큰 편이에요.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시작된 동네책방들이 왜 몇 년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지 알게 됐죠. 흔히들 자영업이 수익을 내려면 재료비 40%, 임대료와 공과금 30%, 인건비 30%를 잡아야 한다는데, 동네책방의 책 구입비는 70% 내외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거기다가 임대료와 부대 경비까지 내야 하니 책방을 지속할 수 있는 수익구조가 안 되는 거죠. 온라인 쇼핑물이나 대형 서점처럼 할인이나 적립금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깐 손님을 모으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저도 카페를 같이 하면서 수익을 조금씩 내고 있습니다.”

-바이허니는 논과 밭이 대부분인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에 있습니다. 왜 이 곳을 책방 부지로 골랐나요?

“저는 울산에서만 교사 생활을 했어요.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책방이 없는 울산 시골동네에서 ‘책세권(동네책방이 있는 지역)’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만화리는 30~40분은 차로 이동해야 시내로 나갈 수 있는 아주 외곽진 곳이에요. 좋은 책을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죠. 이 곳의 주민들에게 다양한 세상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책방 부지는 넓나요?

“약 200평이에요. 작은 공간은 아니죠.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하다가 지하1층에는 책방을, 1층에는 카페를, 2층에는 저와 남편의 살림집을 꾸렸죠. 주민들이 꽃꽂이나 식물 키우기 활동을 할 수 있는 민간정원도 있습니다. 별채에서는 하룻밤 책과 함께 숙박할 수 있는 북스테이 공간도 마련돼 있어요. 꽤 알차죠?(웃음)”

책방카페 '바이허니'에서는 독서모임이 열린다. 모임 참석자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책방에 모여 생각을 공유하고, 웃음을 나눈다.
책방카페 ‘바이허니’에서는 독서모임이 열린다. 모임 참석자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책방에 모여 생각을 공유하고, 웃음을 나눈다. /박태숙씨 제공

주민들 웃고 떠드는 문화복합공간으로

바이허니에는 대표적인 독서모임들이 있다. 금요일 아침마다 시를 읽는 ‘금요시읽기 모임’, 꼰대가 되는 시간을 늦춰보자는 아저씨들의 모임 ‘아저씨 독서 클럽’ 등이다. 이들은 매주 특정 요일을 정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고,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바이허니에서는 주민들끼리 서로 안 쓰는 물건을 교환하는 ‘손바닥 장터’ 등이 열린다. 커피 교실, 장 담그기 교실, 타로 상담 교실 등 다양한 원데이클래스도 진행된다.

-책방이라기 보다는 문화복합공간에 가까운 것 같네요.

“하하.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마을 주민들이 편하게 소통하고, 활동을 하는 거점이 된 것 같아 저로서는 굉장히 뿌듯합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이들이 전하는 세상의 얘기를 듣는 것도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요. 천직인가봐요(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요?

“몇 년 전에 한 부부가 어린 자녀 두 명을 데리고 책방에 왔었어요. 원래 아이들은 독서에 잘 집중을 못하는데 그 가족 구성원들은 종일 책만 보더라고요. 그 가족은 주기적으로 바이허니를 방문했고, 북스테이도 진행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큰딸이랑 엄마만 책방을 방문했더라고요. 딸의 표정이 어두웠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을 겪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걱정이 앞섰는데, 바이허니 마스코트인 강아지 탄이랑 오후 내내 놀면서 책을 읽고 웃는 얼굴을 종종 보여주더라고요. 나중에 집에 갈 때는 “바이허니에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상처가 회복된 것 같아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정말 기뻤습니다.”

-새해를 맞아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요?

“너무 많아서 한 권을 못 고르겠는데요. 그래도 한 권을 고르자면,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를 추천합니다. 젊은 여성이라면 굉장히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을 책이에요. 또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도 권합니다. 북미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교육관에 관한 이야기인데 부모들이 읽으면 참 좋을 책이에요.”

-최근에는 신간을 출간하셨다고요.

“맞아요. 바이허니의 설립부터 성장 과정을 담은 책 ‘동네책방 분투기’가 출간됐습니다. 책은 읽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제가 쓰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국어교사를 그만두고 책방지기가 되기로 마음먹은 때부터 시작해 건축 설계 노하우는 물론 동네책방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확장시킨 과정을 낱낱이 담았습니다. 독립책방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책이에요.”

-책방지기 선배로서 앞으로 독립책방을 전국 곳곳에서 심어나갈 후배들에 조언 한마디만 해주세요.

“2년은 꾹 참고 버티세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2년 정도 견디고 견디면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손님을 데리고 올 거예요. 그리고 콘텐츠가 확실해야 합니다. 테마를 갖고 어떤 책들을 집중적으로 팔 것인지를 정하는 게 좋아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집중 공략을 하면 됩니다. 좌절하지 말고 힘내세요!”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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