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소셜벤처들이 만든 친환경 ‘시너지’… 현대차정몽구재단 ‘그린랩 프로젝트’

[현대차정몽구재단 ‘그린랩 프로젝트’]

서울 중구 온드림 소사이어티 6층에는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미션을 가진 소셜벤처 3곳이 입주해 있다. 자동차 폐이차전지 분리막을 재활용해 패션 원단을 만드는 ‘라잇루트’, 업사이클링한 타이어를 신발 밑창에 적용하는 ‘트레드앤그루브’, 재생에너지 효율과 시스템을 관리하는 IT 기업 ‘식스티헤르츠’다.

이들은 지난해 5월 환경을 주제로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은 ‘그린랩 프로젝트’. 라잇루트와 트레드앤그루브는 힘을 합쳐 6개월 만에 100% 친환경 신발을 완성했다. 신발 1켤레당 9kg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식스티헤르츠는 스타트업을 위한 재생에너지 구독 서비스 ‘월간햇빛바람’을 만들었다. 재생에너지 구매 절차가 까다로워 RE100 달성을 포기했던 스타트업에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그린랩 프로젝트 성과 공유회’가 열렸다. 사진은 환경문제 해결을 주제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왼쪽에서 셋째부터)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 이온 트레드앤그루브 대표와 현대차정몽구재단·엠와이소셜컴퍼니(MYSC) 관계자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그린랩 프로젝트 성과 공유회’가 열렸다. 사진은 환경문제 해결을 주제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왼쪽에서 셋째부터)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 이온 트레드앤그루브 대표와 현대차정몽구재단·엠와이소셜컴퍼니(MYSC) 관계자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뭉치면 커지는 임팩트

지난달 12일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그린랩 프로젝트 성과 공유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키워드는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였다. 콜렉티브 임팩트란,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시너지를 발휘해 만든 임팩트를 말한다. 그린랩 프로젝트에는 소셜벤처뿐 아니라 현대차정몽구재단,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했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MYSC는 공간과 자금, 네트워킹 등을 지원하면서 협업의 ‘판’을 깔았다.

온드림 소사이어티는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운영하는 소셜임팩트 공간 플랫폼이다. 환경을 주제로 소셜벤처와 대중, 전문가들이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지난해 4월 개관했다. 1층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6층이 라잇루트, 트레드앤그루브, 식스티헤르츠가 입주한 ‘임팩트 스페이스’다. H-온드림은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현대차그룹이 2012년부터 사회문제 해결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거쳐 간 펠로 기업만 290곳이 넘는다. MYSC는 지난해부터 H-온드림의 운영 파트너로 합류했다.

그린랩 프로젝트에 대한 구상은 온드림소사이어티가 개관한 지난 4월부터 시작됐다. 비슷한 미션을 가진 소셜벤처들이 모인 김에 재밌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심재민 현대차정몽구재단 사업팀 과장은 “환경 임팩트 창출을 위해 이 공간을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MYSC와 고민했다”며 “그러다 6층에 입주한 소셜벤처에게 함께 환경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입주 기업 4곳 중 3곳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라잇루트와 트레드앤그루브가 뜻이 통했다. 각자의 특기를 살려 친환경 로퍼와 구두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라잇루트는 신발 원단을, 트레드앤그루브는 밑창을 제공했다. 재단과 MYSC가 진행 단계별 달성 목표와 마감기한, 우선순위 등을 정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왔다.

공간의 힘도 발휘됐다. ‘사무실 이웃’인 덕분에 수시로 미팅이 이뤄졌다.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는 “사무실이 멀면 업체끼리 미팅 한번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 프로젝트에선 ‘당일 급만남’이 90%는 됐다”고 말했다. 논의할 게 생기면 바로 옆 사무실에 가서 문을 두들겼다. 덕분에 짧은 기간에 완성도 높은 신발이 나올 수 있었다.

이번 협업으로 두 기업 모두 연구 개발에 드는 시간, 인력 등 자원도 아낄 수 있었다. 라잇루트는 의류, 가방, 모자 등으로 한정되던 제품 영역을 신발로 넓혔다. 트레드앤그루브는 지금까지 신발 밑창에만 업사이클링 소재를 활용했지만 이제 신발 전체에 친환경 요소를 넣을 수 있게 됐다. 두 기업은 작업화, 부츠 등으로 제품군을 늘리고, 해외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모색하는 등 신발 3만 켤레 생산, 탄소배출량 27만kg 저감을 목표로 판매 활로를 넓힐 예정이다.

새로 찾은 ‘스타트업 탄소중립 시장’

식스티헤르츠는 재생에너지 구독 서비스 ‘월간햇빛바람’을 선보여 재생에너지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식스티헤르츠는 전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하는 ‘가상 발전소(Virtual Power Plant·VPP)’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력망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최적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한다.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는 “사업을 하다 보니 스타트업은 탄소중립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기업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려면 한국에너지공단 이용 시스템에 가입해야 한다. 이 절차가 복잡해 많은 기업이 돌아선다. 겨우 가입을 해도 재생에너지의 가격 변동이 심해 지출을 예측하기 어렵다. 소규모 기업에는 부담이다. 재생에너지는 대용량으로만 판매한다는 점도 장벽이다.

월간햇빛바람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손쉽게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월정액 상품에 가입하면 매달 일정한 금액에 재생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 소량 구매도 가능하다. 식스티헤르츠에서 한국에너지공단 시스템 가입 대행 서비스도 제공한다. 멤버십 기업에는 재생에너지 구독 성과를 객관적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리포트와 인증 마크를 발급한다.

월간햇빛바람의 첫 고객으로는 H-온드림 펠로들이 손을 내밀었다. 김종규 대표는 “이런 실험적 서비스는 다양한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한데, 쉽지 않다”며 “H-온드림 펠로들이 그동안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기꺼이 참여해줘서 성공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식스티헤르츠는 지난해 2000만원이던 거래 규모를 올해는 10억원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이미 다양한 기업에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국내 최대 IT 플랫폼 기업, 온라인 패션 기업 등 일부 업체와 계약을 진행 중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발행하는 스탠퍼드 소셜이노베이션리뷰(SSIR)에 따르면, 콜렉티브 임팩트 창출을 위해선 다섯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공동의 목표 ▲참여 주체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조건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측정 지표 ▲함께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오픈 커뮤니케이션 ▲협력을 돕는 중간 조직 등이다. 신현상 한양대 임팩트사이언스연구센터장은 “그린랩 프로젝트는 콜렉티브 임팩트를 내기 위한 요건이 잘 녹아있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MYSC는 임팩트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예지 MYSC CBO는 “지금까지 오픈 이노베이션은 주로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에 이뤄졌지만, 성숙한 스타트업이 많이 탄생하면 스타트업 간 협업이 활발해지고 의미 있는 결과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력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은 “탄소 대전환 시대에 기술 개발과 실용화, 인재육성을 지원하는 것이 공익재단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미래사회 문제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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