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금)

친환경 장난감에서 빈곤층 생계업으로… 커피 점토 부엉이의 꿈

커피점토 회사 ‘커피큐브’ 대표 임병걸
커피 만들고 남은 찌꺼기 식품첨가물 등 넣어 점토로 부엉이 공예품 ‘씨울’ 제작
화학제품·방부제 없는 점토 아토피 아이도 만질 수 있어 유치원·초등학교에 납품
지역자활센터와 연계해 재활용 전문가도 배출 예정

‘수많은 카페에서 매일 배출되는 커피 찌꺼기는 어디로 갈까?’

2008년 여름, 강남의 한 카페 앞을 지나던 임병걸(36·사진)씨. 그는 20㎏ 포대에 가득 담긴 ‘커피 찌꺼기’를 보고 궁금증이 생겼다. 한 해 생활 쓰레기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는 27만t,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9만2000t이 넘는 수준이다.

미상_사진_사회적기업_임병걸_2014

임씨는 이날부터 커피 찌꺼기와 동거를 시작했다. 퇴근 후엔 인근 카페에서 커피 찌꺼기를 수거해 방 안에서 말렸고, 주말엔 제약회사 연구실 한쪽을 빌려 말린 찌꺼기 재활용 실험을 했다. 밤 10시만 되면,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온다고 가족에게 핀잔을 듣는 것도 일쑤였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임씨는 3년간의 연구 끝에 커피 찌꺼기에 식품첨가물 13종과 물을 넣고 말려 뭉친 커피 점토를 만드는 데 성공, 2011년엔 커피 점토 분말 국내외 특허도 취득했다. 2012년엔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최우수 수상작으로 뽑히면서 사회적 가치까지 인정받았다. 지난해 6월에는 8년간 근무했던 대기업 영업직을 그만두고 ‘커피큐브’를 창업, 커피 찌꺼기에 인생을 걸었다.

“커피 큐브(커피 찌꺼기로 만든 네모 조각)는 찰흙이나 지점토, 비누 대신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학교 미술 시간에 조각용으로 쓰고 버리는 비누가 1년에 10만 개 이상이라고 해요. 칼로 깎다 보면 위험하기도 하고, 잘못해서 먹을 수도 있잖아요. 커피 큐브는 사포나 줄로 모양을 간단히 만들 수 있고, 찌꺼기엔 화학제품은 물론 방부제도 들어가지 않아 먹어도 해롭지 않습니다.”

커피 점토를 활용한 부엉이 모양의 공예품 '씨울'
커피 점토를 활용한 부엉이 모양의 공예품 ‘씨울’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착한 기술’이 결합하며 사업은 순풍을 타고 있다. 임씨는 커피 큐브를 활용한 부엉이 모양의 공예품인 ‘씨울(c-OWL)’을 만들어 강릉커피축제나 환경행사에 소개했고, 이는 엄마·선생님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어머니가 ‘아이가 아토피라 찰흙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커피 큐브는 문제가 없다’라며 고마워하기도 한다”고 했다. 덕분에 어린이집·유치원은 물론 초등학교 정규수업에도 친환경 교구 요청을 받아 납품하고 있다.

요즘 한 달에 처리하는 커피찌꺼기의 양은 3t가량. 올해는 7500명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후 수업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세종시 캐릭터, 전남 무안 양파 등 지역특산품 홍보를 위한 커피 점토 공예품을 납품할 예정이다.

사업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커피 점토 공예품인 씨울에서 3일만 지나도 곰팡이가 생기는 것. 6개월 동안 고민을 하던 임씨는 ‘곰팡이가 스는 이유’에 주목했다. 곰팡이가 생긴다는 것은 주위 습도가 높다는 뜻.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는 말이다.

팸플릿에 ‘곰팡이가 슬면 주위 환기를 시켜주세요’ ‘세균에 감염될 수 있으니 깨끗이 손을 씻으세요’ 등의 주의사항을 적어 아이들이 손쉽게 주위 환경과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체크용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했다(단, 전문가의 손길로 공장에서 딱딱하게 건조한 제품은 정말 습한 곳이 아니면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커피 큐브는 1인기업이다. 임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경기도 안양시 일대 스타벅스를 돌며 100㎏씩 커피 찌꺼기를 수거하고, 이를 말려 커피 점토로 만든다. 대신 공예품 생산은 전국 지역자활센터 15곳과 연계해 진행한다. 각 센터에서는 기계와 재료를 구매하고, 커피 큐브는 공정 과정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난 6개월간 임씨는 부산시, 세종시, 전북 무안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예품 ‘씨울’ 생산공정을 일일이 가르쳤다.

임씨는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서 팔면 9000원을 버는데 ‘씨울’은 10개만 만들어도 된다”면서 “기술이 향상돼서 하루에 100개씩 만들면 젊은이들만큼 수익이 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한 이들은 3개월간의 교육과정을 거치면 커피 찌꺼기 재활용 전문강사로 나설 수 있고, 강사료도 100% 자신의 몫이다. 올 상반기에만 60명의 전문가가 배출될 예정이다.

임씨는 커피 찌꺼기의 100% 재활용을 꿈꾼다. 더불어 그는 “아이들의 건강에 문제가 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경영 원칙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커피 찌꺼기로 만들어 색이 칙칙한 회색밖에 없어 아쉽다’는 피드백에도 색소를 첨가한 커피 점토를 만들지 않는 이유다. 대신 임씨는 “바나나 껍질을 동결 건조해 만든 점토 기술도 이미 특허를 받았다”며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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