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지원은 예방, 대응, 복구 작업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인도적지원을 다루는 국내법에는 예방과 복구 관련 내용이 없어요.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은 인도적지원을 따로 명시하고 있지 않고, ‘해외긴급구호에관한법률’은 해외에서 발생한 자연재난 현장에 해외긴급구호대(KDRT)를 파견하는 것에 그칩니다. 두 법률에서 다뤄지는 인도적지원의 개념과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예방과 복구를 제외한 긴급구호 대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입니다.”
17일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협력센터 연구위원은 ‘고조되는 인도적 위기와 대한민국 대응 방안’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번 포럼은 한국월드비전과 김영주 국회부의장,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한국의 인도적지원 대응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공동으로 마련했다. 이날 포럼에는 조명한 한국월드비전 회장과 아순타 찰스 아프가니스탄월드비전 회장, 김상희·이원욱·홍익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참여했다.
이날 장은하 연구위원은 법적 기반을 중심으로 한국의 인도적 지원 활동 현황과 개선방향을 짚었다. 대한민국 공적개발원조(ODA) 총괄·조정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ODA 지원 실적은 28억6000만 달러(약 3조8000억원)로 이 중 인도적지원 예산은 1100만 달러(약 145억원)였다.
장 연구위원은 더 효율적인 인도적지원을 위해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법 개정 시 포함해야 할 핵심 요소로는 ▲예방, 대응, 복구를 포함한 인도적지원의 정의 ▲인도적지원 의사결정과 정책 심의 기구 ▲구체적이고 모니터링 가능한 시행계획 ▲시민사회와의 협력 등을 꼽았다.
남상은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장은 최근 아프간, 남수단, 소말리아, 시리아 등 취약지역의 인도적 위기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발생한 분쟁, 기후변화, 전염병과 같은 복합적인 위기는 취약지역에 더 불공평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식량 위기를 겪는 인구는 1억9300만명으로 2016년(1억800만명) 대비 2배가량 증가했습니다. 글로벌 식량 위기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들은 아프간, 에티오피아, 예멘과 같은 취약국입니다.”
증가하는 인도적지원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공동의 성과를 향한 통합적 접근 ▲다주체 협력과 조정 강화 ▲장기적 접근 ▲오너십 강화 ▲양질의 자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도적 위기는 복합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인도적지원, 회복, 개발, 평화 구축의 영역을 구분해 차례로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라 취약지역의 상황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유연한 접근방식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 실장은 “급증하는 인도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인도적지원(Working in Fragility)뿐 아니라, 인도적 위기를 야기한 근본원인을 해결하고, 예방하고, 복원력을 구축(Working on Fragility)하는 접근방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발표 후 토론도 진행됐다. 이성훈 한국국제협력단 비상임이사가 좌장을 맡았고, 박명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데이비드 마이클 메이즐리시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현미주 외교부 다자협력인도지원과장, 이경주 KCOC HnD사업부장이 토론에 참여했다.
현미주 과장은 “인도적지원과 관련된 국내법이 보다 정교해질 필요는 있을 것 같다”며 “만성재난과 긴급재난을 구분하고, 효율적인 인도적지원을 위해 전략문서도 작성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인도적지원 예산을 늘릴 수 없느냐는 질문에는 “인도적지원은 외교부가 총괄하지만, 모든 예산은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통해서 결정된다”며 “최근 인도적 미지수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에 기재부도 인도적지원 예산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라고 답했다.
이경주 부장은 민·관협력을 강조했다. “정부가 인도적지원 관련해 개괄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시민사회는 현장에서 보다 구체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주체입니다. 시민사회는 현장접근성이 높다는 강점도 있습니다. 민·관의 다양한 주체가 긴밀히 협력한다면 지금의 인도적 위기를 해결하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