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정유회사들이 기존 사업을 재편하고 재생에너지와 탄소 배출 저감 기술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 정유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지난 6월 9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린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기업 오스테드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3GW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건설할 아일랜드해 해저지역 낙찰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석유화학사업부를 영국 석유화학기업 이네오스에 50억달러를 받고 매각한 바 있다.
전 세계에서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해외 기업들의 성공적인 ESG 대응 사례들이 소개됐다. 코트라(KOTRA)가 30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해외기업의 ESG 대응 성공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G 투자규모는 35조3000억달러(약 4경1124조원)로 2018년 22조8000억달러에 비해 15% 성장했다. 미국에서의 ESG 투자 규모는 17조달러로 가장 컸고, 유럽 12조달러, 일본 2조9000억달러로 뒤를 이었다. 글로벌 투자자들과 대기업들이 ESG를 투자의 핵심 기준으로 세우면서 미국·EU 등 기업들은 점차 ESG 경영을 실행하고 있다.
다국적 정유기업 ‘셸(Shell)’은 연간 20억~30억달러를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투자금의 80%를 풍력발전 등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정유기업 ‘엑손모빌’과 ‘셰브론’은 석유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감축하고, 탄소포집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제조업도 기후변화 대응에 발맞추는 모양새다. 미국 생활용품 제조기업 ‘세븐스제너레이션’은 아마존의 ‘2040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 서약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지속가능성 인증을 받은 제품만 판매하는 아마존 ‘친기후서약(Climate Pledge Friendly)’ 코너에 55개 이상의 제품을 등록했다. 해당 코너에 등록된 제품들은 코너에 등록되지 않은 제품보다 약 60% 이상 높은 클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식료품 제조기업 ‘후지오일홀딩스’는 원료 공급망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관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책임 있는 카카오 원두 조달 방침’을 수립했다. 구체적인 목표로는 2030년까지 원료를 조달하는 카카오 농장에서 아동 노동을 없애는 것을 내걸었다. 농가 아동에 대한 교육 활동도 진행한다. 또 팜유 생산의 원료조달부터 판매까지 생산 이력을 100% 추적할 계획이다.
ESG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받은 사례도 있다. 캐나다의 클린테크기업 ‘카본큐어테크놀로지’는 탄소포집 기술로 이산화탄소(CO₂)를 모아 콘크리트 제조공정에 넣는 사업을 개발했다. 콘크리트에 CO₂를 집어넣으면 시멘트 사용량도 줄일 수 있고, 콘크리트의 강도도 올라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사업이다. 카본큐어테크놀로지는 아마존 기후서약 펀드, 마이크로소프트 기후 혁신 펀드, 빌 게이츠의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등의 투자자들로부터 약 11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동물복지 계란과 유제품을 생산하는 미국의 ‘바이탈팜즈’는 ‘깨어 있는 자본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직영 농장을 늘리기보단 225개의 소규모 농장들과 협력해 제품을 생산했다. 바이탈팜즈는 미국 내에서 방목해서 키운 닭의 계란을 판매하는 브랜드 가운데 가장 큰 기업이 됐다. 투자자들로부터 동물복지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2억달러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금융권은 ESG 경영을 추진하면 우대금리를 적용해주는 등 대출 인센티브 제도를 펼치고 있다. 미국의 ‘HSBC USA’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재생에너지 사용량 증가 등 미리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한 기업에 대출 우대금리를 적용한다. 영국 ‘로이드은행(Lloyds Bank)’은 친환경 프로젝트에 쓸 돈에는 0.25%의 우대금리를 적용해준다.
국가 차원의 ESG 관련 규제도 추진되고 있다. 미국은 올해 USTR 통상아젠다를 통해 탄소국경제도 도입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월에는 행정명령으로 키스톤 송유관 건설 허가를 취소하고, 석유·천연가스 시추의 신규 허가를 중단시켰다. EU는 지난달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초안과 2035년부터 역내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