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모두의 칼럼] 내겐 너무나 먼 고등학교

유지민(서울 강명중 2)
유지민(서울 강명중 3)

내년이면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서울은 고교 평준화 지역이기 때문에 내 친구들은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추첨을 기다리고 있다. 장애가 있는 나는 입학이 1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고등학교 답사를 다니고 학교에 입학 문의를 해야 한다.

근 몇 개월간 주변 고등학교들을 돌아보며 한국 고등학교, 특히 사립 고등학교들이 장애 학생에게 참 불친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소위 ‘명문’이라는 고등학교도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특수 교사가 없는 학교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 학생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은근히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치는 곳도 있었다. 이런 학교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매우 가깝고 엘리베이터도 잘 갖춰져 있다. 덕분에 지난 9년간 친한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학교도 함께 다닐 수 있었다. 이런 내게 ‘고등학교를 알아본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했다. 어릴 적,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여러 곳에서 거부당했다고 엄마에게 듣긴 했지만 그때는 워낙 어려서 잘 몰랐기 때문에 장애 학생에게 담을 쌓는 듯한 교육 현실을 이번에 처음 느껴본 셈이다.

엉뚱하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 다행이다’였다. 몇 달 전 누군가 ‘외고를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 재능은 없는데…’ 하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인근 외고를 알아봤는데, 엘리베이터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지역 학생들까지 일부러 찾아와 입학할 정도로 꽤 평판이 좋은 학교였기 때문에 좀 놀랐다. 만약 성적이 충분히 되는데 단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그 고등학교에 지원하지 못했다면, 정말이지 억울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장애 때문에 시도도 못 해보고 좌절하는 게 싫어서,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이상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일단 부딪치고 보는 편이다. 그 학교가 휠체어 탄 학생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듯했고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내가 오기로라도 진학해서 3년을 지내면, 후배 장애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현실의 장벽을 이겨내지 못해 중간에 전학이라도 가게 된다면 이사를 감수해야 하고 후배 장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목표도 이루지 못한다. 무엇보다 내게는 너무 소중한 고등학교 3년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한 길을 택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이 부딪쳐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장애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해주고, 학교 선택 폭을 늘려주는 건 국가의 몫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거창하지도 않다. 수업하는 교실에 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수업에 정상적으로 참여하며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학업과 교우 관계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전부다. 장애 학생 중 여건이 되는 많은 학생이 해외에 나가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해결 방법은 뭘까. 전국 모든 고등학교의 장애 관련 시설(경사로, 엘리베이터 등) 설치 여부와 특수반, 특수 강사 배치 여부 등을 정리하고 공개하는 것이다. 간단한 정보 같아 보여도 일반 검색으로는 매우 찾기 어렵다. 교육청에 수소문하거나 직접 학교에 문의하는 수밖에 없는데, 학생과 학부모가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보를 모아서 인터넷에 제공한다면 훨씬 편리하게 학교를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전국의 모든 사립학교에 엘리베이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을 만들어 장애 학생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시설과 역량을 갖춘다면 교육권 보장에 한발 더 가까워질 것이다.

유지민(서울 강명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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