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금)

[미래 Talk! Talk!] ‘갑’ 복지부 공무원들이 ‘을’에게 프레젠테이션을?

지난 4월 말,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보건복지부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복지부가 개최하는 민관협력 사업 설명회에 참석해달라는 요청 메일이었습니다. 행사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4월 29일 오후 3시.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 100여명이 대한상공회의소에 모였습니다. 설명회가 시작되자 궁금증은 풀렸습니다. 복지부 사무관·주무관이 한 명씩 앞으로 나가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습니다. 노인, 영유아, 아동·청소년, 여성, 보건의료, 장애인 등 총 6개 분야로 나눠 특정 사업을 소개했습니다. 노인정책과에서는 독거노인에게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는 ‘영양 플러스 실버’사업을, 보육기반과에서는 ‘어린이집 노후시설 보수 지원 사업’을 설명하는 등 총 16개 사업이 소개됐습니다. 예산 부족 때문에 실시하지 못하는 필요 사업들을 호소하는 자리였습니다. 한 주무관은 “복지부가 그동안 갑(甲)의 위치였다면, 오늘은 을(乙)이 되어 펀드레이징을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아동복지정책과의 한 사무관은 “베이비시터분들도 월 150만원을 받는 데 반해,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맡아 키워주는 ‘가정위탁’ 사업은 국비사업이 아닌 지방이양사업이기 때문에 현재 50만원인 지원비를 올리기 힘들다”며 “복지부와 조인(join)해 주시면 20~30가정을 샘플로 뽑아서 추가 양육 비용, 부모 전문교육을 풀세트로 프로세스를 만들어 성과를 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주무관은 “10년 이상 됐거나, 비상재해 대비 장치를 갖추지 못한 어린이집이 2098곳이나 되는데, 한 곳당 3000만원의 개보수 예산이 든다”고 했습니다. 보육정책과의 한 주무관은 “통학차량 통행이 많은 위치에 어린이들을 위한 안심 하차 정류장을 설치하기 위해 총 34억원이 든다”고 했습니다.

설명회가 끝나고,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복지부 사업 하나씩 맡아 지원하라는 것 같다”며 부담스러워하는 이도 있었고,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사업 소개만 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설명회 직후 향후 기업의 구체적인 협력 절차를 문의했을 때,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답변만 얻었기 때문입니다. “예산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이들이 소개한 민관협력 사업 단위는 최소 2억원에서 최대 629억원까지 책정돼 있었습니다.

복지부의 새로운 시도가 인상적이었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회공헌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였는데, 해답을 얻은 것 같다”는 기업재단 관계자도 있었고, “복지부 사무관이 직접 민관협력에 나선 만큼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담당자도 있었습니다. 복지부의 민관협력 사업 설명회는 앞으로 정례화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입니다. 정부가 세금을 걷어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하는 복지사업과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해야하는 사회공헌은 목적도 다르고, 방향도 다릅니다. 민간기업이 비영리단체와 파트너십을 통해 정부정책의 사각지대를 메워 왔는데, 이렇게 되면 정부가 비영리단체의 ‘일자리’까지 빼앗는 것일까요? 정부와 기업이 협력사업을 하더라도, 이것이 성공하려면 복지부는 좀 더 세밀한 밑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예산 부족을 기업 사회공헌으로 메우는 식의 접근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복지 사각지대’를 기업 사회공헌 니즈(needs)와 어떻게 제대로 결합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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