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네트워킹 넷임팩트
기업 지속가능성 위해 소셜 임팩트 추구하는 네트워크 단체
각자의 분야에서 건강한 사회발전 고민
지난달 24일 저녁, 서울 홍익대 근처 카페에는 유통·금융·제약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을 비롯,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직원 등 30여명이 모였다. 모임 이름은 ‘넷임팩트’ 한국지부다.
‘넷임팩트’는 1993년 미국 아이비리그 MBA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져 현재 120개 도시 1만5000명 이상의 회원이 있는 국제 네트워킹 조직이다. 목적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조직 내·외부에서 소셜 임팩트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넷임팩트’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05년. 현재 회원은 40여명 정도다. 지난 2007년에는 사회책임투자 컨설팅회사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를 비롯해 애널리스트, 회계사 등 멤버들이 러셀 스팍스의 ‘사회책임투자:세계적 혁명'(홍성사)을 번역했다.
이들은 한국 소셜 벤처 대회(Social Venture Competition Korea: SVCK)에 참가하는 등 영리기업,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등 각자의 분야에서 공익적 프로젝트 등의 활동을 하며 우리 사회의 작은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제약회사 근무하는 김완주씨, 임상시험 정보 공유 앱 서비스 만들어
“회사에서 췌장암 신약을 들여오기로 계약을 했는데, 언론 보도가 나가자 환자분들이 전화가 오는 거예요. 약이 언제 출시되는지, 임상시험에 참여가 가능한지 물으시더라고요. 췌장암 같은 경우 걸리면 6개월 안에 대부분 사망하거든요. 임상시험이 치료방법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에게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될 수 있겠다 싶은 거죠.”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김완주(35)씨는 1년째 임상시험 정보를 공유하는 ‘드러그인사이드(drug inside:약속)’ 아이폰 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매년 400여건의 임상시험이 진행되지만 대상자를 모집하는 정보는 폐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김씨는 “만약 정보를 알아도 어려운 말로 적혀 있어 환자분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며 “쉬운 말로 바꿔 퍼트리면 누군가는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앱을 만들 재주가 없어 고민하던 당시,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의 트위터에 공공성을 가진 앱을 제작하는 데 관심이 있는 이들의 모임 공지가 떴다. 그곳에서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만났다. 생각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5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인터넷 동호회 카페를 통해 만난 개발자와 안드로이드 버전 ‘드러그인사이드’ 앱을 제작 중인데, 오는 3월 말~4월 초 출시될 예정이다.
김씨도 5500만원이나 오른 전세금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주말이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보통의 직장인이다. 한 가지 특별함이 있다면 ‘넷임팩트’ 한국지부의 회장직을 3년째 맡으면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는 것이다. 김씨에게 바쁜 시간을 쪼개 ‘넷임팩트’ 활동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잘난 척하려고 그러는 거예요(웃음).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고, 남들 보기에도 멋있어 보이면 좋잖아요. 사실 제가 행복하려고 하는 겁니다. 단, ‘넷임팩트’가 다른 모임과 차별화된 점은 각자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건강한 사회 발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거죠. 이들이 모이면 변화가 시작됩니다.”
◇터치포굿 박미현 대표, ‘2012 대선 에코백 프로젝트’
지난해 4·11 총선 당시 축구장 25개를 덮을 만한 선거 홍보 현수막이 배출됐다. 처리비용만 무려 28억원이었다. 버려지는 현수막을 재활용해 가방과 소품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의 박미현(30)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2012년엔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으니 너희들은 재료 걱정 없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작 저희는 2010년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선거현수막을 재활용하는 기업으로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다. 9시 뉴스에 보도가 되자, 다음 날부터 현수막이 트럭에 쌓여왔다. 25t 규모였다. 문제는 재활용 협약을 맺지 않은 곳에서도 막무가내로 폐현수막을 보내왔던 것. 회사 앞에 현수막을 몰래 두고 가는 경우도 있었고, 도저히 소품으로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불량한 것도 많았다. 박씨는 “터치포굿의 사회적 목표는 불필요한 현수막 사용을 줄이는 것”인데 “많은 사람은 단순히 재활용 전문 기업으로 착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대안으로 마련한 것은 ‘2012 대선 에코백 프로젝트’. 박씨는 새누리당·민주통합당 등 각 당과 ‘업사이클링 협약’을 맺어 에코백으로 재활용할 현수막의 양을 미리 정했다. 협약을 맺은 현수막에는 ‘업사이클링’ 표시가 새겨져서 제작되는 방식이다. 한편 대선 에코백을 소장하고 싶은 개인 후원자를 소셜 펀딩으로 모으면서 소비할 양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했다. 173명의 사람들이 321만원을 모금하면서 100만원 목표치를 훌쩍 넘기면서 후원에 성공했다. 모인 후원금은 선거 현수막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와 저소득층 아토피 아동 지원을 위해 쓰였다.
박씨는 “습관적으로 현수막을 만드는 문화를 바꾸는 것”이 회사의 최종목표라고 말했다.
◇잘나가는 외국계 증권회사를 박차고, 국제개발 유학길에 오른 오수현씨
오수현(32)씨는 2년 전만 해도 외국계 증권회사에서 재무회계를 담당하던 직장인이었다. 5년간 지속되는 똑같은 생활이 무료해졌고,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국제개발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ODA 와치(WATCH)’라는 시민단체 워크숍에 참여했다.
“사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야근도 없고, 월급도 제때 주는 안정적인 직장이었어요. 그런데 30~40년 후 제 모습을 그려봤는데 매력적이지 않더라고요.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 컴퓨터 모니터만 보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았어요. 정시퇴근 후 일주일에 두 번, 국제개발을 배웠는데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오씨는 주말에도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국제개발’에 대한 지식을 채워나갔다. 지난 2011년에는 다니고 있던 회사마저 그만두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세부 전공분야는 ‘비즈니스가 국제개발에 미치는 영향’이다. 작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 ESCAP)에서 인턴 활동을 하고 지난달 귀국했다. 오씨는 “돈과 안정적인 직장은 놓아야 했지만 대신 삶의 가치와 용기,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얻었다”며 “회사, 시민단체, 유학길 등에서 습득한 지식과 삶이 일치되도록 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