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印尼 팜유 농장, 개도국 아동 노동 착취 심각

할당량 못 채우면 월급 깎여 아이까지 일터로
열매 따기·제초제 뿌리기 등 매일 노동 시달려
韓 기업 무분별한 농장 개발, 산림 훼손도 심각

유엔, 우리 정부에 “방지 대책 마련하라” 권고
전문가 “실효성 있는 방안 내놔야” 한 목소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주 리아우 지역에서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팜유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동(왼쪽). 지난 2016년 국내 시민단체 연대체 ‘기업과인권센터’가 현지 조사 과정에서 직접 촬영했다. ⓒ공익법센터 어필

“조그만 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를 따고 유독성 농약이나 제초제를 뿌리면서 일하고 있어요. 위험한 환경이지만 생산량을 맞추지 못하면 월급이 깎이니 어쩔 수 없어요.”

지난 2016년 ‘기업과인권네트워크’가 폭로한 인도네시아 팜유 농장의 아동 노동 착취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공장은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곳이다. 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공익법센터 어필, 환경운동연합 등 9개 시민단체가 꾸린 연대체로,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로 인한 현지 인권침해 상황을 감시하는 활동을 한다. 최근 유엔이 한국 기업들의 개발도상국 아동 인권침해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3년 전 기업과인권네트워크가 현장 방문을 통해 밝혀낸 인도네시아 팜유 농장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3~4세 아이까지 동원… 한국 기업 운영하는 해외 팜유 농장서 아동 노동 착취

지난달 18~19일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협약(UNCRC·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본심의에서 한국 기업이 개발도상국 아동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심의위원들은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팜유 농장에서 아동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에 이를 방지할 적절한 체계를 갖추라고 권고했다.

기업과인권네트워크 등 한국 시민단체가 확보한 자료와 현장 활동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팜유 농장의 아동 노동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아이들은 날카로운 도구를 쥐고 잡초를 베고, 농약이나 제초제도 직접 뿌린다. 높은 나무에 올라가 무거운 팜유 열매를 따는 일도 매일 반복하고 있다.

팜유 농장에서 아동 노동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타깃’이라고 불리는 목표 작업량 때문이다. 당시 기업과인권네트워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마트라주 리아우 지역에서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농장의 경우 2016년 개인 일일 할당량은 850㎏으로 건강한 성인 남성에게도 벅찬 수준이다. 이를 채우지 못하면 월급이 깎이기 때문에 자녀들까지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과인권네트워크 측은 “팜유 농장이 생기면서 마을의 강과 숲이 훼손됐다”면서 “숲에서 딴 열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주민들이 먹고살 길은 이제 농장밖에 없다”고 말했다.

3년 전보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지적하는 활동가들도 있다.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관계자는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의 무분별한 팜유 농장 개발로 환경과 지역사회 파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난개발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문제는 기업들이 팜유 농장 개발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팜유 공장을 세운 한국 기업인 삼성물산, LG상사, 포스코대우, 코린도 등은 올해 들어 모두 “팜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공익법센터 어필과 환경운동연합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 ‘빼앗긴 숲에도 봄은 오는가’에 따르면 코린도가 개발한 팜유 농장 규모만 따져도 서울시 크기와 맞먹는 5만㏊에 달한다.

“한국 기업의 개도국 아동 권리 침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유엔이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에 기업 활동으로 인한 아동 권리 침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그간 한국 기업으로 인한 피해가 여러 번 발생했는데도 한국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아 국제 사회가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보연 굿네이버스 국제개발정책센터 대리는 “한 지역이 경제, 사회, 환경적으로 위험에 처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아이들”이라면서 “지난해 발생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는 지난해 7월 23일 라오스 남부 아타프주에 위치한 댐이 무너지면서 이재민 6000여 명이 발생하고 49명이 사망한 사고다. SK건설이 시공하고 한국서부발전이 운영사로 참여했으며, 수출입은행이 유상원조기금인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동남아시아 메콩강 유역 개발을 감시하는 태국 시민단체인 ‘라오스댐투자개발모니터단’ 활동가인 쁘렘루디 다오룽은 “피해 지역에서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라 지금은 대부분 주민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며 “그 마을엔 소수민족이 모여 살았는데, 아이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잃을 것은 물론이고 생계 곤란으로 건강이나 학업상 문제까지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본심의 후 공식 권고문을 통해 “한국은 자국 기업이나 단체가 투자나 국제개발협력 사업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경우 현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지 검토하고 피해가 발생할 경우 관계자가 제대로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권고를 반기면서도 우리 정부가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하늬 한국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정책센터 과장은 “실질적인 평가와 감시가 가능하도록 수출입 은행의 정보 공개를의무화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신영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 사항을 호소하는 창구인 NCP(국가연락사무소)가 산업자원부에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라며 “환경영향평가를 강화하고 기준에 미달하거나 아동 권리 침해가 발생할 경우 직접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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